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바보

2014.03.24 13:20:40

박선예

충북도 문화관광해설사·수필가

남편과 함께하는 모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그나마도 이리 저리 핑계를 대고 빠지니 고작 한두 번 정도 참석한다. 남편 친구들은 잘 빠지는 나를 두고 이러 쿵 저러 쿵 말들이 많다. 권하는 술이야 숨겨 논 그릇에 쏟아버리면 그만이지만 노래 실력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으니 곤혹이 아닐 수 없다.

운명의 그날, 비로소 알고 말았다. 나는 음치이며 박치라는 사실을. 송년 모임 날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예쁜 집에서 싱싱한 회를 먹고 밤 바닷가를 거닐었다.

"아, 춥다. 연애 시절도 아니고 무슨 궁상이냐. 우리 노래방이나 가자"

누군가의 제안으로 노래방에 들어갔다. 걱정이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한 적이 없으니 어떤 노래를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구석에 자리 잡고 노래책을 펼치니 '소양강처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거다 싶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는데 이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오고 옆자리의 수근 엄마가 노래를 부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 간신히 골라 논 노래인데 수근엄마가 부르면 난 어쩌라고'

"안 돼! 소양강 처녀는 내 노래야"

수근엄마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예상치 않은 사태에 모두들 나를 주시하였다. 쿵짜라~ 쿵짝~그 와중에 반주는 흘러 나왔고 내 노래도 시작되었다.

"해 저문 소양강에~"

시작은 제법이었다. 일행들도 하나둘 손뼉을 치며 동참하였다.

"열여덟 딸기 같은~" 놓쳐버린 박자에 흔들린 음정. 그들이 슬슬 웃기 시작하였다.

'그만 둘까? 안 돼. 내 노래라고 빼앗았는데. 에라, 끝까지 가보자'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난리가 났다. 목을 젖히고 웃는 사람. 발을 구르며 웃는 사람. 아예 소파에 엎드린 사람. 노래가 끝이 난 줄도 모르고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고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웃는 모습이라니. 정말 가관이었다. 그 광경에 드디어 나도 웃음보가 터지고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실컷 웃었다.

그날 이후 '소양강처녀'는 내 노래가 되었다. 누군가가 부르려하면 모두들 입을 모은다.

"안 돼. 소양강처녀는 영조엄마거야"

거참 이상하다. 그때부터 노래방 기계 앞에만 서면 노래바보가 되어 버렸다. 점점 노래 부르기를 포기하였고 노래하는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그러니 제대로 아는 노래 한곡도 없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가지 재주는 갖고 나온다 한다. 비록 노래는 못해도 남들이 즐겁다면 그 또한 재주이니. 음치에 박치 인 것이 그다지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지금 세상은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투성이이니 오히려 음치의 희소가치가 더 돋보이지 아니 하겠는가! 그래. 용기를 내자. 이번 모임에 꼭 참석하여 타고난 음치재주를 가지고 그들의 배꼽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자. 노래 바보인 나의 노래에 목젖까지 들어내 놓고 박장대소할 그들의 모습을 나도 한껏 즐겨 보자구나. 두렵기만 하였던 모임이 사뭇 기대되니 정말 세상사는 마음먹기 나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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