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3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일요일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동도 트지 않은 이 시간에 무슨 전화일까. 혹시 부모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얼른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으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애비야, 오늘 뭐하니!" 별일 없으면 원주에 있는 절을 가자고 하신다. 내려앉은 가슴을 추스르며 새벽부터 왠 절이냐고 물으니 그냥 오래 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단다. 평소 다니던 절을 가까이 두고 왜 원주에 있는 절을 가자고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급하면 동생과 함께 다녀오라고 해도 나와 함께 가시겠단다. 무슨 이유일까.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둘이서 떠나는 여행길, 따사로운 햇살아래 노란 개나리의 꽃망울들이 희미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가 보다.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안았다. 남제천 톨게이트를 돌아 제천방향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기우뚱 하더니 뒷바퀴에서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펑크였다. 우선 급한 대로 견인차를 부르고 어머니와 나는 도로변 난간에 나란히 앉아서 한참동안 견인차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애비야, 괜히 오자고 했나보다. 그냥 집에 있었으면 이런 일은 안 당했을 텐데,.." 미안한 표정으로 자책하듯 말씀 하시는 어머니의 등 뒤로 노랑 할미새 한 쌍이 숲속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집을 떠나온 지 한나절이 지나서야 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는 미륵산 용화사라고 새겨진 큰 돌이 서있고 절을 오르는 계단 위에는 포대화상이 해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계단을 따라 절 마당에 오르니 미륵부처님이 근엄한 자태로 연좌대 위에 홀로 서계신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미륵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은 용화사의 일상은 낯익은 석상(石像)들만 여기 저기 서 있을 뿐 한산하다. 어머니를 따라 지장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절에서 지장전은 죽은 사람이 극락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록 명복을 빌어주는 곳이다. 전각(殿閣)안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위패로 가득 차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더니 한 위패 앞에서 한참동안을 서계셨다. 가까이 가보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죽은 사람에게 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물건이 위패 아니던가.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위패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으니 어머니가 다니는 절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의 권유로 이곳에 위패를 모시게 되었단다. 살아생전 모셔 놓으면 부부의 정도 깊어지고 건강하게 오래 사신단다. 죽어서도 삼악도(三惡道)에 빠지지 않고 극락왕생 하신단다. 아무도 모르게 어머니께서는 사후세계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준비를 하신 걸까. 정신이 없어지면 이것마저도 못하실까봐 서둘러서 하신 건가, 자식들에게 폐가되기 싫어서 말씀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가. 이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오자고 했단 말인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 동안 나는 자식들 커가는 것만 알았지 부모님 늙어 가는 것을 잊고 살았다. 보고 싶어 달려가면 언제나 내 곁에 계시는 분으로만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어머니가 봉투 하나를 건넨다. 열어보니 위패증서였다.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오래도록 이 절에 모셔 두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에 부모님이 안 계셔도 이 증서를 들고 와서 위패를 찾아보라는 어머니의 유언처럼 느껴졌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하늘 위로 때 이른 하현달이 애처롭게 걸려있다. 숙제를 마친 아이처럼 뒷자리에 앉아 편히 잠든 어머니를 바라보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