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홍시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11.14 14:29:48
  • 최종수정2019.11.14 17:47:24
박형준은 풍경 속에 놓인 사물들의 비애를 사색하는 시인이다. 이때 풍경은 주로 사라진 기억의 시간대에서 건져온 것들이다. "아주 오래전 유년의 어느 한순간, 그 과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시인은 고백한 적이 있다. 그만큼 그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 덧없는 것들이 아름답게 성화(聖化)되는 순간을 시로 포착하려 한다. 기억은 소멸과 죽음의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비상을 꿈꾸고 생명의 약동을 꿈꾼다는 점에서 박형준의 시는 죽음과 생명이 동거하는 혼례(婚禮)의 우주라 할 수 있다.

그는 주로 감각적 이미지로 삶과 죽음 전반을 성찰하는데, 시인은 왜 시적 수사(修辭)에 집중하는 걸까· 수사적 문장에 사색적 관조와 성찰이 덧입혀져 사유가 극대화될 때 시적 울림과 공명을 낳기 때문이다. 즉 감각과 사유가 하나의 몸으로 현현할 때 시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1994)부터 짙게 나타난다. 이 시집은 작은 존재들의 비애감을 감각적 이미지로 채색한 시집이다. 시인은 지층 깊은 곳에서 살아나오는 추억들을 목격하면서 죽지 않는 유년을 생각하기도 하고, 나무 뒤에 숨어 집을 바라보며 또는 집 뒤에 숨어 나무를 바라보며 슬픔을 관조하기도 한다. 연못을 바라보며 하루 내내 침묵 속에서 소멸과 폐허를 생각하고 실존적 물음에 잠기기도 한다.

유년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 두 번째 시집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1997)이다. 시인은 한밤중 물이 고인 웅덩이를 거울로 보고 그 거울 속에서 독특하게도 빵 냄새를 맡는다. 현실과 차단되어 있는 것 같지만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유년에 대한 심적 고통을 낭만적 꿈 이미지로 풀어낸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2011)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일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결곡한 회한의 감정으로 풀어낸 다섯 번째 시집이다. 이전까지 어머니와 누이의 세계에 천착하던 시인이 아버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어머니의 세계가 회귀 가능한 공간이라면 아버지의 세계는 회귀 불가능한 공간으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아버지 상실의 아픔이 크고 상처가 깊었다는 반증이다. 「홍시」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다.

홍시 - 박형준(朴瑩浚 1966~ )

뒤뜰에서 홍시가

철퍼덕철퍼덕 떨어지는 밤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에

아버지처럼 누워서 듣는다

얇은 벽 너머

줄 사람도 없는디

왜 자꾸 떨어진데여

힘없는 어머니 음성

아버지처럼

거그, 하고 불러본다

죽겄어 묻는 어머니 말에

응 나 죽겄어

고개를 끄덕이던

임종 가까운데

자식 오지 않고

뻣뻣한 사지

이불 밖으로 나온 손

가슴에 얹어주던 어머니

큰방에 누워

뒤뜰 홍시처럼 가슴에

둥글게 주먹 말아 쥐고

마을 가로질러 가는

기차 소리 듣는다
뒤뜰 감나무에서 홍시가 철퍼덕철퍼덕 떨어지는 늦가을 밤,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큰방에 누워 시인은 바깥 풍경에 고요히 귀를 열고 있다. 현재의 자기 몸으로 과거 아버지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보며 시인은 임종 직전 아버지가 느꼈을 적막과 비애를 느끼고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기차소릴 듣는다. 시인은 애써 몸 저층에서 돋아 오르는 슬픔과 통증을 풍경으로 분산시키고 있지만, 아버지의 애잔한 눈동자에 어렸을 저승길과 그 눈길을 애처로이 바라보며 농을 던지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속으로 한없이 울었을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의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뻣뻣한 손을 가슴에 가만히 얹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 참으로 눈물겹다. 늦가을 감나무 집터를 배경으로 시인의 기억과 아픔이 잘 형상화된 홍시 같은 작품이다. 먹먹한 서정의 울림이 깊고 고요하다.

/ 함기석 시인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