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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노란색 꽃 무더기가 산책길을 환하게 밝힌다. 연초록 잎에 선명한 노랑꽃, 애기똥풀꽃이다. 이름도 귀엽다. '애기'라는 말이 들어간 대부분의 이름은 작거나 가여운 느낌이 든다. 줄기를 꺾어보면 노란 액체가 동글 맺힌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손톱에 콩콩 찍어 노란 꽃무늬를 그리며 놀던 시절이 생각난다. 꽃 이름에 '똥'이라니, 무려 애기와 똥이 합쳐진 이름이라니, 오물이라도 묻은 듯해 애기똥풀이란 이름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절로 앞의 글자 '애기'에 마음의 방점을 찍게 된다. '애기'라는데, 그 보송보송한 몸뚱이 안에 노란 똥이 가득 들어있건, 생떼든, 심술로 가득 찼건 상관없다. 노란색이 주는 맑은 느낌과 단순한 동그라미 네 장이 연결된 원형적인 꽃 모양이 천진하다. 게다가 노란색 똥을 싸는 꽃이라니, 어느 꽃의 이름이 이보다 더 귀염귀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듯 체온이 느껴지는 정다운 이름을 지은이는 아마도 아이를 낳아 똥까지 예뻐하며 길러본 사람이겠지.

꽃망울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에는 솜털이 듬성듬성 나 있어, 어린 아기의 민머리 같다. 꽃이 피어나면 두 조각의 꽃받침이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는 넉 장의 동그란 꽃잎이 펼쳐진다. 꽃잎 가운데 여러 개의 수술이 솟아 있고, 한 개의 암술이 씨방으로 변해 나란히 씨를 보듬어 여물기를 기다린다. 꽃줄기 끝마다 피어나는 꽃들은 기다란 씨방 안에 씨앗을 품고, 어느 순간 바람의 기척에 놀라는 척, 씨방을 터트려 씨앗들을 시집 보낸다. 그렇게 작은 풀들 안에 세상의 비밀을 담아 기다리다 바람이 흔들리는 순간에 영원이 함께 존재함을 알린다.

애기똥풀에는 노란색 피가 흐른다. 뿌리부터 꽃송이까지. 심지어 씨방에까지 노랗게 흐르는 것은 피다. 풀은 축축한 도랑 가에 자리 잡고 앉아있다. 줄기의 가운데는 욕심을 비우듯 텅 비워두고 가장자리에 물관을 따라 흐르는 노란색 피를 길어 올려 노란꽃을 피운다. 꽃은 검은 씨앗에 역사를 담고, 꿈을 눌러 담아 햇빛 속에서 단단히 여물게 한다. 여문 꼬투리는 어느 마침 한 바람이 부는 날, 몸을 비틀어 대물림을 완수하리라.

붉은 꽃을 피우는 장미에는 붉은 피가 없고, 푸른 꽃의 달개비 꽃대를 아무리 꺾어보아도 맑은 물만 맺힐 뿐이다. 꽃이 노랗다고 피조차 노란색을 가진 풀이 어디 그리 흔한가, 그런 의미에서 애기똥풀이야말로 노란 꽃 가문의 진골이지 싶다. 마음 바닥에서 수시로 충돌하는 표리부동의 이중성을 생각하면, 노란 피를 가졌기에 노란 꽃을 피우는 곧이곧대로의 애기똥풀꽃이 부럽다.

미우니 밉다고 하고, 예쁘니까 예쁘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진대, 그런데도 미운 것을 예쁘다고 말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 버겁다. 조금은 유치하고 조금은 위험한 피를 가진 이 꽃은, 마음 바닥에 가라앉은 진심마저 갈등 없이 명쾌하게 살고 있을까.

얼굴이야 해사한 웃음으로 치장하더라도, 입을 통해 내놓는 말만큼은 달콤하지 말았어야 했었는가, 맘속을 흐르는 피가 쓰디쓴 검은빛이었다는걸 누군가 알게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런데도 듣기 좋게 하는 말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마음속에 일고 있는 갈등을 그대로 표현하는 건 아마추어라고, 그러니 표 내지 말라고, 그래야 교양있는 어른인 거라고, 오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썩이는 마음을 누른다.

아기의 엄마인 천사가 인간에게 잠시 맡겼다가 데리고 간 후, 아기가 사라진 자리에 애기똥풀꽃만 군데군데 피어 있더라는 전설이 피워낸 꽃말은 '몰래 주는 사랑'이란다. 몰래 '하는' 사랑이 아닌 것이다. 주는 사랑, 그것도 '몰래' 주는 사랑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사심 없는 애정을 마구마구 퍼부어 주고 싶은 애기똥풀꽃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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