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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 청원 미원장의 어제와 오늘

인삼 등 특산물 사라지고 외지 상인 가득
마트 옆 골목서 30여개 매대 활기
유명했던 주막거리는 이름만 남아

  • 웹출고시간2013.06.09 18:43:0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983년 어느 날

고추, 담배, 인삼이 많이 났다는 1980년대 초 미원장의 모습. 50대 아낙이 동그마니 쪼그려 앉아 인삼을 팔고 있다.

ⓒ 임병무
청주에서 동남방 26㎞ 거리에 있는 '쌀안장' 미원(米院). 청주와 보은의 중간 지점인데다 샛길로 청천 화양동이 코끝에 닿아 있고, 청천을 지나면 괴산·증평에 이르게 돼 있어 산간지대이긴 하나 지방 교통의 요충지로서 제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미원이다.

그래서 미원은 산간 지방의 농산물이 집산되는 곳이었고, 청주의 길목인 까닭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젖줄이기도 했다.

향곡(鄕谷)의 저자바닥을 오가는 장돌림들도 대개 미원장을 거쳐 청주로 올라왔다. 때로는 장 고개를 넘어 증평 봉천장으로 빠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아랫녘에서 청주로 이어지는 길이 잘 포장돼 있지만 소몰이꾼이나 보부상의 지름길은 다소 다르다.

보은에서 창리고개를 지나 미원으로 가는 길이야 현재와 같지만 미원에서 삼거리를 지나지 않고 가덕 금거리에서 낭성으로 꺾어들어 상당산성을 지나 청주장에 도착했다. 창리를 거치지 않으려면 보은 산외면으로 통하는 싸리재나 채목고개를 넘기도 했다.

예로부터 '쌀안장'이라 불리던 미원장의 유래는 구구각색이나 '쌀안'이란 뜻은 상당산성 안, 즉 산의 안쪽에 있다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으로 변천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쌀이 떨어지지 않는 '쌀고을'이어서 미원(米院)이라 불렸다는 말도 있다. 청주평야와 이어지는 미원평야(평야라기 보단 분지에 가깝다)는 산간의 곡창지대로서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院)'자가 붙은 것은 쌀고을이라서가 아니라 고려 시대부터 이곳에 원을 뒀기 때문이다. 원(院)은 고려, 조선 때 출장 관리들의 숙박소였다. 한때 크게 번성했으나 그 사용자가 국한된 탓에 조선 후기부터 점차 쇠퇴했다.

그러나 원이 있었던 곳은 지방 교통의 요충지였고, 그 곳에서는 장의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지금도 장이 서면 불무골, 원닥골, 메나리골, 방죽골, 새논들, 물래동 할 것 없이 인근 마을의 주민이 몰려 성시(成市)를 이루나 그 규모는 날로 쇠퇴하고 있다.

인삼, 고추, 연초가 특용작물로 물화의 교역이 활기를 띠던 곳이었으나 오늘날 미원장은 끝물의 원두막처럼 쓸쓸해 보인다.

"장 받아라!"

장날은 교역의 기능 뿐만 아니라 사교의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깡통을 깔고 앉아 장기를 두는 장꾼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 임병무
참빗, 얼기빗, 옥지환, 목걸이 등을 파는 방물장수 앞에서 시골아낙이 이것저것을 만져보는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참빗, 얼기빗은 쳐다보지도 않고 이빨이 듬성듬성 난 플라스틱 빗을 냉큼 골라잡으며 흥정을 한다.

한쪽에서는 개폐식 트럭 위에 명태, 미역, 청태, 멸치 같은 건어물이 잔뜩 쌓여 있건만 매기(買氣)가 신통치 않은 눈치다. 또 다른 쪽에선 부화 40여일이 된 햇병아리가 조잘대며 주인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강냉이 튀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날갯죽지를 쫑긋 세운다.

생선장수, 채소장수, 인삼장수 등 좌고행상(座賈行商)의 숫자를 모두 합쳐도 50명이 채 안 되는 듯하다. 한때 곡식바리를 실은 우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고 꼬리를 물었던 미원장이었건만 시내버스가 등장하면서부터 빛을 잃기 시작했다.

보은에서 와 닿는 시내버스와 청주로 가는 시내버스가 연결돼 웬만하면 청주장이나 보은장을 보는 것이 변모된 미원장의 풍속도다. 미원장을 가장 많이 찾던 고듬이(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장꾼마저 이곳을 외면하고 청주장으로 향한다.

