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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2.25 15:11:05
  • 최종수정2023.12.25 15:11:05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 공학박사

# 2000년의 시간을 간직한 채, 우리는

기원전 330년 세워진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는 한 여름밤 오페라 공연이 열린다. 공연이 끝나면 원형극장보다 더 오래된 골목길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입안 톡톡 차갑게 터지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다. 2천 년의 시간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시간이었다. 건축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현재에도 본래의 용도대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해 여름, 나는 그리스에서 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행복이라고 미리 운명 지워진 곳'이 있을까. 어떤 도시에 산다는 것은 미리 운명 지워진 것일까? 미국 최초의 여성 조각가인 해리엇 호스머는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지금 행복한지 묻지마. 하지만 정신의 연속적인 상태가 아주 유쾌한지, 기쁨에 넘치는지 물어봐 줘. 그럼 나는 그래, 라고 대답할게. 사람이 이토록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지금 여기 나처럼 말이야. 나는 로마 말고 다른 어디에도 살고 싶지 않아. 다른 곳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불가능하게만 보여.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장소 중에서 로마가 나를 위한 장소라고 말하겠어."

# 신도시=레고시티

나는 대전에서 태어나 자랐고 런던과 프놈펜, 서울과 세종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 여행하는 동안 이스탄불이나, 싱가포르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 마음속 '행복이라고 운명 지워진 곳'이 있다면, 그 도시는 다름 아닌 청주다. 나는 청주에서 살고 있고, 계속 살아내고 싶다.

세종에 잠시 거주하는 동안, 내내 외로웠다.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과 다양성이 주는 낭만이 그곳에 없었다. 새 직장, 새 동료, 그리고 새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풍경, 오래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새것이었다. 정부 청사 건물은 거대한 벌레처럼 도시 한 가운데에 앉아서 회색의 도시 이미지를 뿜어댔다. 상가 건물은 입점 브랜드의 구성과 배치가 비슷비슷하여, 마치 레고로 블록 쌓기를 한 듯했다. 세종시의 아파트 청약은 마치 로또 같아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청약 정보만 공유했다. 그 도시에서는 삶이 아닌, 반복되는 루틴만 있는 듯 했다. 어느 밤 호수공원에 가면, 모든 것이 어둠에 지워진 채 멀리에서 깜빡이는 도시의 불빛만 잠시 아름다웠다.

# 청주 만만세!

세종에는 없지만 청주에는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 중 하나가 골목길일 테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20대 청년과 남주동 골목길을 걸었다. 그는 "이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라며 신기해했다. 그리스와 로마처럼, 청주도 2천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도시다. 이 도시가 미래에도 아름답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을 품고 있어야 한다.

나는 다시 청주로 돌아왔다. 이 도시는 내게 '해리엇 호스머'의 '로마'와 비슷한 영혼의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집에서 나와 걸어갈 수 있는 장소에 직장이 있고, 도서관과 미술관이 있다. 푸르게 천이 흐르고, 사시사철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활력이 공기 중에 퍼진다. 우암산이 계절을 알려주고, 오래된 골목길과 낡은 집과 새 건물이 복잡하게 엉켜있어 숨바꼭질 하듯 보물같은 장소를 찾아내기도 한다. 트렌디한 카페와 맛집이 나란히 있고, 전통시장에서 싱싱한 과일을 값싸게 살 수 있다. 이 도시에서 나는 지루할 틈이 없다. 청주에 살지만, 종종 청주로 여행을 떠난다. 오래된 도시가 주는 온전한 풍요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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