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을 쓰는 부부

2016.04.26 15:18:43

박선예

수필가

이웃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그 부부는 어찌 된 일인지 서로 소 닭 보듯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각방을 쓴지 이미 오래되었고 아이들 때문에 그냥 산다 한다.

남편과 나는 세상물정도 모르고 결혼을 하였다. 그때 내 나이 스물 세 살이고 남편이 스물 네 살이었으니, 짐작컨대 양가 어른들은 물가에 어린 애를 내놓는 기분으로 우리의 혼인을 허락하셨던 듯싶다. 그래서였을까. 결혼 전날 할머니는 내손을 잡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다. 시어른께는 순종하고 남편을 잘 섬기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살라고 하셨다. 그래야 친정에서 잘 배웠다고 칭찬을 들을 거고 그게 바로 친정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특히나 남편과 어떤 일이 있어도 각방을 쓰면 절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여러 가지 당부 말씀이야 평소 귀가 닳도록 들어와서 당연하다 여겼지만 각방 말씀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남편과의 싸움은 상상조차 안 되었고 더구나 각방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말씀인가 싶었다.

신혼 삼 개월 무렵, 남편이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왔다. 비위가 약한 체질인데다 임신 중이라, 역겨운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잠을 같이 잘 수가 없었다. 이부자리를 들고 옆방으로 피신 가려는데 갑자기 할머니의 거듭된 당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각방을 쓰면 안 된다는….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코를 틀어막고 남편 곁에서 밤을 새웠다. 그 밤은 바로 지옥이었다. 남편이 지독하게 미웠고 뭔지 모를 설움에 흐느꼈다.

그 날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각방을 쓸 만한 사건은 수시로 일어났다. 그때마다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되었고 나는 이부자리를 들고 갈등하였다. 그러다 서로에게 면역력이 생겼는지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와도 덜 미워하게 되었고 잔소리를 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할머니의 당부만은 잘도 지켜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산휴가를 마친 딸이 복직을 하였다. 남편의 아성이었던 내 옆자리는 손자차지가 되어버렸다. 손자를 돌보느라 남편의 부재조차 느낄 겨를이 없던 나와는 달리, 졸지에 잠자리를 내준 남편은 꽤 힘들어 보였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고 투덜대었고 왜 우리가 손자를 키워야하느냐고 볼멘소리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무려 오년을 우리부부는 별거 아닌 별거생활을 하며 나이를 먹었다.

손자들이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자, 우리는 당연히 합방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날이 지나도 남편의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가 낯설었다. 다리가 닿으면 나무기둥이 올라온 것 같아 깜짝 놀랐으며 뒤척임에 잠이 깨면 날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편도 자주 깨어났고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오년 동안 우리는 혼자 잠자는 거에 그만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각방을 쓰기로 합의하였고 요즘 나이 든 우리부부는 각방에서 평화롭게 꿀잠을 자고 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아무리 싸워도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낙천적인 남편의 성향도 있지만 아무래도 할머니의 당부를 잘 지켰기 때문인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당부말씀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과 서로 통하고 있었다. 이웃의 젊은 부부에게 할머니의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부부란 어떤 일이 있어도 각방을 쓰면 절대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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