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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올림픽이 끝나고 메달리스트들이 담담히 전하는 뒷이야기는 시상식 장면 못지않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심판의 오판으로 금메달을 놓치고 은메달을 목에 건 채, 서럽게 울었던 유도선수가 3년 만에 돌아온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걸고 활짝 웃으며 후회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밥을 먹던 친구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이제 우리가 금메달이래, 돌아온 금메달!"

그도 나도 아들만 둘을 키우고 있다. 꽤 오래전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딸 둘을 낳은 엄마를 금메달이라 추켜 주던 시절이 있었다. 은메달은 아들과 딸을 골고루 둔 사람이고, 아들 둘을 낳은 엄마는 동메달도 아닌 목메달이라는 말들이 떠돌았었다. 뿌리 깊은 아들 선호사상에 설움 받던 어머니들의 한스럽던 푸념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데. 딸을 둔 엄마들의 금메달이 돌고 돌아 아들만 둘을 둔 엄마들에게 다시 왔단다.

목메달리스트들이 금메달을 되찾은 원인은 다름 아닌, 손자의 육아에서 후 순위에 있기 때문이란다. 경제적인 이유로 맞벌이가 당연해지기고 육아에서는 아내의 할 일이 남편보다 더 많다. 쉽지 않은 육아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친정엄마를 떠 올리는 건 당연한 순서겠다. 그런 이유로 친정 근처로 이사하거나, 처음부터 친정집 옆에 사는 게 흔한 일이다.

이 무렵, 기존의 금메달리스트에게 금메달을 사수할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권이 주어지기는 한다. 아이를 돌봐 줄 수 있느냐는 말에 매몰차게 '노'를 하면 되지만, 부모된 입장에서 딸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 며느리의 경우라 해도 다르지 않다. 아이가 귀하고, 아기 기르기 또한 쉽지 않은 세상에서 손자의 육아는 모든 어머니에게 던져진 숙제라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한 지인은 올해 퇴직한 남편과 함께 외손주를 돌보느라 꼼짝 못 한다. 아기를 업어주다 재발한 허리 통증으로 한의원에 침 맞으러 다니는 것 외에는 외출도 어렵다. 그렇다고 어렵게 취직한 딸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라고 말할 수는 없더란다.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 견디며 돌보는 중이라 한다.

이태 전에 아들을 장가보낸 친구는 젊었던 시절에 먹고사느라 바빠 아들을 친정어머니 손에 맡겼단다. 빨리 크기만 바랐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고, 자식 키우는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커버려 아쉬운 마음이 크단다. 마침, 그 아들이 가정을 이루었으니, 머잖아 태어날 손주에게 사랑을 마음껏 퍼부으며 키우겠다고 열심히 준비 중이다. 장롱에서 잠자던 운전면허를 살려내고, 텔레비전의 아동 행동교정 프로그램에 나오는 오은영 박사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아동심리학 서적도 찾아 읽는 중이란다.

안온한 노후 생활의 금메달을 벗어던지고, 기꺼이 목메달을 선택한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가끔 잊는다.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그렇고, 당신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이유 없이 계속 울어대는 갓난아기를 안고서 함께 울어본 적이 있지 않았는가. 밤낮이 바뀐 갓난아기를 들쳐업고 찾아간 친정집에서 나던 익숙한 냄새에 고단했던 마음이 푸스스 녹은 적도 있었잖은가.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맡겨놓고, 더운 아랫목에서 꿀 같은 단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의 따뜻한 안도감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머니의 딸이기도, 딸의 어머니임을 기억한다.

그러니, 당당해지자. 금메달은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 딸들의 것이고, 그 딸을 위해 기꺼이 목메달을 선택하는 어머니들의 것이다. 우리 목메달 대신 금메달을 걸자. 서로서로 걸어주자. 도쿄 올림픽의 영광스러운 수상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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