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치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계절마다 매력적이다. 산 이름에 '악(岳)' 자가 들어간다. 정상을 오르다 보면 치가 떨리기도 한다. '악' 소리를 절로 지르기도 한다. 둘레길은 다르다. 좀 투박하고 오르내림이 있어도 비교적 순하다. 총 길이가 140㎞에 이른다. 11개 코스가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국립공원 경계를 넘나드는 풍광이 아름답다. 숨어 있는 비경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담소를 나누며 느긋하게 걸으면 된다. 1~3코스는 2019년 길을 열었다. 4~11코스는 올해 처음 공개했다. 시간은 점점 가을의 절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원한 바람 안고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뜨겁지 않은 따사로운 햇살과 동행하기 좋다. 여행하기 적당한 시간이다. 하지만 문턱을 나서기가 쉽지 않다. 버티고 선 코로나19 때문이다. 시월 초하룻날 청주를 떠나 원주로 향한다. 가을 냄새 맡으러 길을 나선다.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 헤치며 간다. 치 떨리고 악소리 난다는 치악산에 든다. 맛 뵈기로 치악산 둘레길 1코스를 걸어볼 요량이다. 이름 하여 꽃밭머리길이다. 치악산둘레길 종합안내도부터 살핀다. 산길을 알리는 아치형 대문 앞으로 간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답사를 시작한다. 솔향기 풀풀 나는 소나무 숲을 지난다. 겹겹 나무 사이로 하얀 운무가 흐른다. 치악이 껴안듯 원주고을을 감싼다. 초입부터 빽빽한 소나무 군락이 산객을 맞는다. 어느 놈은 하늘 향해 쭉쭉 뻗어간다. 어느 놈은 축축 가지를 늘어뜨린다. 간간히 가을꽃이 마중을 한다. 토실토실 살 오른 밤이 지천이다. 가을이 익어가니 새소리가 더 감미롭다. 국형사에서 성문사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커다란 소나무가 세월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치악산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왼쪽 나무 사이로 원주혁신신도시 풍경이 스친다. 멀리서 보니 그저 한가로운 일상 같다.· 성문사의 현대적 분위기에 잠시 혼란스럽다. 다시 숲길로 들어서니 길이 조금 거칠어진다. 쉬엄쉬엄 숲 냄새를 맡으며 걸어간다. 널찍한 쉼터에 앉아 시원함을 즐긴다. 아침 솔숲향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한가로움을 원 없이 즐긴다. 아침이슬 매단 거미줄이 신비롭다. 인드라망처럼 얽힌 속세 인연을 알린다. 안개가 걷히고 서서히 하늘이 열린다. 시월 초순 하늘이 맑다. 가을색이 또렷해진다. 오르락내리락 산길이 적당히 긴장감을 준다. 시간이 멈춘 듯 만물이 고요하다. 오솔길로 가면 어김없이 갈림길이다. 현지 산객에게 두런두런 길 안내를 받는다. 갈 길 찾기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머잖아 언덕 위 관음사에 도착한다. 대웅전에 절하고 왼편 건물 문을 연다. 백팔염주의 정렬이 단정하다. 둥근 염주 108개가 꽉 차 있다. 염주 한 알의 크기가 농구공보다 크다. 가장 큰 모주(母珠)의 지름은 74cm다. 무게는 240kg에 달한다. 나머지 107개의 염주도 엄청나다. 각각 지름 45cm 무게 45kg이다. 전체 무게가 7.4t에 이른다.· 이정표가 알려주는 대로 곧바로 간다. 개울 지나니 침목계단이 가지런하다. 지나는 곳마다 가을녹음이 한창이다. 곧 다가올 단풍의 만추를 대비 중이다. 흙길과 어우러진 오솔길이 평탄하다.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벗어난다. 연암사 입구 삼거리를 거쳐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을 벗어나 멋들어진 소나무 숲을 지난다. 운곡 원천석 선생의 묘를 바라본다. 운곡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다. 운곡 묘역에서 옛 기억을 더듬는다. 마을과 산길이 번갈아 자리를 바꾼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걷는다. 산자락 아랫도리 따라 길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큰 힘 들이지 않고 풍경을 즐기며 간다. 자연과 동화된 작은 벤치에 앉아 쉰다. 간단히 준비한 도시락을 까먹는다. 노송들의 긴 행렬이 한동안 계속된다. 길이 고도를 올려 능선으로 안내한다. 낙엽송 타고 오른 담쟁이 잎이 물든다. 예쁜 간판이 내걸린 마을을 지난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아 정이 간다. 