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때문이다

2016.05.24 15:46:03

박선예

수필가

친구 아들의 결혼식 날이다. 이렇게 좋은 날, 신랑 어머니인 내 친구는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다. 눈물을 참느라 무던히도 애쓰더니 예식 말미에 신랑신부의 절을 받고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신부 측 하객들이야 별난 시어머니라 여기겠지만 신랑의 사연을 아는 지인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오래전에 이혼하고 혼자 키워 온 아들이니 서운함이 클 것이고, 죽어도 결혼 따위는 안 하겠다고 버티던 아들이 제 짝을 만나 식을 올리니 기쁨이 넘칠 것이며, 홀로 감당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친구의 고통을 십분 공감하고도 남아서일까. 그만 코끝이 찡해왔다.

문득 아들의 결혼식 날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그날 나도 참 많이 울었었다. 어찌 나뿐이랴. 친정 식구들과 시누이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고 며느리와 아들도 울먹였었다. 예식에 참석하였던 이웃들은 지금도 가끔 놀려댄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아들 빼앗겨서 그랬느냐고. 신부 부모가 울어도 꼴불견인데 신랑 엄마가 우는 꼴은 더 가관이더라고.

군 장교였던 남편은 아들이 세 살 되던 해에 큰 사고를 당했었다. 장애를 입고 사회로 나왔는데 적응하지 못해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곱지 않은 터였지만 20대였던 우리부부는 나름 당당하였었다. 그러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만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아들이 놀림을 받았단다. 너의 아빠 팔 병신이라고. 화가 치밀었다. 울고 있는 아들이 한없이 가여웠지만 내 설움은 더욱 컸다. 그날부터 아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놀리는 아이들의 콧대를 꺾으려면 일등이 최선이라고 믿는 엄마 때문에 아들은 내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아들이 대학 1학년 방학 때, 동갑 여학생을 데리고 집에 왔다. 자그마한 키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학생이었다. 좋은 여자가 생기면 먼저 허락을 받고 교제하겠다던 약속을 지켜 준 것이다. 그 마음이야 기특하였지만 너무 성급하지 않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두 아이는 서울생활의 외로움을 서로 도우며 이겨내었고, 예쁘게 만나면서 함께 할 동반자로 확신이 섰는지 8년의 교제 끝에 결혼을 선언하였다.

결혼이라는 대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번거로웠지만 두 아이의 혼인은 내게 크나큰 즐거움이고 벅찬 감동이었다. 오래 교제해온 터라 늘 밀린 숙제 같았던 결혼이 성사되어 후련하였고 결혼준비를 척척 해내는 아들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결혼을 앞두고는 그저 좋기만 하더니 막상 혼인예식이 시작되자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리고 지난날이 떠올랐다. 기뻤던 일보다는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이. 잘해준 일보다는 못해준 일이. 수 없이 나무라고 닦달하고 보챘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 시절이 후회가 되어 눈물이 나왔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흘러 넘쳤었다.

"이제 막 결혼한 신랑 신부의 사랑이 꽃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마지막 멘트가 친구 아들의 결혼식 끝을 알렸지만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지 못하였다. 어느새 나도 친구처럼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날,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친구의 아픔 탓일까. 내 아픔 탓일까. 아니다. 기뻐도 나오고 슬퍼도 나오는, 알다가도 모를 눈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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