시장 한복판에서 스피커가 졸고 있는데, 장바구니를 챙겨든 시골아낙은 점심때도 안 돼 귀갓길을 서둔다.

/ 임병무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2013년 6월의 어느 날

새벽 어스름이 가시자 장돌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약속이나 한 듯 정해진 자리에 매대(賣臺)를 펼치더니 햇빛 가림 천막을 친다. 남의 자리를 빼앗았다간 싸움질이 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시간과 공간의 타이머신을 타고 날아온 2013년의 미원장. 우체국 옆길로 시작해 역(逆) 'ㄱ'자 모양으로 생긴 미원장은 고작해야 150m 거리다. 초입(初入)엔 강냉이와 뻥튀기가 잔뜩 쌓여 있는데 죄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들이다. "뻥이요~!" 하고 소리치던 강냉이 장수의 구수한 입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2천원만 줘. 가득 담았어." 채소 모종 장수 황근주씨에게 시세는 따로 없다. 부르고 달라는 게 값이다.

ⓒ 임장규기자
오전 9시쯤 되자 장이 활기를 띤다. 30여개의 노점 매대엔 별별 품목이 놓여 있다. 채소류, 과일류, 건어물, 젓갈류, 잡기류, 과일류, 채소 씨앗 등이 새 주인을 기다린다.

"아, 어딜 가. 좀 팔아줘 봐." 20년이나 미원장을 지킨 황근주(여·66)씨가 팔을 걷어 붙였다. 2시간 만에 마늘종 2만5천원 어치를 다 팔았다는 이웃 할머니의 '자랑질'에 약이 바싹 올랐다.

"오이 모종 5개에 2천원. 아니다. 6개 줄게. 더 줘?" 결국 7개를 담아주고 꼬기작 접힌 천 원짜리 2장을 받아든다.

옆에선 진천 초평저수지에서 잡았다는 우렁이 팔린다. 과거 미원 특용작물로 인기를 끌던 인삼, 고추, 연초는 장터에서 종적을 감췄다. 아직도 인삼이 많이 나기는 하나 대부분 외지 도매상들과의 '밭떼기' 거래로 판매된다고 한다.

장터의 매대를 외지인들에게 넘겨 준지도 꽤 오래 됐다. 미원장을 둘러보는 장꾼들은 60대 이상 노인들뿐이다. 젊은 주민들은 인근 농협이나 최신식 마트를 찾는다고 한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미원 곳곳에는 주막이 생겨나 행역에 지친 길손의 갈증을 풀어주곤 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손목 주막거리'라는 곳이 유명했는데 지금은 트럭 포장마차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용골 주막거리가 용곡2구로 바뀌었고 지금도 그곳을 주막거리 또는 주막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미원장이 청원에서는 가장 컸어. 저 건너편엔 쇠전이 있었는데, 하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방석집'도 번성했었지." "이 영감탱이가 별 소리를 다하네. 솥뚜껑 같은 손으로 퇴기(退妓) 엉덩이 주무르던 게 자랑거리여?"

탁주 한 사발에 가득 담긴 촌로들의 무용담에 정신을 팔다보니 어느새 취기가 잔뜩 오른다. 정오도 안 돼 갈지(之)자 춤을 추던 발걸음은 낫 휘두르는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장돌림 권수경씨가 남편이 직접 만든 농기구를 팔고 있다. 공산품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그녀의 입담이 구경꾼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 임장규기자
남편이 증평 대장간에서 때려 만든 농기구를 잔뜩 싣고 온 권수경(여·48)씨. 미원장과 진천장, 음성장, 괴산장을 떠돌며 전통 농기구를 파는 장돌림이다.

한창 남편의 기술을 자랑하고 있는데 웬 70대 할아버지가 와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잘 들긴 뭘 잘 들어. 저번에 사간 거 순 허당이더만."

장바닥에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권씨가 물러설 리 없다. "아유, 할아버지. 낫 한 번도 안 갈았죠? 집에서 어설프게 갈지 말고 가져와요. 전문가가 확실하게 AS 해줄 테니깐."

외형은 현대식으로 변했어도 자잘한 정(情)만큼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미원장. 어수룩한 촌로들의 속 꼬쟁이 쌈짓돈을 사냥(?)하던 떠돌이 약장수와 코흘리개 꼬마들의 혼을 쏙 빼놓던 야바위꾼의 화려한 손놀림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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