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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청주YWCA사무총장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로 시작되는 그녀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가득찬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가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통해 기억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통해 다시 쓰여질 것이다. 지난 9월26일부터 3일간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 주제로 청주여성영화제가 진행되었다. 그녀 자신의 이름을 지키며 세상을 바꾼 여성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누구의 딸,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로 규정당하며 살아가지 않았다. 여성 개인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며 삶을 이룬다. 누구의 딸이며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회관계계를 이루고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삶의 무늬를 만든다.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은 이름을 가진 구체적 개인이기보다 강요당한 '여성'으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들은 거기 없다. 삶의 갈피갈피 주름진 그녀들의 삶을 찾을 수 없다. 그녀들이 안보이니 그녀들의 이름도 없다.

그녀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녀들이 지닌 고유한 삶의 역사를 함께 껴안는 일이다. 가부장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역사 속 익명들의 이름표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구체적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여성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2017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내 이름은 어디에 있나요· (#WhereIsMyName·)운동이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은 대표적인 가부장제 사회이고 국가이다. 이곳에서 여성의 이름은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일 뿐이다. 내 아내의 이름을 다른 누가 부르면 가문의 수치라고 한다. 그녀는 나의 아내일 뿐이다. 결혼 청첩장에도 신부의 아버지, 신부의 남편 이름만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녀는 나의 소유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들에게도 이름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당당히 밝힐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한국사회도 불과 수 십년전인 조선시대 여성은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과 같은 극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는 이씨, 허씨등으로 불리며 평생을 무명으로 살아갔다. 혜경궁 홍씨, 폐비윤씨의 예처럼 가문이나 어떤 계층에 종속된 반절의 인간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기독교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비로소 이름을 찾았다고 한다. 초대 기독교여성들의 삶을 연구한 이덕주교수는 "여성들은 아무개 딸이나 ○○댁 등 이름 없이 살다 세례명을 통해 자기 이름을 찾았다"고 설명해준다.

1950년대~60년대 '순이'는 한국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희생이 필요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순(順)'은 어떤 의미와 의도로 이름에 쓰인것일까·

집안에서 조신하게 있어야 했던 어린딸들은 이제 순(順)의 이름으로 집밖으로 내쫓기며 가족을 위해, 오빠를 위해 노동자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2000년대 여성들은 더 이상 순이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성차별 성폭력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그 부당함을 고발하고 바꾸려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그녀들은 여전히 여성일뿐이다. 세상을 향해 맞서 싸우고 버티며 끝내 이겨낸 그녀들을 피해자 ○○ 사건으로 부르며 그녀들의 이름을 무력화한다.

이름은 그녀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타인과의 관계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명징화한다. 그동안 비어있고 밀려났던 그녀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본다. 순이로, 마리아로 추상화되고 강요당하고 이미지화된 이름이 아니라 개개인의 그녀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녀들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그녀의 이름으로 버티고 세상과 맞서 끝내 이긴 품위있는 여성들이다 "일본 정부에 고한다.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 빨리 사죄하라" 고 준열하게 외치는 그녀. 그녀는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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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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