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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나는 길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자연의 섭리가 경이롭다. 오늘도 국화차 한통에 사과 한 덩어리를 배낭에 넣고 화양동 숲길을 걸었다. 해마다 걷는 길이지만 자연은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지난 해 이 길을 걸을 때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는데 오늘은 푸르름이 가득한 신록의 계절이다.

주자(朱子)가 은둔했던 무이구곡이 이런 풍경이었을까. 높이 솟은 기암괴석 경천벽을 바라보며 운영담을 지나면 우암 송시열 선생이 낙향하여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즐겼다는 계곡 위의 작은 집, 암서재를 만난다. 부처님의 정기서린 도명산을 감싸 안고 장엄하게 흐르는 화양천의 절경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암서재의 툇마루에는 옛날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어우러져 청량하게 흐른다.

암서재를 지나 한참을 걸어서 구름에 물든 절 채운사에 들렀다. 마당을 쓸고 있는 스님의 뒷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속세를 벗어나 수행한 선승의 높은 법력 때문일까. 경건하게 들려오는 목탁소리를 따라 조용히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 서방정토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에 시선이 머문다. 누가 그려 놓았을까. 채운사에서 바라본 도명산의 풍경이 아름답다. 계곡에 흐르는 은빛물결을 따라 하늘 높이 치솟은 웅장한 바위와 골짜기 마다 들어선 아름드리 소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루고 있다. 산사로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이 채운사의 풍경소리와 만나 천상의 화음을 이루니 이곳이야 말로 부처님이 살고계신 도솔천이 아니던가.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능운대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다보면 버들강아지와 쪽동백나무, 비목나무, 야광나무, 풍게나무. 이름 모를 나무들이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옛날 비포장길 신작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미루나무는 우리 눈에서 멀어진지 오래지만 이곳에는 한그루가 잎사귀를 살랑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스치듯 지나가는 선경(仙境)을 바라보니 물소리도 산울림도 모두가 여유롭다. 자연은 이렇게 저마다의 몸짓으로 생명을 노래하고 있는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사사로운 일에 상처받고, 가끔씩은 푯대를 잃어 방황하면서도 더 빠르게 살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경쟁하듯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더디고 깊은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와룡암과 학소대를 지나 너럭바위가 하얗게 널려있는 파천에 이르렀다. 국화차 한 잔에 목을 축이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흘러가는 구름과 어우러진 산 속의 바람이 포근하다. 알록달록한 옷차림을 하고 유유자적 숲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저마다의 빛깔로 오늘을 기억하겠지.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어렸을 적 추억들도 떠올리겠지. 화양동의 유월은 신록을 물들이는 쪽빛햇살의 모습으로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가끔씩은 혼자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문명을 벗어나 혼자 걷는 길에는 여유로움이 있다. 그리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평안하다. 낯선 길을 마주하면 두려움과 설렘이 있고, 끝을 모르고 걸어야 하는 고행의 순간들도 있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가끔씩 넓은 세상을 만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우리네 인생도 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걷는다는 것, 나에게는 영혼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길이다. 이제는 나도 넓은 시야를 가져야겠다. 자연과 더불어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음 넓은 시야를,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의 속삭임에도 감동 할 줄 아는 여리되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저 멀리서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있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산 그림자 너머로 숨어버린 햇살을 따라 화양동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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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