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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9.23 18:35: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태풍이 휩쓸고 간 하늘에서 품어낸 햇살은 맑게 씻긴 듯 눈부셨다. 매번 '우리 동네 숨은 산책길'이지만, 이번 산책길은 조금은 특별하다. 청주국립박물관내에 숨은 산책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곳 문화공간과 산책길이 이어지는 테마는 올 때마다 새롭다. 걷다가 박물관을 한 번 둘러보면 인문학적 소양도 저절로 상승되니 금상첨화다.

박물관은 주차장도 멋스럽다. 커다란 돌담이 쌓인 사이사이에 담쟁이 넝쿨이 층층이 박혀 있어 멋스럽다. 박물관 산책의 특징은 푹신한 흙 대신에 돌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산책로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커다란 천하대장군이다. 익살스런 미소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룬다. 사람들이 많은 시끌벅적한 장소를 떠나 만난 한적한 산책길은 삶의 멘토이자 청량수다. 외부세계에 과도하게 뻗어 내린 생각의 촉수들을 잠시 철수시키고 자기 내면세계를 조용히 살피는 데 산책만한 수단이 또 있겠는가.

가을이 익고 있다


아스팔트에서 숲으로 들어서니 확연히 공기가 달랐다. 두충나무숲에 드문드문 있는 나무 의자가 산책길의 곡선에 묘한 포인트를 준다. 숲의 끝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의 끝은 빛처럼 그저 둥글다. 커다란 빛의 원통을 빠져나온 느낌이다. 산책길 주변에는 작약, 매발톱, 범부채, 무늬사삭, 비비추 등 여름 꽃들이 흔적만 남긴 채 흔들거린다. 제철에 핀 구절초만 한들거리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한적한 길에서 키 작은 동자석을 만났다. 방문객의 허리쯤에서 망연히 눈을 고정시키고 무심하게 한곳만 응시한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푸른 나뭇잎 하나가 그의 머리 위에 팔랑 내려앉는다. 이제 가을이 이곳에서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언덕길에 오르려니 갑자기 '푸드덕'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토끼 두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운 채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토끼의 움직임이 오히려 깊은 정적으로 다가온다. 정(靜)과 동(動)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산책길 가운데 박물관 전경이 잘 보이는 곳에 의자 하나가 살짝 유혹한다. 어디서든 의자를 만나면 편해진다. 앉아 있는 것의 편안함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몸으로 흘러드는 느낌이다. 하지만 잠시 유혹을 이기고 걷자. 걷는 것은 앉는 것보다 몸의 원시성을 자극하고 사유의 깊이를 좀 더 풍족하게 만든다. 의자 뒤쪽에는 방풍림으로 조성해 놓은 것인지 대숲이 둘러쳐져 있어 제법 운치가 있다. 아이들의 놀이터마냥 아기자기한 나무로 만든 다리, 작은 연못을 지나면 일명 '휴식동산'이 나온다. 이곳에서 산책길은 끊긴다. 다만 너른 풀밭이 모두 길인 셈이다. 나무그늘마다 벤치가 있어 그야말로 휴식동산이란 말이 어울린다. 휴식동산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들이 지천이다. 또한 고대 제철과정을 보여주는 복원실험로가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역사체험에도 좋다.

다시 피는 중원문화


산책길을 마치면 아이들과 지난해 12월 새롭게 단장하고 문을 연 국립박물관 상설전시장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1987년 개관된 국립청주박물관은 건물의 외부는 원형을 잘 보존하고 내부 시설은 전면적인 개ㆍ보수를 실시하여 현대적 전시 시설과 콘텐츠를 갖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전시실은 총 4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지며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충청북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시구성은 1전시실은 선사문화, 2전시실은 고대문화, 3전시실은 고려 불교문화, 4전시실은 조선 유교문화로 나뉜다. 탑동에 사는 정미경(37)씨는 "주말이면 아이와 산책삼아 이곳 박물관을 자주 온다. 토요일에는 유익한 공연도 많고, 뒤쪽 산책길과 휴식동산에서 토끼에게 풀도 주고 박물관 견학도 하면 일석삼조다."라고 말한다.

특별전시실에서는 '국원성, 국원소경, 중원경展'이 반가워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 전시준비중이라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오는 9월 24일부터 오픈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백제인의 생활터전 탑평리, 고구려 국원성, 신라 5소경의 효시인 국원소경 그리고 중원경으로 이어지는 고대도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다. 전시유물로는 건흥오년명금동광배, 충주 고구려비(복제)와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탁본), 귀걸이, 허리띠장식치미, 아궁이장식 등 350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茶 한 잔 마시고 둘러보는, 야외전시물의 색다른 맛


청명차실(淸明茶室)은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박물관 특유의 묵직함과 고절함이 그대로 우러난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창밖 풍경이 그대로 빼어난 인테리어다. 이곳에는 커피는 없고 오직 전통차와 꽃차만 판다. 가격은 보통 4~5천원선.


차 한 잔 마시고 둘러보는 박물관 주변의 야외전시물은 또 다른 묘미를 준다. 어린이 박물관 앞에 서있는 '박물관벌레'라는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안내판에 '책에 미친 책벌레처럼 박물관에 미친 박물관 벌레'라고 표시되어 있다. 산책로 입구에 있는 문인석(김홍기, 엄순녀 기증)은 왕의 묘인 왕릉과 사대부 묘 앞에 세우는 문관의 모양이다.


문인석은 홀을 든 반면, 무인석은 칼을 드는 특징이 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동자석은 살아생전 주인을 모시는 시동이다. 돌 판을 서로 끼워 정사각형으로 만든 석정(石井), 동물의 왕 사자 형상의 해태, 연자방아, 돌절구 등이 소소하게 눈을 즐겁게 한다.

청주 용담동에서 출토된 돌덧널무덤(삼국시대 무덤과 통일신라시대 무덤)을 보고나면 어느덧 해가 기운다. 해의 잔광이 박물관 지붕에 오랫동안 머물러 색(色)들은 늦도록 남아 있다. 오후의 공기와 해가 지고 난 뒤의 공기는 또한 확연히 다르다. 우리 동네 주변의 산책길이 가볍다면, 오랜 시공을 품고 있는 박물관 산책길은 밀도 있는 공기로 가을날에 툭툭 터져 온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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