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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6.27 19:44: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8. 내게 맞는 기호

ⓒ 강호생
그러고 보니 결혼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자식도 1남 2녀로 남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부자라고 한다. 세계경제 위축의 시기인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식 많음의 부자는 역설적 이야기 같기도 하다. 나는 어린아이들을 참으로 좋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식이 많은가 보다. 결혼 전을 회상하며 지금 아내와의 이야기들을 통하여 오늘의 '기호학'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어느 가을날 나는 들풀을 한 가득 베어 촌스러움이 묻어난 풀들을 대강 싸매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것도 직접 건네지 못하는 소심함과 쑥스러움으로 조카를 통해서 건넸고, 육성 녹음테이프도 건네 보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화선지 몇 장을 붙여 7미터를 만들어 깨알 같은 세필의 흘림체로 밤새도록 글을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너무도 소중하고 정성이 들어간 작품자체의 글이었기에 나는 그 것을 우편등기도 믿지 못하여 붙일 수가 없었다. 역시 아는 친척 한 사람을 통하여 그 멋진 글을 보냈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정확한 전달 여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네기 전에 두루마기로 둘둘 마른 화선지를 펼쳐가며 읽노라니 여간 멋지고 흐뭇한 게 아니었다. 아마 그녀도 그 멋스러움을 체험했으리라.

정성의 기적이었는지 멋스러움의 흥겨움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호학의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퍼스의 삼부모형은 유명한 얘기다. '기호, 기의, 기표' 이 세 가지의 기초가 퍼스가 말하는 기호학이다. 보통 기호학과 더불어 철학, 심리학은 3대 기본 학문이라고 말하며, 기호는 기의와 기표를 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술학도라면 기호학을 필히 공부해야만 한다. 지난시간에 '당신이 보는 것이 바로 당신이 보는 것(What you see is what you see)'이라고 했는데, 말하자면 앞 절의 '당신이 보는 것'은 기표에 해당되며 뒷 절의 '바로 당신이 보는 것'은 기의를 말한다. 미술을 시각적 언어로 본다면 일차적 시각의 봄(see)은 겉 표면의 형태 즉 '기표'를 보는 것이며, 그 다음 눈으로 걸러진 후 형식적 내용(formal content)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기의'인 것이다. 여기서 [기호=기표+기의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결합과정을 '의미작용' 또는 '의미화'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보자. 사랑이라는 기호를 '♡(하트)', 기표를 '장미꽃', 기의를 '사랑' 이라고 한다면, '♡'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장미꽃'과 '사랑'이 동시에 있어져야만 된다. 어느 하나 빼놓고서는 '♡'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호(♡)에 의해 일어나는 정신적 개념인 '기의'는 '사랑'이다. 즉 '난 널 좋아해'라는 것은 가슴에 들어 있는 추상적 관념, 정신적 의미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난 널 좋아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만 다가서거나 아무런 말과 생각 없이 그저 '기표'되는 '장미꽃'만 건네주면 기호(sine,♡)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의 '♡' 라는 '기호'가 성립되려면 '사랑'만 가지고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고 물질적 기표가 되는 '장미꽃'만으로도 성립불가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말로만 '사랑해' 해서는 콧방귀만 꿀 것이다. '사랑해!'하면서 동시에 '기표'되는 '돈 다발!'을 턱 내려놓을 때! 웃음보가 터지는 것이다. 마침내 이렇게 해서 '기호(♡)'가 탄생되는 것이다. 난 지금의 아내에게 '돈 다발'이 아닌 '들풀', '장문의 글', '육성녹음테이프' 등의 '기표'와 간신히 끄집어내어 표현한 '사랑한다!'라는 '기의'의 의미전달로 '내게 맞는 기호'의 결과물인 자식이 세 명이나 되었다. 웃음보가 터지는 그 날을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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