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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 충주장의 어제와 오늘

충주장수백 년 파고를 넘나든 人情의 흔적
한 때 고사 위기… 상설시장과 말 못할 경쟁
지금은 370여개 활기… 5일장도 '상인회 결성'

  • 웹출고시간2013.08.11 18:17:03
  • 최종수정2013.08.11 18:17:03
◇1983년 어느 날

1980년대 초반 충주5일장에서 한 아낙이 포도를 팔고 있다.

ⓒ 임병무
산이 있고, 강이 있고, 그 사이에 광활한 벌판이 있다. 삼국(三國)의 쟁패 지역으로 '중원(中原)벌을 차지하는 자가 삼국을 통일한다' 했으니 역사적으로 보나 지리적으로 보나 충주는 요충지대임이 틀림없다.

소백산하의 물줄기가 한데 모여 남한강이라는 큰 가람을 이루는 곳이다. 속리산 삼파수(三派水)에서 발원한 내가 화양구곡을 감돌아 달천(달래강)으로 유입되고, 강원도 영월과 단양 영춘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월악팔경을 만들어 내며 남한강의 본류를 형성한다.

남한강 본류와 달래강은 협곡을 감돌아 흐르다 탄금대 아래 북창(北倉) 나루 부근에서 서로 합친다. 이곳을 합수(合水)머리라 부른다. 물살 세기로 이름난 합수머리에서는 예로부터 일년풍어(一年豊漁)와 뱃길의 무사 안녕을 비는 제천의식이 행해졌다.

양진명소에서 합친 물은 차령산맥을 꿰뚫으며 한강으로 흘러든다. 뱃길로 치면 한양땅이 300리요, 육로로는 250리 남짓하다. 지금이야 잘 포장된 아스팔트를 따라 주덕을 거쳐 이천으로 접어들어 불과 2시간 정도면 마장동 터미널에 이르게 되지만, 육로사정이 여의치 못한 옛날에는 육로보다 수로가 교통수단으로 더 잘 이용됐다.

인천에서 떠난 소금배는 충주뿐만이 아니라 단양 영춘까지 올라갔고, 달래강 쪽으로는 목계를 거쳐 괴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소금을 비롯해 명태, 미역, 젓갈류를 잔뜩 실은 소금배는 달포쯤 걸려 달래강변에 도달했고 이곳에서는 곡식, 피륙, 무명자투리와 맞전을 본 후 뱃길을 돌렸다.

충주 남한강변에 형성된 나루는 10여개였으나 지금은 번듯한 다리가 놓이면서 모두 자취를 감췄다. 달천나루와 북창나루, 준암진, 금천진, 용대나무, 종댕이나루, 치매베루나루 등에서 콩, 팥, 수수자루를 어께에 매고 나루를 건너던 장꾼들의 행렬은 어느새 시내버스로 몽땅 옮겨갔다.

수로의 가치가 줄면서 달천나루 장터거리는 슬며시 자취를 감췄고, 그 대신 충주읍성 밖에서 저자시(市)가 북적대기 시작했다. 충의동 일대에는 쇠전거리, 싸전거리, 포목전이 형성됐고 교현천 제방에는 나무전이 진을 쳤다.

손님이 없네. 애타는 내 마음을 누가 알쏘냐. 애꿎은 담배만 피워본다.

ⓒ 임병무
현지 주민들은 이곳을 자유시장이라 부른다. 충주시가 시장을 정비해 공설시장으로 조성해 놓았으나 여전히 자유시장이란 이름이 귀에 익어 있다.

참나무, 소나무 장작이나 청솔가지 다발을 지게나 나귀 등에 싣고 나무전으로 향하던 나무꾼의 발길이 끊긴지는 이미 오래다. 예전 나무꾼들은 지게 목발이나 두드리며 수심가 한 곡조를 뽑다가 심심해지면 '장치기'를 했었다. 편을 갈라 지게 작대기로 공을 쳐서 금 밖으로 내보내는 놀이를 즐겼는데, 이것은 오늘날 필드하키와 비슷한 경기였다. 진편은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 이긴 편은 희희낙락하며 탁배기 사발을 기울이던 나무꾼들만의 유일한 레크리에이션이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상가아파트가 들어서 그 정취를 더듬어 볼 길이 없다. 자유시장 장터 골목에는 피복전이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침구류를 비롯해 비단, 양단, 공단, 실크, 광목, 포플린 등 혼수에 필요한 물목을 죄다 갖추고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단 가게를 경영하고 있으나 10여년 전만해도 중국인이 상권을 쥐고 흔들었다고 한다. 이곳을 가리켜 충주시민들은 '대국송방(大國松房)'이라 불렀다. 대국은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요, 송방은 장사 수단이 뛰어난 개성상인을 지칭하는 말인즉, 개성에서 장사를 하던 중국인들이 이곳에 눌러 살면서 비단가게를 경영한데서 비롯된 말이 아닌가 추축된다.

