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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 충북 시장의 어제와 오늘 마치며

사라져가는 전통의 잔영(殘影)
도내 40여개 장, 존폐 기로에 서다
전통시장 지원법에 5일장 포함 안돼
상설 점포와의 갈등, 행정당국은 뒷짐만
후손에게 허생원 목소리 들려줄 의무

  • 웹출고시간2013.11.10 17:38:57
  • 최종수정2013.11.10 17:38:57
메밀꽃 하얗게 핀 밤이면 허생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때로는 그 목소리가 사랑의 밀어(密語)로도 들리고, 또 어떤 때는 인생여정의 회한어린 정담(情談)으로도 느껴진다.

허생원의 목쉰 소리는 한낱 장돌뱅이의 푸념에 그칠지 모르나 그 안에는 선조의 숨결과 체취가 용해되어 있기에 그 목소리에 더욱 애착이 간다.

삶의 땟국이 잔뜩 묻어 있는 생존경쟁의 목소리를 찾아 도내 장터를 6개월가량 쏘아 다녔다. 겉모습은 잔뜩 변했으나 허생원의 목소리는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밑지고 판다느니, 값이 비싸다느니 악다구니를 쓰고 아등바등 대는 장돌뱅이의 모습에서, 혹은 산골 아낙이나 촌로들의 장 나들이 길에 투영된 낭만과 애환을 통해서 뜨거운 삶의 모습과 인간의 정이 무엇인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일명 '뻥튀기' 기계 앞에서 강냉이 튀밥을 기다리는 아낙의 모습의 왠지 쓸쓸해 보인다. 사라져가는 전통의 잔영이 투영된 건 아닐까.

ⓒ 임병무
장(場)을 통해 소통하는 민초들의 삶은 수천년 전부터 이어내려 왔으나 최근 들어 유통산업의 발달과 도시화 추세에 밀려 그 맥이 끊길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십수년이 지난다면 우리의 후세들은 허생원의 목소리를 잃어버릴 게 분명하다. 사위어가는 불꽃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침모(針母)의 심정만큼이나 착잡한 마음을 쉽게 버릴 수 없다.

금방 눈에 나타나고 거창한 것만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건 아니다. 장터 모퉁이에 널린 선조의 숨결과 파편을 아무 값어치 없다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

큰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것도 쉽게 내팽개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1980년대 초 청주쇠전의 모습. 한 쇠살주가 원매자에게 소 이빨을 까보이고 있다. 소의 나이를 알아보는데는 이 같은 방법이 통례로 돼 있다.

ⓒ 임병무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도내에는 64개의 장이 섰다. 이 중 50여개가 활기를 띠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도내엔 40여개의 장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종전보다 20여개는 줄었으나 오히려 10여개는 새로이 생겨났다. 도시의 발달과 쇠퇴, 교통물류의 이동에 따라 장의 운명 또한 결정된 것이다.

현존하는 장의 모습은 지역별로 극명하게 차이 났다. 읍 단위는 그나마 현대식 구조로의 변신을 거듭하며 발전을 거듭해왔으나, 인구가 수천명 밖에 되지 않는 면 단위 장은 작은 귀퉁이에서 간신히 숨만 헐떡이는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1983년 청주 약전골목. 지금은 약방의 모습의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도내에서 가장 번성했던 청주지역 장날은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청주쇠전, 약전골목, 목물전, 자저거리 등은 시장 현대화란 미명 아래 모두 철거됐다.

청주시 당국은 육거리시장 등 상설 전통시장 활성화에 목을 매면서도 정작 청주시의 역사나 다름없는 5일장에 대해선 어떠한 사초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청주시민의 후손으로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전통 5일장을 물려주지 못한 기성세대로서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취재진은 장을 조름 다른 각도에서 바라봤다. 물물교역, 즉 단순한 경제적 측면에서 벗어나 장을 중심으로 엮어지는 '민중 생활사'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췄다. 장돌림들의 애환, 소몰이 상단의 발자취 등과 더불어 그 지방 장날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원고지에 담았다.

