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채소농사

2014.11.17 13:47:11

박선예

충북도 문화관광해설사·수필가

친정어머니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무와 배추농사를 지었으니 가져다 김장을 하라고 합니다.. 평생 농사를 모르는 어머니가 도대체 왜 채소농사를 지었는지 어리둥절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어머니가 시골에 사는 딸에게 무 배추를 가져가라니.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어머니는 서울 외곽에 있는 선산의 묵은 밭에 채소농사를 지으셨답니다. 이 이랑은 큰딸 몫, 저이랑은 작은딸 몫하며, 다섯 남매의 김장거리를 장만했으니 네 몫은 꼭 가져가야 한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좋은 종자를 썼더니 기가 막히게 맛이 좋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로 배추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저 인사치레 차 올라간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기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깜짝 놀랐습니다. 참 예쁘게도 길러 놓았더군요. 줄 맞춘 배추와 무가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쪽파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빨간 갓은 검붉은 잎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습니다. 터질 듯 풍만한 배추는 한포기만 들어도 힘에 버거웠고, 살짝 당기면 쓰윽 잘 뽑히는 무는 동글동글 참 야무졌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무와 배추를 뽑아 손질하고 갓과 파를 다듬어서 차에 가득 실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내 곁을 따라다니며 연방 채소농사 이야기를 하느라 신이 났습니다.

"무 배추 크는 것이 꼭 너희 오남매 자랄 때 같더라. 자식농사와 채소농사는 진배없어. 정성이 간곳은 더 실하고 손이 안 간곳은 벌레가 생기고. 너희들 기르듯 정성으로 길렀으니 맛있게 먹어라. 너희 아버지한테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농사짓는 내내 내 말동무 해주었으니"

갑자기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채소 농사를 지으신 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습니다. 원대로 혼자 살면서 구민회관에서 댄스도 배우고 이웃친구들과 실버수영도 하며 성당교우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은근히 걱정하였던 우리 오남매들은 마음을 놓았습니다. 늘 씩씩하였기에 어머니가 외로워하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힘들었던 아버지의 병간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생을 즐기는 줄 알았거든요.

아, 이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갈 구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산소 밑 묵밭에서 아버지와 자식이야기를 나누면서 젊은 시절 자식농사를 짓듯 채소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때만큼은 어머니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였던 것입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눈물이 쏟아질까봐 어머니를 마주보기가 겁이 났습니다. 딸이니까 출가외인이니까 바쁘니까. 여러 이유를 갖다 대며 어머니를 외롭게 만든 잘못이 너무 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무 배추가 살찐 만큼 어머니의 외로움도 컸으리라 생각하니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잘 가라 잘 가. 손으로는 작별인사를 하면서도 어머니의 눈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기를 간절하게 원했었는데. 아, 어머니. 나는 불효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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