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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 괴산장의 어제와 오늘

역사 흐름 따라 산막이 시장으로 탈바꿈
600년 전통의 도내 최대 규모
대학찰옥수수 등 특산품 인기
젊은 혈기 탓?… 난데없는 숙박업 발달

  • 웹출고시간2013.07.14 18:25:3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한 대장쟁이가 줄로 쇠톱을 갈고 있다.

ⓒ 임병무
◇1983년 어느 날

초여름의 뙤약볕이 차창 안으로 깊숙이 내려 박힌다. 보광산 모래재를 숨차게 오르는 완행버스 안은 온통 장꾼들의 입놀림으로 시끌벅적하다.

삼베옷에 맥고자를 쓴 술청거리 촌로가 승차 지점도 아닌데 대중없이 손을 들어 버스를 멈춰 세운다. 벌써 해장술 몇 잔에 취기가 동했는지 눈동자는 허공에 달려 있고, 바지말기는 사추리 밑으로 반쯤 흘러내려져 있다.

"어이 봉출아, 부모님 모두 안녕하시냐. 모내기는 끝냈구?" 버스 뒷좌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떠꺼머리를 향해 몇 마디 던지자 총각은 반색을 하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술청거리 아저씨 아니유? 이쪽으로 앉으세유. 모내기는 사흘 전에 모두 끝냈구먼유. 열 마지기는 품앗이로 모를 심고, 산다랭이 다섯 마지기는 귀찮아 고지를 주었어유."

당숙과 장조카의 정담이 넘쳐흐르는데 쌀자루에 걸터앉은 40대 도부꾼은 눈금이 듬성듬성 박힌 대저울을 옆에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20분도 안 돼 버스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미끄러져 내리더니 괴산장에 도착한다. 동부 1구에 길게 뻗은 장터거리는 초입부터 법석을 피운다.

끈끈이 쥐약장수가 채소전 어름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손님을 모은다. "이 쥐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 이겁니다. 신문지를 쭉 펴놓고 바로 이 끈끈이액을 발라두면 생쥐, 시궁쥐, 들쥐 할 것 없이 냄새를 맡고 덤벼들다 옴짝달싹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자, 끈끈이 쥐약 사시오."

과연 쥐약장수의 말대로 생쥐 두어 마리가 신문지 위에서 꼼짝 못하고 달라붙어 있다.

바로 옆 채소전에는 배추, 무, 상추가 노적가리 만큼이나 높이 쌓여 있고 비닐 온상에서 재배된 토마토, 참외, 수박이 바구니마다 그득하다. 그 옆으로는 고사리, 두릅, 송이버섯 등 소백(小白)의 산채가 소담스럽게 담겨져 있다.

장정 두 명이 대저울을 이용해 고추 근수를 달고 있다.

ⓒ 임병무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괴산은 고추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2천499t을 생산해 무려 57억원의 농가 소득을 올렸다. 고추 출하기가 되면 한 장 토막에도 수십 대 분이 거래된다. 그래서 고추 몰이꾼들은 트럭을 전세 내 이곳으로 치닫는다. 아직도 해묵은 고추가 시장바닥 곳곳에 쌓여 있는데 거래 단위도 숫제 관(貫)떼기다.

소백의 협곡에 묻힌 시골 저자바닥이긴 하나 도로가 사통팔달로 나 있어 외방의 장돌림들이 쉽게 찾아들 수 있는 곳이 괴산장이다. 한강의 상류인 괴강이 소백산하를 관류하는 까닭에 뱃길 또한 육로 못지않게 큰 몫을 했다.

예로부터 괴산을 수국(水國)이라 칭하고 남산을 배형국이라고 한 점이나, 애한정(愛閑亭)의 8가지 경치 중에 괴강의 상선(商船)을 들고 있는 점을 보면 괴산을 한강 상류의 내륙항구로 추정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괴산장날이 3일과 8일에 서게 된 것은 행정적인 일이지만 괴산이 수국이었던 관계로 이렇게 결정됐다는 설도 있다. 즉 음양오행의 이치로 풀이하면 수(水)는 3에 해당하는 숫자라는 것이다.

수국(水國)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괴강은 그저 유유히 흐를 뿐이다. 제월대를 지나 괴강나루에 이르니 쏘가리 매운탕집이 길손을 기다린다. 강물을 바라보며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맛 또한 그만이다. 미식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도선목의 거룻배 사공은 하품만 하고 있다.

/ 임병무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괴산 현지주민들로 꾸려진 할머니 장터. 20여명의 할머니 노점상들이 토요일마다 직접 재배한 채소류를 팔고 있다.

