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딸

2016.02.16 14:54:44

박선예

수필가

무심코 켠 TV속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있다 없다'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며느리가 있는 나로서는 꽤 시선을 끄는 프로그램이었다. 얼른 하던 일을 멈추고 TV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깜짝 놀랐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들의 입장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며느리들의 하얀 거짓말에 놀랐고 시어머니들의 거침없는 반격에 통쾌하였다.

아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지 어언 열 두해 째이다. 며느리와 처음 만난건 아들이 대학 2학년 때인데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싶단다. 착하고 귀여운 인상에 생글 웃는 모습이 싫진 않았지만 아직 어린것들이 당돌하다 싶었다. 결국 양가의 허락을 받고 무려 팔년 동안 교제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주 만났고 본의 아니게 며느리의 이십대를 지켜보았다. 멀리 있는 친어머니보다 며느리의 청춘시절을 더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일까. 내 며느리는 정말 딸 같다.

그런데 TV속의 며느리들은 아니란다. 시어머니는 결코 엄마가 될 수 없단다. 며느리가 딸이라니. 말도 말란다. 며느리도 딸이라고 강조하는 시어머니들이 더 무섭단다. 혹시 우리 며느리도 TV속의 며느리들과 같은 생각일까·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왔다.

하기는 결혼한 지 사십년이 가까워졌건만 난 지금도 시어머니를 만나면 긴장이 된다. 혹시 책잡힐까 조심스럽다. 불만이 있어도 안 그런 척하고 시키면 군소리 없이 해야 되며 잘 할 수 있는 일도 물어보고 하는 강박증마저 가지고 있다. 이러한데 나는 며느리가 딸 같다니. 참 어불성설이다.

얼마 전 딸이 물었다.

"엄마, 오빠 집에 가면 냉장고 열어보세요?"

"그럼, 지저분할 때는 청소도 해주는데."

딸이 펄쩍 뛰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며느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 예고 없이 방문한 시어머니가 냉장고 열어 보는 거라고. 그때 난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야. 우리 며느리는 안 그래." 딸은 한심한 듯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남겼다.

"난 엄마 딸이지만 다른 집 며느리이기도 하거든요!"

설 명절 날, 딸이 책 한 권을 놓고 갔다. 그 책을 읽으며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시어머니로 사는 법에 대해서는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마 내 나이쯤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며느리들은 아직 시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며느리시절을 겪어보았으니. 며느리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시자가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요즘 며느리들과는 사뭇 다르지만 우리들 역시 가슴이 벌렁거리던 며느리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혼과 동시에 자식들은 새 가족이 생겨 우리 곁을 떠났는데도 우리부모들은 그 끈을 놓지 않았다. 아직 내 자식이라고 내 가족이라고. 참견하고 질책하면서 너무 쉽게 대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었고, 하늘에서 유일하게 허락한 아름다운 삼각관계라는 고부관계에도 갈등이 시작 된 것만 같다.

이제는 자식들과 거리두기를 하려 한다. 일 년에 몇 번만 만나는 귀한 손님이라 여기고 그냥 멀리서 담담하게 바라보려한다. 금지선을 지켜도 변함없는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멀리 있대도 내 아들은 분명 내가 낳았고 내 며느리가 딸 같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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