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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8.29 17:32:35
  • 최종수정2020.06.18 15:33:08
퇴근길에 신호등도 없는 큰길에서 앞차가 가지를 않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머리를 오른쪽 앞으로 내밀어 본다. 할머니 한 분이 빈 박스 몇 개를 실은 유모차에 의지하여 길을 건너고 있다. 다리가 꼬부랑꼬부랑 휘어져 고꾸라질 것 같으면서도 천천히 느긋하게 건너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앞만 보고 건너시는 것을 보니 찻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도 할머니의 당연한 권리라고 느껴진다.

할머니의 걸음걸이를 보니 나의 안짱다리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나는 앵고다리(안짱다리의 경상도 방언)라고 놀림을 받았다. 저학년 때는 십 오리 길로 학교 갈 때에 자주 넘어져서 형이 내 가방을 들어다 주었다. 비 오는 날 미끄러운 논둑길을 가다가 넘어지면 형은 내가 메기를 잡았다고 놀렸다. 신발은 항상 뒤쪽 바깥 부분이 닳아 구멍이 났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 보기가 낯부끄러워 걸음걸이를 바르게 하려고 애써 팔자걸음을 하였다.

사람마다 얼굴이나 성격이 천차만별이듯이 걸음걸이도 각양각색이다. 마음이 편하고 느긋한 사람은 신발을 질질 끌며 걷고, 매사에 자신 있는 사람은 뒤꿈치로 쿵쿵거리며 걷고, 자상하고 조용한 사람은 앞발로 사뿐사뿐 걷고, 기쁘고 활기찬 사람은 토끼같이 껑충껑충 걸으며, 고집이 센 사람은 발을 벌리고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술 한 잔 마시고 온 세상이 내 것 인양 걷는 갈지자(之)걸음도 있다.

내 인생의 걸음걸이도 앵고다리 걸음처럼 많이 틀어졌다. 색약인 줄 모르고 기계 공고를 지원하여 낙방한 것은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고향에 가까운 대학을 두고도 객기로 동기 하나 없는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고향으로 옮기려다가도 그만두기도 한 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후회스러운 길이었다. 직장에서 원치도 않았던 전산화 사업을 맡아 밤낮없이 매달리기도 했던 것은 주어졌지만 거부할 수도 있었던 길이었다. 성질이 급해서 삶의 길을 잘못 택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편안한 길, 쉽게 가는 길, 표가 나는 길을 두고도, 어렵고 힘들게 둘러가는 길, 표시 나지 않은 길을 걸었다.

고향에 갔다가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은 깊은 밤에 대진 고속도로로 돌아온 적이 있다. 길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차의 속도계를 보지 않으면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길만 따라 운전하였다. 그러다가 불빛이 환한 가로등이 나오면 나들목이었다. 갈림길을 알려주는 반가운 불빛이었다. 나들목으로 나가지 않아도 내가 바로 가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인생길과 같다고 생각했다.

앵고다리 걸음처럼 틀어진 내 인생을 바로 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가수 한영애님의 '잠자는 하늘님이여… 조율 한번 해주세요.'라는 노래를 따라 어쭙잖게 내 인생을 조율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는 간절히 청하면 들어 주신다는 데, 나에게는 응답이 없었다. 그러면서 원하지 않는 틀어진 내 인생길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악한 것도 선한 것으로 변화시켜주신다는 믿음으로 살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성경 말씀이 밤중 고속도로 나들목의 가로등처럼 다가왔다.

짧지도 않은 인생길을 걸으면서 재물과 명예를 추구하고, 일로 인정받으려 했다. 마음은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몸은 그렇게 향하고 있었으니 인생 걸음이 틀어진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빵을 청한 것이 아니라 돌을 청하였고, 생선을 청한 것이 아니라 뱀을 청하였다 는 것을 느꼈다.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지고 힘들게 가려 했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 이제야 내가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걸을 때는 올바른 자세로 걸어야 한다. 잘못 걸으면 이상하게 보이고, 신체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며, 무릎관절, 골반이나 척추질환도 유발된다고 한다. 턱을 들어 올려 시선을 전방 30m 정도 앞을 보고 가슴, 등, 어깨를 곧게 펴고 걸어야 한다.

아내는 내가 걸을 때 어깨가 많이 수그러진다고 어깨를 쫙 펴고 걸으라고 충고한다. 전방을 바로보고 어깨를 펴고 걸어야겠다. 앞으로도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이 많이 남았으리라. 꼬부라진 다리로 앞만 보고 가는 할머니처럼 어떤 길을 가더라도 당당하게 가야겠다.

전민호

충북대학교 도서관 근무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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