ⓒ 임장규기자
◇2013년 7월의 어느 날

장(場)은 단순한 물물교역의 공간이 아니다. 인정의 가교(架橋)이자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장은 늘 반갑다. 딱히 살 물건이 없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신발 끈을 묶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지난 3일 열린 괴산장도 그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장은 늘 그랬듯 북적였다. 괴산의 명물 대학찰옥수수 찌는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고, "오늘을 놓치면 다시는 맛 볼 수 없다"는 참외 장수의 얄궂은 입담이 귀를 간질였다. 도토리전을 안주 삼아 코가 삐뚤어지도록 낮술을 들이키는 촌로들의 모습도 예전 그대로였다. 변한 건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와 아케이드로 씌워진 지붕뿐이었다.

괴산장은 예로부터 그 규모가 대단했다. 600년이란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 다소 쇠퇴하긴 했으나 아직도 도내에서 첫재, 전국에서 5번째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괴산 5일장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설시장과 공생하는 모습을 취한다. 읍내 시계탑 로터리를 지나 도로 양쪽 600여m에 노점이 길게 늘어선다. 도로 중간을 가로지르는 골목이 괴산전통시장인데 길이가 대략 320m다. 5일장이 들어서면 괴산전통시장 내에도 노점들이 가득 들어찬다. 행정구역으로는 동부리 1구와 2구에 속한다. 상설점포 수가 650여개, 노점이 500여개라고 하니 과연 도내 으뜸이라 할 만하다.

괴산시장 초입에 놓인 동물 가판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강아지들이 새 주인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잠들고 말았다.

ⓒ 임장규기자
거래 품목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채소류, 과일류, 수산물, 잡화류 등등 없는 게 없다. 심지어 입구에선 강아지와 고양이 새끼까지 팔린다. "이 놈 발 큰 것 좀 봐. 이런 게 튼실한겨. 가져가 키워봐. 한 마리에 2만원." 작은 철망에 오밀조밀 드러누운 강아지들은 장꾼들의 대화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에 날파리를 덕지덕지 붙인 채 낮잠을 자느라 정신없다.

오늘날에도 괴산장이 번성한 건 인근에 주거시설과 학교 등이 많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불과 5분 거리에 중원대와 육군학생군사학교가 있다. 괴산지역으로만 외박이 허용되는 군사학교 입교생들은 주말 해가 떠오르기가 무섭게 시장 근처로 쏟아져 나온다.

어느 연유라고 꼭 집어 말하긴 그렇지만 괴산시장 근처엔 유난히 숙박업소들이 많다. 최근엔 '무인텔'까지 생겼다고 하니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 같아 자못 씁쓸하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간단명료한 경제 이치긴 하지만.

괴산시장 인근 도로변마다 대학찰옥수수 판매천막이 세워져 있다. 한 상인이 "괴산 찰옥수수 맛 좀 보라"며 옥수수를 권하고 있다.

ⓒ 임장규기자
"자, 옥수수 사시오. 괴산 하면 옥수수, 옥수수하면 괴산 아닙니까? 대학 찰옥수수 들여가세요." 엄마 손을 잡고 장에 나온 아이들의 입마다 허연 찰옥수수가 들려 있다. 그런데 어째 먹는 모양새가 서툴다. 아무데부터나 뜯어 먹는걸 보니 스마트폰 게임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겐 옥수수 하모니카 장난 따윈 흥미가 없는 모양이다.

괴산군은 몇 해 전부터 대학찰옥수수를 팔 수 있는 천막을 상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속칭 '짝퉁 옥수수'를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등록번호를 부여 받은 상인들은 괴산시장을 중심으로 도로변 곳곳에 천막을 치고 행인들을 유혹한다.

예로부터 특산품인 고추는 최근 들어 판로를 바꿨다. 장날에 나오는대신 주로 전화주문과 택배로 거래된다는 게 고시철 상인회장의 말이다.

600년 전통을 지닌 괴산시장은 올해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산막이 옛길'의 지명을 따 시장 이름을 '산막이 시장'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강원도 평창시장과 제주도 서귀포시장이 각각 올림픽시장, 올레시장으로 개명한데서 힌트를 얻었다.

그렇게 되면 매월 3일과 8일 열리는 괴산 5일장도 자연스레 '산막이 5일장'으로 이름이 바뀐다. 때 아닌 시장 개명 열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저 멀리 역사의 흐름에 맡겨야 될 듯싶다.

마파람이 불어올 때마다 장터 옆 동진천 강물은 잔물결을 일으키며 여울져 흐른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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