그 작업이 잘 됐는지, 현장 캐리캐처나 르포의 성격을 잘 살렸는지 끝맺음의 장에서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관계 문헌의 부족, 현지답사의 미비 등으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우(愚)를 범한 것 같아 후회가 막급하다.

6개월 동안 도내 장터를 이 잡듯이 누비는 동안 적지 않은 에피소드도 많았다.

허우대 좋은 장사꾼에게 멱살을 잡혀 욕지거리 얻어먹고, 카메라 잃어 먹고, 오토바이 쑤셔밖고…. 때로는 탁배기를 기울이며 상로(商路)에 얽힌 얘기를 나누던 일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구렁이 제 몸 추는 것 같아 각설하기로 한다.

매듭을 지으며 제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에 의거한 5일장의 보존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역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의 색깔도 명맥을 이어야 한다.

현재 도내에 서는 장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다. 뚜렷한 색깔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마치 대형마트의 축소판 같은 느낌마저 든다.

행정당국의 지원이라고 해봤자 고작 아케이드(비 가림 시설)를 설치해주는 게 전부다. 닷새 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이 들어서고, 수천 수만의 장꾼들이 저자거리를 누비는데도 지자체의 시장 활성화 정책에서는 외면을 받기 일쑤다.

청주 저자거리는 지금의 남문로 한복거리로 변했다.

ⓒ 임병무
이유는 관련 법 부재(不在)에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전통시장을 보존·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은 '상설점포'에 한한다. 밀물처럼 들어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5일장은 '점포'가 아니란 이유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5일장 장돌림들과 상설시장 상인들 간에는 늘 갈등이 존재한다. 장돌림은 행정당국의 외면을 서러워하고, 상설시장 점포 상인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지역 경제를 싹쓸이 해가는 외지 장돌림들을 시샘한다.

과거엔 '공생' 개념이 강했으나 지금은 '경쟁 관계', 더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적(敵)이 돼 버렸다. 수백,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민속시장인 5일장이 그 지역 상설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행정당국은 이런 현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한다. 자연 발생적으로 이어온 5일장을 폐쇄하거나 상설시장 상인들과의 이권 다툼을 조정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침묵은 각종 병폐를 낳기도 했다. 어떤 지역은 장이 들어서는 닷새마다 군청 앞 메인 도로가 폐쇄된다. 외지에서 온 장꾼들은 수백m의 왕복 4차선 도로를 통째로 점거하고 장사를 한다. 워낙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탓에 군청에서도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일부 상설시장 상인들은 장날이 들어설 때마다 점포 문을 닫는다. 내 점포 앞을 침범했다며 장돌림들과 멱살을 잡기도 한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셈이다.

장은 한 폭의 풍속도다. 그 안에 민초들의 체취가 녹아 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인 동시에 풋풋한 인심이 피어나는 인정의 가교(架橋)다.

그런데 그 다리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가뜩이나 고도 산업화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판에 현지 상설시장들과의 이권 다툼, 행정당국의 외면 등으로 존폐마저 위협받고 있다.

장은 살려야 한다. 장터바닥에 쏟아진 선조의 숨결과 편린을 이 시대를 사는 후손들이 수습해야 한다. 어쩌면 십수년 후 우리의 후손들은 장이란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될 수도 있다. 괜한 기우라고 할 수도 있으나 오늘날의 스마트 기기 발전 속도를 볼 때 장날이 역사책 속으로 사리지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아직 도내에는 40여개의 장이 남아 있다. 우선 장에 대한 사료부터 조사해야 할 것이다. 상설시장만 전통시장으로 규정지을 게 아니라 5일장도 전통시장의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

지역별 장의 특색을 잘 살려 관광 상품화하는 작업도 빠져선 안 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에만 5일장에 나타날 게 아니라 평소 5일장 보존 활성화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場)은 대한민국의 역사다. 그리고 현재다. 미래로 이어지느냐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끝>

/ 임병무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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