계명산과 남산 중턱에 있는 마지막재를 뻔질나게 오가는 시내버스가 수많은 장꾼을 토했다 삼켰다 한다. 푸성귀 따위나 고추자루가 덩달아 시내버스에 실려 오는데 장사치들은 버스가 닿기 무섭게 차장에 매달려 흥정붙임에 열을 올린다. 이 탓에 때 아닌 시장이 형성되고 더 나아가 교통체증까지 일으킨다. 특히 이런 현상은 예성공원 옆 정류장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시장의 생리이니 당국의 단속도 미치질 못하는 듯하다.

/ 임병무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2013년 8월의 어느 날


현재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두 가지 구조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흔히 재래시장이라 불리는 아케이드형 상설시장이고, 나머지 하나는 5일 주기로 열리는 5일장이다.

지자체가 각종 법령을 근거로 집중 지원을 하는 곳은 오로지 상설시장이다. 장돌림들로 구성된 5일장은 수백 년 간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충주5일장(풍물시장)의 한 상인이 김치전을 맛깔나게 부치고 있다.

ⓒ 임장규기자
충주5일장도 수차례 파고(波高)를 넘어야 했다. 1980년대 모 상설시장 주변에 가득 들어찼던 5일장은 상설시장 텃세에 밀려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설 곳을 잃은 늙은 장돌뱅이들은 예성공원 버스 정류소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은 치열하다 보다 측은할 정도였다. 장돌림들은 저 멀리 버스가 보이면 달음박질부터 했다. 사람에 치이든, 버스에 치이든 두 번째 문제였다. 일단 물건을 사고팔아야 했다.

현지 촌로들이 고추, 참깨 등을 가지고 오면 장돌림들은 차장에 매달려 포대자루부터 빼앗으며 흥정붙임을 했다. 그 동작이 솔개가 햇병아리 채어가듯 기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하루 전쟁 같은 삶에 이골이 난 장돌림 20여명이 뜻을 모았다. 우리도 상설시장처럼 '상인회'를 만들자는 거였다. 이 때가 1991년이었다.

'풍물시장'이라 이름 지어진 5일장은 거침이 없었다. 예성공원 일대에서 최고의 시장으로 커졌다. 충주시민들은 5일장에 담긴 삶의 애증을 추억의 앨범 속에서 다시 꺼내들었다. 어릴 때 장날에서 먹던 알사탕, 김치전, 뻥튀기를 다시 맛보고픈 마음에 장바구니를 신나게 흔들며 풍물시장으로 내달았다.

"망해가던 5일장이 우리도 놀랄 정도로 잘 나가게 된 거죠. 5일장 상인들도 열심히 했지만 아무래도 옛 장날에 대한 향수가 충주시민들에게 크게 작용했던 거 같아요. 그 일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김종호 풍물시장 상인회장이 말하는 '그 일'이란 장소 이전을 일컫는다. 풍물시장은 지난 2002년 3월 예성공원에서 지금의 충의동으로 옮겨졌다. 자유시장과 공설시장, 무학시장 등 충주시 공인 전통 상설시장이 있는 곳으로다.

김 회장은 "당시 정치권에서 시설 현대화를 명목으로 장소 이전을 권했는데 정작 이전 후엔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며 "오히려 매출만 반 토막이 났다"고 했다.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뒤로하고 뜨거운 장사 열기가 뿜어 나오는 장터로 카메라를 옮겼다. 교현천 제방 350m 일대에 세워진 매대는 종잡아 370여개나 됐다. 도내에서 가장 선진화된 상인회 구조를 띠고 있는 까닭인지 장돌림들의 머리수 또한 최다치를 넘나든다.

"에라~ 모르겠다."

한 장돌림이 매기가 신통치 않자 낮잠을 퍼질러 자고 있다.

ⓒ 임장규기자
현대화된 충주5일장의 독특한 구조는 또 있다. 다른 지역 장날을 가보면 80~90%가량이 외지 장돌림인데 반해 충주는 90%이상이 현지 상인들로 구성돼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한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수의 현지 상인들은 오히려 부끄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참 재미났다. "예로부터 충주의 장돌림들은 달천나루 등지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는데 절대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어요. 외지와 현지의 물건을 맞전해 충주사람들에게 되판 수준을 면치 못했죠. 왜 그런 줄 아세요? 바보같이 밖에 나가 물건을 팔 줄 몰랐던 거예요.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거죠. 이게 자랑입니까? 멍청한 거지. 괜히 멍청도가 아니여(웃음)."

충주5일장은 도내 몇 안 되는 상인회가 결성된 까닭에 지역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 노인 급식 봉사, 시민경로잔치, 장애인 후원금 모금 등을 통해 충주시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고 있다. 바로 이런 '인정(人情)'이 5일장을 수백 년 간 이어오게 할 수 있던 원동력이 아닐까.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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