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가진 소망

2016.05.10 13:22:18

박선예

수필가

공원에서 작은 다툼 하나를 목격하게 되었다. 당시 공원에서는 어버이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며칠 전 어린이날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하루 종일 떠들썩하였는데 상대적으로 너무 한산하기 짝이 없는 어버이날 잔치였다. 그러한 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참석한 어르신들 중, 기대에 못 미치는 행사에 실망한 듯 그냥 돌아가는 분도 계셨다.

시비의 발단은 한 어르신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어째 국회의원이랑 시장이 안 보이지? 어르신, 어르신하면서 표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젠 노인들 표가 필요 없다는 얘기인가?"

지나가던 한 어르신이 그 말을 듣고 정색을 하면서 한마디 던지셨다

"여보시요, 그런 말 마시요.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그리 말하면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소. 정치인들 손에 놀아난다고 여길 거요."

"아니, 내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은데 노인들을 표로 보는 정치인들이 싫다는 이야기요. 그들한테 이용당하지 말자는 뜻이요."

왈가왈부하는 사이에 서서히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한 분은 칠십 구세인데 어버이날을 맞아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거느리고 공원에 오신 분이었고 또 다른 분은 공원 관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어 어버이날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나오신 팔십이 넘은 어르신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르신들은 생각은 똑 같은데 표현방법이 서로 달라 오해가 생겼다며 통성명을 하고 화해를 하였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참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어르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 먹음에 대해 너무나 당당하셨다. 그런 두 분이었지만 어르신들이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수치스럽게 여기셨다. 바로 어버이연합 이야기다.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공짜 밥을 먹고, 돈 이 만원을 준다는 꾐에 빠져서 집회에 동원되어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다니. 이거 원, 젊은이들 보기가 부끄러워서 참!"

"어버이라는 말을 그런 단체에 쓰게 하면 안 되지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진짜 어버이들이 기운이 빠지잖소."

"꼭 도망간 핵심 간부들을 잡아서 노인들을 이용한 죗값을 받게 해야지요."

구경꾼들은 어느새 두 분 말씀에 호응하는 분위기였고 어버이연합 관련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어버이연합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였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그 단체의 이름이 의아하였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어버이들 중에 몇 명이나 그 단체에 가입했는지 궁금하였고, 어버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부끄러운 언어사용과 수치스럽고 격한 행동들은 결코 어버이란 이름을 앞세우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당신 어버이연합 회원 아니지? 우리도 어버이인데 우리 허락 없이 그 이름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아냐?"

세상사에 무덤덤한 남편도 어버이연합의 집회모습이 눈엣 가시였던 듯싶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남편이나 나나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방관이 그들의 행동을 용납해 준 꼴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새삼 부끄럽다. 이제부터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옳은 것은 옳다 말하며,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하는, 이 땅의 참 어버이가 되고 싶다. 2016년 어버이날에 가져보는 간절한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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