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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마음과 몸이 제 자리에 있지 않고 어긋나 있으면 탈이 난다. 마음에 멍이 들든지, 몸이 아픈 법이다. 물러갈 기미가 안 보이는 계속되는 추위 때문인지 남편 마음이 봄을 찾아 어디론가 떠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편의 난데없는 반찬 투정을 이해할 길이 없다. 밥맛이 없다기에 아침 일찍부터 육개장을 끓여 밥상에 올렸건만 시큰둥이다. 몇 숟갈 뜨다가 옛날 엄마가 해준 음식이 먹고 싶다며 수저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게 아닌가. 기막혀 대꾸할 생각도 없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음식 앞에서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 음식이 먹고 싶다니, 이 남자가 이상해졌다며 혼잣말로 구시렁구시렁 설거지를 마쳤다.

솜씨 좋은 어머님이 만드신 음식은 언제나 맛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와 새삼스레 어머니 음식 타령이라니, 어디가 아픈 건가· 지난 연말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별문제가 없었는데···. 어쩌면 겨울의 끝자락과 성급한 봄이 밀당하는 이 계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의 봄맞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시작되는가 보다. 마음이 제자리를 못 찾고 봄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때면 그 누구라도 엄마의 따스한 품이 생각나는 법이긴 하지….

짠한 마음에 마트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아 신선식품이 진열된 곳으로 가니 봄동이 금방이라도 밭으로 내달릴 것 같은 기세로 매대 위에 올라앉아 있다. 초록이 진한 넓은 잎 뒤엔 붉은 흙이 묻어 있고, 싱싱한 줄기는 옆으로 납작하게 퍼져있다. 퍼런 낯빛의 봄동은 방금 먼 황토밭에서 억울하게 잡혀 온 듯 보였다. 오호라! 남쪽 어느 밭에서 겨울바람을 피해 납작 엎드려 목숨을 부지했을 놈이라면 남편 입맛을 되돌리기에 제격이겠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바람에 풀풀 날리는 황토를 부여잡고 겨울을 견뎠으리니, 그 강인함이면 방황하는 남편 마음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으렷다.

이름도 봄똥 아닌가. 입술을 오므려 발음을 해보니 따뜻함과 간지러움, 설렘 같은 느낌이 전해온다. 맨발로 뛰놀다 흙 범벅이 되어 돌아온 개구쟁이의 천진함도 들어있는 듯하다. 투명 비닐에 봄동을 담으려니 줄기의 탄탄한 근육이 '뿌드득' 야성의 소리를 낸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온전하게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유효기간이 다한 사랑이 그렇고, 돌고 돌아 나에게 들어온 돈이라는 것도 결국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간다. 그나마 내 것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먹어 내 몸을 만드는 그것뿐이다. 내가 먹는 음식은 온전하게 나의 일부 또는 전부를 만든다. 어머니의 음식이 그리운 것은 어머니의 음식으로 내 몸이 만들어졌고, 그 음식의 양념처럼 버무려진 사랑은 조금씩 내 영혼을 살찌웠음에 있다. 어머니는 말보다 음식으로 당신의 진한 사랑을 전하려 하셨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만들 때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야 제맛이 나는 법이고, 건성으로 만든 음식은 배불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 허전한 마음일 때가 종종 있음을 경험한다. 깨끗이 씻은 봄동에 소금과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 버무렸다. 코끝을 자극하는 달래와 고소한 깨소금을 한 줌 넣고 정성을 다해 무쳤다. 한 줄기 돌돌 말아 간을 보니 봄의 맛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그래 이 맛이라면….' 조금 이른 저녁상, 하얀 접시에 봄동 겉절이를 그득하게 담으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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