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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1.29 20:14:3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시대 만들어진 아치형의 아름다운 다리인 승선교와 다리위에 정자같은 청량각을 세운 홍교, 정승의 금의환향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홍교는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면서 조선시대의 다리중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 양반규수와 머슴의 사랑이 담긴 병영 홍교

강진의 병영성 홍교는 유한계 정승의 금의환향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지개형 다리로 경술년(1730)에 승록대부(조선시대에 둔 종일품 상 문무관의 품계)가 된 유한계를 위해 양한조가 감독했다는 여러 내용으로 미루어 18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영의 관문인 배진천에 건축된 홍교는 일명 '배진강다리'라고도 하는데 직사각형 화강석재 74개를 무지개(홍예)형으로 서로 짜 맞추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후 점토로 다리위를 다졌다.

홍교의 상단 중앙의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돌출된 용머리 조각은 아주 해학적이다.

이같은 다리는 전남지역에 많이 남아있는데 이중에서 병영성 홍교는 그 자태가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후기 다리들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힐 만 하다.

병영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반도 남쪽 지역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 전라도 병마절도ㅏ령부가 설치돼 500년동안 호남 일대를 지켜온 군사 요충지 였다.

이곳의 홍교는 병영의 관문이었다. 병영성 남문에는 하고마을로 가는 길의 배진강 저수지 부근에 있는 홍교는 높이 4.5m, 넓이 3.8m, 길이 7m다.

일제 강점기에는 병영에 세류교를 가설할 때 일본기술자들이 이 다리 축조방식을 연구하고 배워서 다리를 놓았다는 일화도 전해오고 있다.

이 다리와 연계된 설화는 옛날 김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유 총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성실하고 영리해 주인과 이웃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유 총각은 본래 양반집 자식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해 머슴살이를 하게 됐다.

김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총각이 워낙 성실하고 잘 생겨 처녀는 그를 사모하게 됐다.

어느 봄날 김 낭자는 나물을 캐기 위해 산에 오르고 유 총각은 나무를 하기 위해 산에 올랐으나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나무 아래서 둘이 만난후부터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이후 결혼을 하게 되고 태어난 사람이 바로 유한계 정승이다.

유한계 정승의 묘는 학사 마을 뒤쪽 옴천면으로 넘어가는 박실재 입구에 있다. 병영면에서는 훌륭한 인품으로 높은 벼슬에 오른 유정승의 금의환향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인 배진강에 홍교를 가설했다고 전한다.


#송광사 청량각 홍교

불가에 삼보사찰이 전해져 오고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와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는 승보사찰인 순천의 송광사가 이에 해당한다.

송광사라는 이름은 18명의 큰 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풀이가 전해져 온다. 송(松)은 '十八(木) + 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 스님을 뜻하고 광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사찰앞에는 대부분 하천이 있다. 즉 탐욕과 번뇌, 어리석음에 물든 속세의 3독을 개천을 건너면서 씻고 가라는 불가의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다. 사찰입구에 건너게 되는 다리는 소계와 불가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해서 피안교라 부른다.

피안교는 일주문 내외에 있어 스스로 마음을 씻어내고 닦아내면 부처가 있다는 것이다.

송광사 입구에 있는 청량각은 홍교를 쌓아 올린 다리위에 조성된 누각이다.

또 송광사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도로를 연결하는 홍교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도 마음을 씻고 들어가라고 해서 놓여진 다리로 다리위의 누각에 붉은 칠을 해서 홍교라고 불린다.

송광사에는 8천여점의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선암사의 아름다운 다리 승선교

선암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무지개 형태의 홍예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반원의 형태로 기하학적인 각도를 이루면서 무게를 지탱해주도록 축조됐고 그 중앙에 이무기나 용머리를 조각해 재앙이나 수해를 막아내는 상징으로 붙여놓았다.

사찰 입구의 큰 다리는 승선교이고 아래 작은 것은 홍교다.

선암사의 승선교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홍교로 손꼽힌다. 법당보다도 승선교가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다.

승선교 아래의 아치속에서 바라보는 강선루는 선암사 절경의 백미다. 승선은 선녀가 올라간다는 뜻이면 강선은 내려간다는 뜻이다.

승선교 중앙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끝부분에는 종이 매달려 있어서 나라의 변란이 일어날때마다 울렸다고 전하고 있으나 일제시대때 사라졌다.

승선교는 임진왜란후 사찰을 고칠 때 놓은 다리로 스님들이 축조했다고 전한다. 건축미와 교량기술이 뛰어나 보물 400호로 지정돼 있다.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친경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보지 못하자 낙심해서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고 절 입구에 무지개 다리를 놓았다.

승선교는 조선 숙종 39년(1713)에 호암대사가 축조한 홍예교(무지개다리)로 당초 자연암반위에 설치했으나 자연암반에 절리(균열로 떨어져 나가는 현상)가 발생해 승선교를 세운지 290년이 지난 2003년 11월~2004년 6월에 완전 해체해 자연암반부에 석재(지대석)를 보충하는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승선교 옆에 전시된 석재들은 당초 승선교를 구성하던 147개의 홍예석중 노후 부식 등으로 강도가 저하돼 재 사용이 불가능한 석재 30개를 전시해 놓고 있다.

선암사는 우리나라 31대 본산 가운데 백제 성왕 7년(529)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현종때 중건했으나 또 화재를 당해 순조 25년(1825) 다시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끝)

/김병학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발전신문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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