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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가끔씩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잠시나마 도심 속 삶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연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그리워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절을 자주 찾는다. 절을 들러 스님과 주고받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또 다른 사색의 시간들이다. 오늘도 낙가산을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보살사를 들렀다. 주변은 개발의 여파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절 만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도시를 지척에 두고도 변함없이 산사의 낭만을 지켜주고 있으니 고맙기만 하다.

보살사의 일상은 평온하다. 주차장 귀퉁이에 차례로 줄을 서서 약숫물을 받는 사람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정겹다. 야트막한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인고의 세월을 버티고 서있는 오층석탑과 그 뒤로 소박하고 아담하게 자리 잡은 극락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절은 40여년전 친구들과 뛰어놀던 모습 그대로인데 세월을 따라 변한 건 중후하게 벗겨진 이마와 주름진 얼굴, 세파에 휘둘려 둘 곳을 모르는 내 마음 뿐이다.

많이 가지려는 욕심에 눈멀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가.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차갑고 냉정한 잣대로 아픔을 주었던 지난날들이 그저 먹먹하기만 하다. 철없던 시절 이곳에서 손잡고 뛰어놀던 코흘리개 친구들은 어디서 사는지 오늘따라 유독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절 마당에서 만난 스님이 보살사의 자랑 한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이곳 보살사 오층석탑에 봉안(奉安)되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탑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2,500년 전 부처님의 주검을 다비(茶毘)할 때 나왔다는 진신사리가 이곳 보살사에 봉안되어 있다니 부처님의 큰 뜻은 참으로 깊고도 넓기만 하다.

이곳에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다. 올해로 속세나이 92세로 한국불교 최고의 어른이신 종산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종산스님과 나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대학시험에 떨어지던 그해 어느 날, 방황 끝에 우연히 이 절을 찾게 되었는데 차 한 잔을 건네며 말을 걸어주신 분이었다.

어느 날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볼 줄 알아야지, 남의 허물을 먼저 보고 자신의 허물을 나중에 돌아보니 세상 시비(是非)가 끊이지 않는다고."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요즈음을 사는 우리가 지녀야 할 덕목인 듯하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기쁨에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탐욕을 비우면 그 자리에 자비가 자라고, 분노를 비우면 사랑이 자란다. 새봄에 나무들이 순을 피우는 것도 지난겨울 자신을 비우고 북풍한설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자연의 선물 아니던가.

지금은 연로하셔서 사람 만나는 것조차 힘들어 하시지만 스님께서 의과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친구의 죽음으로 잠시 들렀던 절, 그 인연으로 60여년 부처의 길을 걸어오셨다. 출가 후에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며 오래도록 마음공부를 하셨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직을 수행하러 서울에 가는 날이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고 공양(供養)은 언제나 보살사 공양주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전부였다. 스님께서는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아주 소박한 진리를 일생동안 몸으로 실천하셨다.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의대생의 길을 마다하고 사부대중(四部大衆)과 함께했던 스님의 삶은 보리수 아래 싯다르타 보다 번뇌가 적지 않은 인생이었다. 차 한 잔에 마음을 비우고 절 문을 나서니 산승(山僧)은 산에서 살아야 제격이라던 노선사의 사자후(獅子吼)가 낙가산에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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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