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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가족을 잃은 여자와 가족이 없어 외로운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 말로는 다 못하는 감정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전할 때 노래가 흐른다. 이쯤에서 시청자를 울게 만들겠다는 연출가의 계산된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난 훌지럭거렸다.

드라마 속 여자는 불면증으로 잠들지 못한다. 무의식이 잠을 밀어낸다. 아이를 잃은 여자는 슬픔을 분노로 바꿔 자신을 마구 헝클어 버린다. 여자에게는 힘들 때 힘이 될 가족이 없다. 소중한 것이 아무것도 없던 그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다. 췌장암을 앓고 있어 한 달 정도밖에 못산다는 남자. 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사라지고 난 후 힘들어할 여자를 생각하며 시작되는 사랑 앞에서 멈칫거린다. 하지만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게 어디 사랑이겠나.

몰입이 과했는지 갈증이 인다. 찬장을 뒤져 원두를 간다. 드드득 드드득 원두가 으깨어지며 향이 퍼진다. 카라멜과 견과류의 향, 구수한 곡물 냄새, 탄 냄새와 약간의 꽃향기가 좋다. 평소에는 구별조차 어렵던 여러 향기가 한껏 깨어있는 감수성 탓인지 예민하게 느껴진다. 아이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죄책감에서 얽혀 시작된 관계이긴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드는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너무도 살고 싶다고 읊조리는 드라마 속 그 남자의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라는 게 있다. 삼각형을 이루는 친밀감, 열정, 헌신의 균형으로 사랑의 형태를 설명하며 이 세 가지 요소가 적당히 균형을 이룰 때 성숙한 사랑이 된다고 한다. 친밀감만 있는 경우는 사랑이라기보다 좋아함이라 말하며, 열정만 있는 경우를 도취적인 사랑이라 한다. 그리고 헌신의 요소만 있는 경우에는 공허한 사랑이 된다.

남자는 헌신으로 사랑을 완성하려 한다. 물론, 헌신은 마음먹는다고 쉽게 할수 있는 게 아니다. 헌신적인 사랑은 사랑의 맨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에 헌신만 있는 사랑은 허무하다. 친밀함과 열정과 헌신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빛깔을 잃기 마련이거늘, 한쪽의 헌신만 가지고는 온전한 사랑이 되기 어렵다.

시작부터 불안정한 사랑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들의 사랑이 힘들어 보이는 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아니, 자신에게 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불행한 이유는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이리라.

거실거실하게 갈린 원두를 종이 필터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었다. 사랑한다는 건, 커피 알갱이가 가진 향기와 맛과 색깔을 더운물에 녹여 커피 음료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커피 가루가 더운물을 머금고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다. 시작되는 사랑의 처음도 이런 모습이리. 물에 젖은 뜨거운 감정이 마음을 적시고 새어 나오는 것처럼 커피의 첫물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하면 한두 방울의 향기에도 마음은 들뜬다. 그리고는 이내 달콤함에 취하기도 하고, 검은 커피의 쓴맛을 머금은 듯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스러워지기도, 행복해지기도 한다.

사랑이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쓰고, 떫고, 탄내 나는 것들과 향기롭고, 구수하고, 달콤한 모든 것들을 더운물에 녹여 새로운 이름을 얻는 커피 같은 것이다. 내가 가진 색깔을 알아봐 주는 당신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그래서 혼자 있을 때보다 더욱 빛나는 존재로 느껴지게 되는 것, 그렇게 당신의 마음에 향기처럼 살아 있음을 아는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꽤나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드라마 속 몸이 아픈 남자와 마음이 아픈 여자의 고단한 사랑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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