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사랑 방법

2014.03.10 14:08:29

박선예

수필가

뜻밖이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얄미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던 그녀였기에 울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상처가 큰 듯싶다.

그녀는 이웃의 여자와 유난히 가까웠다. 그녀가 가족이외의 사람과 그토록 정을 나누는 일은 처음이었다. 이웃의 여자는 그녀가 아프면 약을 사들고 와 눈물을 글썽이었고, 남편도 기억 못하는 생일까지도 챙겨주었다. 무슨 일이든 칭찬해주었고 그녀의 말이면 다 좋다고 대답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사소한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이며 집안의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나누었고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통해서라도 그날의 일을 습관처럼 이야기하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어느 날부터 그녀는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인사를 하여도 시큰둥하고 말을 걸어도 피하는 눈치였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그 이유를 알고 깜짝 놀랐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웃의 여자는 그녀와 나눈 모든 이야기를 이상스럽게 변형시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트리고 다녔던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따질까 생각했지만 꼴이 우스워질까봐 그냥 참는다며 엉엉 울었다. 상처 입은 그녀가 안쓰러웠다.

요즘 딸아이와 자주 만나고 있다. 휴직을 하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너무 신이 났다. 밥도 같이 먹고 쇼핑도 함께 하고 여행도 함께 할 꿈에 마냥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꿈이었다. 아이는 바싹 다가가는 나를 밀어내었다. 아이들 육아문제며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관여할라치면 앙칼지게 거부하였다. 내 눈에는 모자람투성이인데 제 잘났다고 떠드는 딸이 미웠다. 서운하였다. 슬프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결혼해 엄마가 된 딸아이는 벌써 어른이 되었는데 내 마음에는 여전히 여린 딸로만 보이니 이것이 큰 문제였다.

문득 어디선가 읽었던 고슴도치 사랑 법이 생각난다. 추운 겨울 날, 고슴도치 두 마리는 체온을 나누기 위해 바싹 끌어안았다가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고 만다. 그들은 아픔 때문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방 밀려드는 추위에 다시 끌어안았다가 또 가시에 찔려 떨어지기를 수십 번, 고슴도치들은 적당한 거리를 알아낸다. 서로의 체온도 나눌 수 있으면서 상대에게 아픔도 주지 않는 알맞은 거리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그때부터 고슴도치들은 참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선배와 후배, 며느리와 시어머니,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이웃이나 친구, 형제나 동료, 직장상사에게도 예절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긴다. 상대의 장점만을 취하려 하였다가 오히려 상대방의 단점이 가시가 되어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리라.

딸아이와 나도 지금 적당한 거리를 찾기 위해 뻣뻣한 가시로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웃집 여자와 너무 빨리 가까워진 그녀도 적당한 거리가 없었기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닐는지. 아, 그녀와 나는 왜 몰랐을까. 고슴도치의 사랑 법을. 적당한 거리 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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