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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이른 아침 딸 태연이가 화사한 봄옷을 사들고 왔다. 예쁘게 포장한 걸 보니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다. 누구를 주려는 걸까. 기대와 호기심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 딸이 아내에게 선물을 건넨다. 아뿔싸, 오늘이 아내 생일이었구나. 아내의 생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태연아 고마워, 비싼 걸 왜 사왔어." 딸과 아내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나와 큰 아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본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미안한 마음에 출근을 하니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허공을 바라보니 무심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우리가 결혼한 지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낡은 단층 슬래브 집 지붕 위에 조그마한 조립식 방을 들여 신혼살림을 했다. 한여름 내리쬐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고, 겨울에는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유리창이 사시나무 떨 듯 밤새도록 떨었다. 늦은 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사대(四代)가 살았다. 아들, 딸 키우면서 시할머니에 시부모, 시누이에 시동생까지 밀려드는 집안일을 온몸에 담아 일만했던 아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 하는 것은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꿈이 있어 좋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좋았단다.

눈이 내리던 초겨울 저녁, 아버지가 몸조차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애비야. 오늘이 엄마 생일인데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하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집안에 크고 작은 일들은 아내가 잊지 않고 챙겨왔는데 어찌 된 것일까.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2층으로 올라가 아내를 다그쳤다. "잊을게 따로 있지. 어떻게 어머니 생일을 잊어. 장모님 생일이었으면 잊었겠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큰아들을 품에 앉고 단칸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만 흘렸다. 며칠 후 알고 보니 아버지가 생일을 잘못 알고 계셔서 생긴 일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아내를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니 슬픈 초승달 아래 별 하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뭇잎 물들던 어느 가을날, 아내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내 편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라고. 그때는 그 말이 대수롭지 않았다, 대가족 장남에게 시집와 층층시하 어른들 밑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을 아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 하나 믿고 살아온 아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나는 할머니의 손자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들로만 살았지 아내의 남편으로는 살아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화장품은 무엇을 쓰는 지 관심조차 없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행을 가 본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눈이 아프다며 투정을 부린다. 안과를 가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처진 눈꺼풀이 문제였다. 눈물샘에서 흘러나온 눈물을 처진 눈꺼풀이 덮고 있어 눈꼬리에 염증이 생겼단다. 곱던 아내의 얼굴에도 이제는 삶의 고단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돌아보니 아내는 대가족의 텃밭을 지키기 위해 추운 겨울 눈보라를 이겨내며 살아 왔는데 나는 가정이 유일한 휴식처라며 왕처럼 군림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아내는 집안일 온몸에 담아 살았는데 나는 내 일이 우선 이라며 아내를 외면하고 살았다. 철없던 남편의 지난날들이 아픔으로 밀려온다.

오늘 저녁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프리지아 한 다발 사들고 일찍 집으로 향해야겠다. 그리고 고백해야겠다. 지금 내가 행복한 건 우리 집 아궁이에 이맛돌처럼 살아온 당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쉽지 않은 인생길, 함께 걸어갈 당신이 있어서 정말로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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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