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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가족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명절날 오후, 중학교 다니는 조카가 질문을 한다. "큰 아빠, 청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예요·" 며칠 전 동생(조카의 아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교육의 도시, 양반의 도시라고 답을 했단다. 그런데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면 전국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이곳으로 몰려와야 하는데, 오히려 청주의 학생들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으니 교육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양반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안동이란다. 옛날 양반들이 살던 고가종택(古家宗宅)과 유교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조선시대 권문세가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그런 것일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20여 년 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청주박물관을 자주 갔었다. 그 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문명을 일구며 살다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청주에는 미호천을 따라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넓은 들판을 낀 물가, 낮은 구릉과 울창한 삼림, 미호천 주변은 선조들이 터를 잡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구석기시대 조상들은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지 않았을까.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겠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에서 나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 정북동에 있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다간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삶의 이야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국시대에도 미호천은 요충지였다. 그리고 이곳을 선점한 나라는 백제였다. 백제 사람들은 미호천과 무심천을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는데 그들이 정착한 곳은 미호평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신봉동 일대였다. 영토전쟁이 치열했던 5세기 무렵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내려오고, 남쪽에서는 신라가 올라오는 상황 속에서 백제가 목숨 걸고 지키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풍부한 물과 넓은 평야가 공존해 있던 미호천이 아니었을까. 신봉동 무덤에서 발굴되는 유물과 유적들이 그 때의 상황들을 말해주는 듯하다.

신라의 촌락문서 등을 미루어 보면 신봉동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무심천을 따라 운천동 일대로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서원경(지금의 광역시)을 세워 경주의 진골세력과 군인,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청주의 호족들을 견제했다.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도 가까이 있어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우리 조상들은 무심천을 따라 계속해서 남쪽으로 이동하여 고려시대에는 직지를 만들었던 흥덕사지 주변에, 조선시대에는 청주읍성이 있던 중앙공원 일대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 안에는 목사가 행정을 관장하던 동헌이 있었고, 병마절도사가 병사를 지휘하던 병영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청주는 정치와 행정, 군사와 교통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태조23년(940년), 청주라는 도시의 이름이 처음 생긴 이래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상에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가 흔치 않다. 긴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은 미호천에서 중앙공원으로 삶의 터전을 넓히며 문명의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도시의 가치는 꾸며서 되는 게 아니다. 오래도록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청주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생명의 도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문명을 일구며 삶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온 아주 오래된 '역사의 도시'다.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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