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8.15 13:54:15
  • 최종수정2019.08.15 13:54:15
장석남의 시에는 늘 허기와 적막감이 맴돌고 상처와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상처는 주로 유년기의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시인이 그 기억의 공간 속으로 들어갈 때 나타난다. 반면에 아름다움은 그 상처들을 현재 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회화적으로 바라볼 때 나타난다. 그는 어렸을 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고, 부모와 형제들과 흩어져 살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고, 문학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유년기의 이런 가족상실 체험은 시에서 내면 지향성, 모성에 대한 갈망, 여성적 서정의 표출 등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건 유년기의 아픈 체험이 삶의 바탕에 짙게 드리워진 시인들의 경우 대부분이 어둠의 서정을 구사하는데 그는 아픔을 말하면서도 빛이 드리워진 밝음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유년의 시간과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는 서정의 풍경으로 시각화한다. 그는 이미지로 교감하고 사유하는 시인이다. 시에 철학적 성찰이나 초월적 사유가 들어갈 때도 그는 섣부른 진술로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가 있는 풍경으로 대체한다. 사상에 의해 시의 심미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는 사라진 것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현재에 없는 것들과 사라진 시간대에 애수의 향수를 느낀다. 나아가 말이 사라진 침묵의 세계를 동경한다. 즉 그에게 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고 침묵을 지향한다. 그의 시에 여백이 많고 그 여백이 울림을 낳는 공간이 되는 것은 말과 침묵, 자연과 세계에 대한 시인의 이런 태도 때문 아닐까.

장석남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대상 중 하나가 집이다. 그에게 집은 유폐와 귀순의 욕망이 투사된 공간, 쓸쓸함과 적막을 낳는 고독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집은 삶의 휴식처이자 피곤한 몸을 쉬게 하는 모성적 공간이다. 그런데 그의 시에 나타나는 집은 안락함과 온기를 간직한 존재의 처소이기보다는 소외의 공간, 유폐의 공간에 가깝다.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격리감, 자아의 고립감을 드러내는 장소로 등장한다. 이는 시인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소외와 외로움을 느끼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쓸쓸함은 여러 편의 시에 자주 나타난다. "군불을 지핀다/ 숨 쉬는 집 /굴뚝 위로 집의 영혼이 날아간다/ 가출(家出)하여, 적막을 어루만지는 연기들"(시 「군불을 지피며 1」 부분).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장석남(張錫南 1965∼ )

1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

저문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떼 속에

환한 봉분이 하나 보인다

2

누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있단 말인가

봄 햇빛 너무 빽빽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서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가로

데리고 가리란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은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무도 없는데

아궁이 앞이 환하다
이런 적막과 고독의 정서는 초기의 대표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찌르레기는 시골의 낮은 평야나 야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식성 새다. 주로 곤충과 나무열매를 먹고 번식기 외에는 대부분 떼를 지어 다닌다. 시인은 이 찌르레기 새떼를 봄 하늘을 물어오는 존재로 인식하고, 이들의 울음소리를 쌀 씻어 안치는 소리로 감지한다. 관찰과 비유가 참신하다. 나아가 저문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새떼 속에서 시인은 환한 봉분을 본다. 흩어졌다 모이는 새떼의 모양에서 둥근 봉분을 연상했거나 시인의 가슴에 자연스럽게 포착된 무덤 이미지일 것이다. 공중의 새떼에서 둥근 무덤을 연상하고 그 안에 누워 있는 누군가의 주검을 떠올리고, 나아가 언젠가 저 새들이 자신 또한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으로 데려갈 거라고 시인은 읊조린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인간의 존재와 고독, 시간과 죽음을 사유하는 시인의 눈길이 쓸쓸하다. 그런데 정작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봉분 자체보다 망명이다. 환하고 둥근 죽음의 세계, 외로움과 눈물의 세계로 망명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 상태다. 이 아픈 마음이 시의 적막과 쓸쓸함을 깊게 한다. 그렇게 또 저녁은 깊어가고 찌르레기 떼는 떠나고, 시인의 가슴 속 시골집에서 누군가 쌀을 안칠 것이다. 아무도 없는데, 여전히 지금도, 아궁이 앞이 환하다.

/ 함기석 시인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