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들아, 우리도 명절 후유증을 앓는단다

2014.02.10 17:49:18

박선예

수필가

설 명절을 치른 지 벌써 여러 날이건만 아직도 신체 리듬이 영 엉망이다. 힘에 부칠 정도로 고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밤잠을 설친 적도 없는데 온몸이 뻐근하고 천근만근이다. 만사가 귀찮다. 이대로 있으면 더욱 가라앉을 것만 같아 마음을 다잡고 모임장소에 나갔다.

"명절 잘 보내셨어요. 근데 왜 얼굴이…?"

싹싹하고 야무진 막내 회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기운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야."

"우리 모두 다 그래요. 그 증상이 바로 명절증후군이래요."

어느새 설 연휴 동안 겪었던 사연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랐다. 연령층이 다양해서일까 서로의 생각 차이가 너무 컸다. 젊은 회원들은 마땅한 핑곗거리만 있으면 시댁에 가지 않는단다. 시댁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맏며느리라 항상 책임 때문에 힘들다는 회원의 입장이야, 백번 이해할 수 있지만, 시어머니가 설거지도 안 시킨다는 회원까지 시월드 스트레스가 있다니. 참 어안이 벙벙하다.

문득 TV 대담프로그램 한 장면이 떠올랐다. 며느리들이 명절 때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벌써 가느냐는 시어머니의 말이란다. 그 말에 발끈 화가 나서 그만 TV 속의 깜찍한 출연자 말에 반박했다.

"아이고, 요즘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는 유행어도 모르나?"

명절을 앞두면 할 일이 태산이다. 가래떡을 뽑아 썰어야 하고 만두를 빚어야 하며 나물거리 전거리 탕거리도 챙겨두어야 한다. 명절 후, 아들과 딸 손에 들려 보낼 참기름과 볶은 참깨, 밑반찬 몇 가지를 준비해놓고 잠시 숨을 돌리려 해도 그럴 여유가 없다. 지저분한 냉장고와 싱크대를 그냥 놓아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서둘러 정리하고 행주도 뽀얗게 삶아 놓고야 마음이 놓인다. 어디 그뿐이랴. 행여 어린 손자들에게 해가 될까 싶어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해야 하고 이부자리도 빨아서 말려놓아야 한다. 손자들의 설빔도 준비해야 하고 세뱃돈까지 챙겨 놓다 보면 어느새 명절 전날이다. 귀성길이 막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들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음식을 데우기 여러 번. 그만 제풀에 지치고 만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초인종 소리와 함께 우리 집은 그때부터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만다.

문제는 연휴가 끝난 다음이다. 대식구의 먹을거리도 책임져야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도 돌봐줘야 하며, 잠 한번 실컷 자는 것이 소원이라는 딸과 며느리의 원도 들어주다 보면, 연휴 내내 강행군의 연속이다. 그렇게 지내다 모두 떠나고 나면 온몸이 아파진다. 금세 손자들이 보고 싶어 가슴까지 먹먹해 온다.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앓게 되는 명절 후유증의 조짐이다.

시월드 이야기에 신이 나 있는 젊은 회원들은 이런 시어머니들의 속사정을 알까? 답답한 마음에 그만 한마디를 던지고 말았다.

"며느리들아, 우리 시어머니들도 명절 후유증을 앓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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