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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송화가루 날리는 일요일 오후, 우암산 자락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조그마한 절, 관음사의 일상은 바쁜 듯 고요하다. 연초록 수액이 흐르는 불두화의 향기 속으로 장삼자락 휘날리며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그 옛날 할머니도 불두화가 피는 이맘때가 되면 청결한 학처럼 새 옷을 갈아입고 이 절을 찾았다. 일찍이 혼자돼 쓸쓸하고 외로운 삶, 부처님을 남편삼아 이 절을 친구삼아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오색 연등이 허공을 가르며 주렁주렁 달려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연등을 밝히는 중생들의 마음은 욕심과 갈등의 마음이 아니라 자비와 용서의 마음이라고 들었는데, 저 많은 연등 속에는 어떠한 마음들이 들어있을까. 힘든 세상, 부처님의 자비아래 땀 흘려 살아가는 소박한 중생들의 간절한 소망들이 담겨져 있겠지. 가난하지만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바친 등불 하나가 잘 사는 사람이 바친 등불보다도 공덕이 크다고 하지 않았던가.

빛바랜 단청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서니 관세음보살을 염호(念呼) 하는 염불스님의 독경소리가 청량하다.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절을 하고 계시는 저 노(老) 보살은 무슨 소원을 그리도 간절하게 빌고 있을까.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좋은 날, 좋은 시에 자는 듯이 데려가 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있는 것일까. 취직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큰 손자를 위한 기도일까. 굽은 등에 가는 다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하고서도 노보살의 기도는 끝날 줄을 몰랐다.

살아생전 할머니도 저런 삶을 사셨다. 흐르는 시간 속에 손과 발은 늙었어도 세월의 때가 묻어 반들반들해진 백팔염주를 손에 쥐고 자손들 잘되기를 부처님께 빌고 빌던 할머니의 옛 모습이 법당안의 향불처럼 살아 오른다. 매일같이 새벽이면 이 절에 올라 청춘에 먼저 가신 지아비의 극락왕생도 빌고 또 빌었겠지.

가만히 눈을 감고 염불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관세음보살을 따라 부르니, 세속에 찌들었던 내 마음도, 번뇌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해탈(解脫)한 부처님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 현재에 충실하면 행복은 찾아오리니. 마음을 비우면 행복은 커지리라." 어디선가 부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부처님이 모셔진 닫집위에 동그랗게 그려진 벽화 하나, 누가 그렸을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살아오면서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나. 돌이켜 보니 그것은 욕망과 집착이었고, 끝없이 솟아나는 나의 욕망은 마음의 괴로움만 더했을 뿐이었다. 저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나는 언제쯤 진실로 깨달을 수 있을까. 염불스님의 구수한 독경소리가 끝나갈 무렵, 부처님께 합장하고 법당 문을 나서는 노보살의 모습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닮아있다.

모두가 떠나간 텅 빈 법당 안, 다시금 부처님을 올려다본다. 아직도 할머니의 온기가 남아서일까.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부처님의 저 모습 속에 지장보살 같았던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허공을 맴돈다. 가슴에 두 손 모아 백팔 배를 올리고 법당 문을 나서니, 스님도 불자들도 인기척이 끊어진 절 마당에는 붉게 물든 석양이 연등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돌아오는 부처님 오신 날에는, 아직도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할머니를 위해 소박한 등불 하나 밝혀야겠다. 그 날 만이라도 스스로를 불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연꽃처럼 세속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렇게 하루를 살아야겠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산문(山門)을 나서니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솔바람에 천불전의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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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