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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청주YWCA사무총장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사용하는 언어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아가씨, 도련님, 유모(母)차, 저출산 등의 단어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왜 남성의 본가는 시댁(宅), 여성의 본가는 처가(家)로 불리며, 왜 부친 쪽 부모는 친할 친(親)이고 모친 쪽 부모는 바깥 외(外)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 속에서는 이미 수많은 편견과 차별, 불평등이 깃들어있다. 호칭 그까짓 것이 뭘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하지 말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언어의 집에 인간이 산다'라고 말했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편견과 차별,불평등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편견과 차별, 불평등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사회적 약속에 의해 정해진 규범에 따라 언어를 만들고 사용해왔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는 공통의 가치와 사상 약속이 깃들어져 있다. 가족관계의 변화와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는 새로운 언어를 요구한다.

성별 비대칭적 가족호칭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공론화 작업을 거쳐 가족 호칭 대안을 내놓기로 했다. 여성가족부는 22일 발표한 2019년 '건강가정 기본계획'에 민주적 가족문화 조성을 위한 성별 비대칭적 가족호칭 문제 개선안을 포함시켰다.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 등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남편의 동생을 부르는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라는 호칭을 계속 사용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여성의 93.6%, 남성 56.8%가 '바꿔야 한다'고 답할 만큼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사적관계의 호칭을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문화이기 때문에 호칭을 선언적으로 바꾼다고 바로 사용되는 게 아닐 것이다.어쩌면 호칭의 변화보다 평등한 문화와 소통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발생한 관행적 호칭의 불편함에 대해 함께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관계와 문화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일 수 있다.

필자도 결혼 후 시가의 가족관계 호칭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웠다. 손위 시누들에게 형님, 시동생에게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비일상적 상황은 시가에서의 '나'의 존재가 며느리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인 시가에서만 통용되는 호칭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등한 관계가 아닌 며느리로서 시가의 가족들을 존칭해서 불러야 하는 그 상황은 오히려 나와 시가의 가족들을 분리시키는 불편한 상황을 초래했다. 의무적인 관계를 표상하는 언어가 아닌 같은 세대를 다독이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었다. 다행히 손위 시누들에게는 언니로, 시동생과 동서에게는 00씨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동의를 해서 호칭을 부를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사라졌다. 호칭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남편가족과 며느리로서의 관습적 관계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자매애로 관계할 수 있는 호칭의 변화는 서로의 존재를 마주할 때 생기는 감정이나 행동까지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상대방을 "부른다"는 행위는 인간 사이의 가장 근원적인 조우방식이다. 불리워 질 때 인간은 비로소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노래한 김춘수의 시 "꽃"은 이러한 관계를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호칭은 인정의 출발점이자 어찌보면 서로의 위계를 나타내는 계급장의 역할을 한다. 나이, 지위, 직업 등 정체성의 일부분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그런 기대에 어긋날 때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긴다. 설명절이 곧 다가온다. 여전히 불평등한 언어의 집을 짓고 있는 한 존재들은 그 집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성평등의 사회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이즈음, 서로의 평등한 관계를 나타내는 멋진 호칭을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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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