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충북을 뒤흔든 현대사 사건.사고 - (7)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

대전.천안과 경합 끝에 12년 노력 ‘쾌거‘ 이룩

  • 웹출고시간2007.11.08 12:19: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005년 6월 30일 오후 7시30분.
충북 도민들은 짜릿한 한 편의 장편 드라마 끝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청주시청 앞 호남고속철도오송(청주)분기역 유치 추진위원회 사무실.
추진위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외쳤다.
“만세. 우리가 해냈다.”
그렇다.
그것은 12년 동안 온갖 험준한 길을 헤치고 거둔 결실이었다.
당초 이날 오후 4시에 예정됐던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선정 발표는 충남·호남지역의 반발로 늦어져 오후 7시30분에 발표됐다. 국토연구원은 이날 후보지 최종 선정을 위한 10차 분기역추진위원회를 열었다.
그러나 충남·호남 추천 20명의 평가위원 이탈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국토연구원은 충남·호남권을 제외한 55명의 평가위원이 심사한 결과만으로도 분기역 확정이 충분하고 국책사업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 발표를 강행했다.
“충북 87.18점.”
국토연구원은 충북 오송이 접전을 벌인 대전(70.19점)과 천안(65.94점)을 누르고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선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3년 8월 24일 정부가 호남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발표한 이래 12년 동안 수많은 난관과 산고(産苦)를 겪은 끝에 이룩해 낸 쾌거였다.
같은 시각, 충북일보 편집국은 바쁘게 움직였다.
당초 일정보다 3시간 30분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신문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장 취재에 나선 취재기자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현장의 진행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내면서 긴장감은 고조됐다.
최종 후보지로 오송이 발표되자 취재진의 움직임은 부산했다. 흥분 속에서.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는 충북 발전에 기폭제가 될 중요한 사업이었다. 오송분기역 유치 발표 직후 충북도와 유치추진위의 기자회견, 충북도의회와 열린우리당·한나라당 충북도당의 환영 성명서 발표가 잇따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는 충북을 국가 고속철도망의 허브로서 발전시키고 나아가 앞으로 중국대륙과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국제적 핵심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된 사업이다.
또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2~3기 민선지사를 지내면서 추진한 최대의 현안사업이기도 했다.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는 이 전 지사를 중심으로 지역 국회의원과 시민사회단체의 열정과 의지가 담겨 있는 충북도민의 승리였고 충북 100년사에 길이 남을 대업이었다.
이 같은 성과를 이루기까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충북은 1995년 10월 31일 시민대토론회를 계기로 호남고속철도기점역오송유치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민·관 합심으로 본격 유치활동에 나섰다.
충북은 기존 충북선을 활용해 강원권을 연결하는 X자형 철도망 구축을 기본방침으로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에 온힘을 쏟았다.
그러나 충북의 추진 의지에 첫 시련이 닥쳤다.
1999년 12월 18일 건설교통부가 4차 국토종합계획 중 국가기간교통망계획을 고시하면서 충남 천안을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충북에서 즉각 반발했다. 충북도의회 전체의원 27명 중 무소속과 비례대표를 제외한 20명(자민련 17명, 국민회의 3명)이 집단탈당하고 삭발로 항의하는 도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처럼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는 충북에겐 절박한 지상과제였다.
충북의 이 같은 거센 반발에 건교부는 분기역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추후 결정할 것이란 약속으로 사태를 일단 마무리했다.
충북은 이어 2000년 3월 22일 단양군청에서 열린 3도(충북, 강원, 경북) 협력회에서 오송유치 공동합의문을 이끌어 지지기반을 넓혀 나갔다. 정부는 2001년 5월 분기역 선정을 위한 재용역에 착수했다.
그러나 2003년 7월 4일 열린 재용역 최종 공청회에서 천안이 오송보다 유리하고 호남고속철도를 복복선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안이 제시되자 버스 8대에 나눠 타고 상경한 충북도민 350여명이 격렬히 항의했다.
이에 건교부와 교통개발연구원은 분기역 선정에 따른 부실한 용역 결과를 시인하고 분기역 선정을 연기했다.
이어 건교부는 2004년 10월 국토연구원에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을 감안한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 보완용역’을 발주했고, 2005년 3월엔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의 논란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송분기역 유치는 새 전기를 맞았다. 충북은 2005년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의 해’로 정하고, 오송분기역유치위원회 등 민간조직 재정비와 함께 도청 내 T/F팀을 조직해 평가에 대비했다.
반면에 충남이 천안분기역 유치를 자신하며 정치권과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광주·전북·전남 등 호남권이 천안분기를 지지하는 등 주변 여건은 악화돼 갔다.
그러나 충북은 정치권과 민간단체에서 호남지역을 직접 방문해 오송분기역 유치 타당성을 설명하는 등 눈물겨운 유치전에 나섰다.
그 결과, 광주·전남모범운전자회의 오송분기역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어 2005년 6월 30일 분기역 최종평가일을 앞두고 충북은 평가위원에 선정될 후보자 명단을 작성해 강원도 춘천부터 전남 목포까지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기다렸다.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으로.
마침내 전국의 15개 시·도(제주 제외) 전문가 75명으로 구성된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평가단은 6월 28일 합숙장소인 충주시 노은면 건설경영연수원에 모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각 시·도에서 선정된 평가단 75명 중 호남권 3개 시·도의 15명과 충남 5명 등 20명이 돌출행동에 나섰다.
호남권 평가위원들은 합숙 첫날인 28일 밤 11시께 “호남권 주민이 이용하는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결정 평가단에 강원권과 영남권이 왜 참여하느냐”며 이탈했다. 이어 충남 평가위원들도 다음날 오전 연수원을 떠났다.
합숙장소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선정추진위는 30일 오후 3시30분 나머지 55명의 평가위원으로 평가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추진위는 당초 오후 4시에 최종 후보지를 발표하기로 했으나 막판 진통 끝에 오후 7시30분 경기도 안양의 국토연구원에서 오송분기역을 최종 선정·발표했다.
충북도민들의 12년 유치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어 2006년 8월 23일, 오는 2017년까지 오송~목포 간 고속철도 건설을 내용으로 한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이 SOC건설추진위원회 심의를 통과, 오송분기역의 정부안은 최종 확정됐다.


/ 기획취재팀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