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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의 역사와 애환 - 요단강 다리와 굴탄교

다리 하나 사이로 천당과 지옥…군장병들의 '요단강'

  • 웹출고시간2012.10.31 16:25:5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955년 육군 37사단이 증평읍 연탄리에 주둔하면서 요단강다리(천당의 다리)라고 불리우고 있는 반탄교와 주민들이 나무로 섶다리를 만들어 통행하다가 매년 장마때가 되면 떠내려가 새마을 사업으로 다리를 만들었다가 현재는 대형차량도 통행이 가능한 구곡교가 지금도 당시의 아픈사연을 말해주고 있다.

#요단강다리(반탄교)


일제시대인 1927년 6월 반탄교가 건립되면서 진천과 증평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큰 혜택을 입었다. 이후 1956년에 조립식 가설교량으로 재 가설이 됐다가 1958년에는 잠수교가 가설이 됐다.

이후 1972년 증력식 슬래브교로 건설이 됐다가 1994년 현재의 교량으로 신축되면서 증평과 진천, 증평 IC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다리가 요단강 다리로 명명을 받은 것은 1956년 6월 육군 37사단이 증평읍 연탄리에 주둔하면서 소집된 병사들이 훈련을 치르며 하루라도 빨리 이 다리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아고 싶은 마음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다리로 인식이 됐다.

이때부터 37사단에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는 성경에 나오는 '요단강 다리'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지금도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반탄교'라는 이름보다 '요단강다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게 불리우고 있다.

다리 주위에는 증평이 인삼의 고장임을 알리는 인삼 마스코트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구곡교

제천시 봉양면 구곡리의 구곡교는 예전에 주민들이 섶다리를 만들어 통행해왓으나 매년 장마때가 되면 떠 내려가 1978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시멘트와 철근을 공급받아 주민들의 노력 봉사로 폭 4m의 라멘교를 가설했다.

이후 통행량이 많아지고 구곡리에서 금성면으로 통하는 산길이 개통되면서 1994년 수해복구사업으로 편재의 구곡교를 건립했다. 일명 굴탄교로 불리우고 있다.

#학다리

장수 동물인 학(鶴)과 연계된 '학다리'는 제천시 교통에 위치해 있으나 현재는 하천복개공사가 이뤄지면서 해체됐다.

학다리에 대한 유래는 지금도 이 곳 노인들로부터 구전돼 오고 있다.

학다리 인근에는 향교가 있어 예전에는 향교골이라고 불리웠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에 향교골 어느 부잣집 딸이 죽어 향교골 남쪽에 잇는 독송정이라는 산에 밀매장 하였는데 독송정은 시체를 매장하면 안되는 장소였다.

이같은 금기를 어기고 밀매장을 하면 독송정 산신이 노해 마을에 재앙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밀매를 눈치챈 동네사람들이 산을 샅샅이 뒤져 밀매를 한 관을 찾아내 뚜껑을 열었더니 별안간 관속에서 학 2마리가 날아올랐으며 그중 한 마리가 용두천에 놓인 다리에 떨어져 죽었다고 전한다. 이후 학이 떨어져 죽은 다리를 사람들은 학다리라고 불리웠다고 전한다.

주민 이모(75)씨는 "예전에는 이 지역을 학다리 또는 향교골이라고 불리웠다"며 "학다리의 전설을 아는 사람이 지금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다리


보은읍과 속리산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로 지난 1980년 대규모 수해시 최규하 전 대통열이 방문해 당시의 수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였다고 전한다.

지금은 보은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리아래에는 하상주차장이 건설돼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기대교


보은군 마로면에 있는 다리로 80년도 수해시 하천에서 떠내려 가던 당시 15세의 청소년이 교량에 걸쳐 생명을 구했다고 해서 '기대교'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개교


보은군 장안면 장내리의 선병국 가옥 입구의 다리로 속리초가 바로 앞에 있다.

1980년 수해시 교량이 유실돼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예비군들이 로프에 의지해 생명을 구했다고 전한다. 현재의 다리는 수해후 건설된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개안리라는 전통문화 마을인 개안리가 보인다. 개안리는 하개리의 옛 지명을 복원해 붙여진 이름이다.

개안리에는 소나무숲 두 곳과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선창소가 있다.

선창소는 개안리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비결파에 의거 전국 10승지의 하나로 송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먼저 창건하였다 하여 선창(先唱)이라 불리었다.

한말에 선정훈 선생이 99칸 집을 지을때 집터가 배의 형국이라 배를 댈 곳이 있어야 한나고 하여 선창이라고 불리었다고 전한다.

또 구한말 일제치하에서 한학의 전통에 맥을 유지하기 위해 남헌 석정훈 선생이 자비로 건립한 관선정이 있다.

관선정은 전국의 한학도는 물론 지방의 한학자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지금은 후학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선정 옛터에 기적비와 당시의 건물을 조감해 복원해 놓았다.

/김병학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발전신문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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