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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겨울 강가에서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75

  • 웹출고시간2019.05.30 16:12:11
  • 최종수정2019.05.30 17:29:20
[충북일보] 1980년대는 어둡고 위험한 시대상황 속에서 시의 형식과 내용, 주제와 소재 등 모든 면에서 전통 서정시의 존재위상이 심하게 훼손되고 변형된 시기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80년대 후반을 거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분단 독일의 통일, 구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냉전체제의 종식 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국내 시단에도 영향을 끼쳐 민중시와 해체시 진영의 시인들을 대거 서정시로 복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데 복귀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시는 이전의 서정시와는 다른 감각과 서정, 다른 무늬와 음색을 띠었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 서정시와 구별하기 위해 신(新)서정시로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데올로기나 역사를 통찰하는 거대 담론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빈 공백을 황폐화된 자아와 풍경이 대체한다.

외부와의 싸움이 내부와의 싸움 즉 시대와의 싸움이 시인 자신과의 싸움으로 내면화된다. 당대와의 전면적 대결의지보다 타락한 세상에 대한 관망적 자세, 성찰적 자기응시와 비판,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 공존의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신성정파의 흐름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 안도현이다.

안도현의 시에는 크게 두 개의 공간이 나타난다. 골방과 광장, 이 안팎의 두 공간을 오가며 시적 자아는 갈등하고 번민하고 반성한다. 흥미로운 점은 골방에서는 광장을 그리워하고 광장에서는 골방을 그리워하는 양가심리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서정적 풍경들을 그려내면서도 시인은 그 풍경들을 통해 자아의 심리적 갈등과 번민도 함께 드러낸다. 골방과 광장의 관계는 곧 예술과 정치의 관계, 시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안팎의 동거(同居)의식이 그의 시를 사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와 민족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고, 또 하나의 원동력은 발견의 시선과 감각이다.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安度眩 1961∼ )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어떤 대상이나 풍경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에게 발견의 욕구는 곧 시적인 것을 찾으려는 마음이고 이는 대상에 대한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고 어깃장을 놓을 때 생긴다. 그것을 그는 대상과 세계에 대한 '똥침 놓기'로 명명한 적이 있다. 그에게 시는 약속의 언어가 아니라 배반의 언어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좌익이 되라고 제안한다. 이데올로기의 좌익이 아니라 통념과 관성의 전복, 일반성의 전복을 통해 세계를 낯설게 다시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시를 음식 만드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다. 시의 산출과정이 라면 끓이기, 김치 담그기, 삼겹살 구어 먹기 등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요리할 때 재료도 중요하지만 요리사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요리사가 여러 재료들을 어떻게 자르고 섞고 배합하고 비율을 조절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과 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리사 특유의 요리 감각과 개성적 레시피가 대단히 중요하다. 안도현은 전형적인 서정시 요리사다. 그의 시는 풍경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동심의 상상력, 풍경의 새로운 발견과 해석, 통념의 전복과 새로운 서정이 구현될 때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시 '겨울 강가에서'에는 안도현 특유의 풍경 요리법, 온기(溫氣)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살얼음이 깔리면서 강이 얼어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시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자연의 변화과정에 시인의 독자적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는데, 주목되는 것은 자연현상에 대한 시인의 발견의 눈길, 순수한 동심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천진한 자연물로 그려지고, 이 어린 눈들이 자꾸만 강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강은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자연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서정의 감동과 울림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이런 눈길이 따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겨울 강가에서 강물이 출렁출렁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 이유, 강이 살얼음을 깔며 얼어붙은 이유 등 시인의 상상과 해석이 공감과 울림을 낳는다. 이처럼 안도현 시에는 자연물에 대한 동심의 눈길, 연민과 희생의 정서, 사랑과 포옹의 마음이 자주 나타난다. 위의 시를 감상하는 동안 나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안도현의 시에서 나는 종종 백석을 읽는다. 자기를 사랑해서 온 세상에 눈이 내린다니 나타샤는 얼마나 기쁘고 황홀할까. 어린 눈과 강물의 관계 또한 사랑과 희생, 세상에 대한 시인의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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