이음길과 갈래길이 몇 차례 반복된다. 길은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둘레길 단풍나무 잎이 파릇파릇하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나갈 즈음엔 화려한 색채를 띨 것 같다. 잠시 뒤 언덕 정상에 전망대가 보인다. 이정표에선 제일참숯 4.1㎞를 알린다. 길을 따라 가기가 수월하다. 전망대에 서니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다. 치악산과 원주 시내 방향이 잘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황골 마을을 지난다. 40분 정도를 내쳐 더 간다. 제일참숯에 다다른다. 멀리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음에 저장한다. 새 길은 새 역사를 품는다. 또 하나의 길에 새로운 마음의 길을 놓는다. 걷는 이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새 치악산 이미지가 별도로 각인된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새롭게 거듭난다. 평화로운 명상의 길로 마음에 새긴다. / 글·사진=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길고 어두운 터널이 계속되고 있다. 일상은 무너지고 생계는 헝클어진다. 고립감과 우울감이 가득하다. 마스크를 벗고 팬데믹(대유행)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폭염의 시기는 이미 지났다. 계곡 물에 몸을 담그기도 적당치 않다. 그저 청량한 숲을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답사팀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떤다. 참외고을 경북 성주를 찾아 나선다. 독용산 아래 성주호둘레길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름값 하는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다. 아라월드 주차장에 도착한다. '성주호 둘레길 가는 길' 이정표가 보인다. 들머리에서 지도를 살핀 뒤 곧바로 들어선다. 잠시 콘크리트 임도가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모재(永慕齋)에 닿는다. 콘크리트길은 여기서 끝이 난다. 울퉁불퉁 흙길에 황토색 물웅덩이가 나타난다. 이어 완전한 숲길이 비에 젖는다. 늦여름 비에 떨어진 낙엽이 나뒹군다. 푸르게 매달린 나뭇잎과 대비를 이룬다. 회색빛 하늘에서 굵은 비가 떨어진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받쳐 든 우산이 무색하다. 참나무 잎에 비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래도 떨어지는 소리가 율동적이다. 비가 내려서 느끼는 기분 좋은 호사다. 숲길에 비가 쏟아지니 흙냄새가 난다. 길옆으로 굵은 소나무들이 도열한다. 주변 나뭇잎 색이 한층 더 푸르러진다. 늦여름 비에 더 근사해지는 성주호다. 빗방울 타고 운치가 내리는 날이다. 길가 높은 축대위에서 성주호를 내다본다. 묘지 몇 기가 외롭게 비에 젖는다. 그윽한 숲길을 따라가니 부교 가는 길이다. 말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다리다. 빗속을 걷는 발걸음에 소리가 없다. 어두운 나무 가지 사이로 부교가 보인다. 성주호의 밝은 수면과 물 위로 낸 길이다. 계단을 내려가 흔들리는 부교에 오른다. 숲의 옆구리가 바로 보인다. 발아래까지 물이 차 물위를 걷는 느낌이다. 탁하지만 고요한 호수에 마음을 뺏긴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수면에 율동을 준다. 부드러운 산봉우리가 호수를 감싼다. 부교를 건너 계단으로 된 산길을 오른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계속 내린다. 휘청거리며 빗속을 뚫고 나간다. 숨을 쌕쌕 내쉬며 다시 계단을 오른다. 가파른 비탈을 쉬지 않고 넘어간다. 헉헉대는 숨소리에 빗소리가 묻힌다. 성주호둘레길 구간 중 가장 난코스를 헤쳐 간다. 좀 지나니 늦여름 소낙비가 청량감을 준다. 들숨 때마다 초록향이 가슴을 채운다. 살갗에 스며든 촉촉함이 매력적이다. 쏟아지는 빗물이 호수가로 모여든다. 성주호 둘레길 숲의 밀도가 촘촘해진다. 한 시간 쯤 걸었을까. 거센 빗방울 소리가 차츰 차분해진다. 빗방울 잦아들고 매미울음소리가 커져간다. 여름 막바지에 짝을 찾는 소리다. 애처롭고 처절한 몸부림이다. 맑은 하늘이 아니어서 아쉽긴 하다. 성주군이 아기자기 꾸며 가꾼 쉼터에 다다른다. 젖은 몸과 마음에 편한 쉼을 제공한다. 빗속 둘레길 풍경이 행복을 선물한다. 한 시간여 쏟아진 장대비가 잦아든다. 어느새 비 그치고 사위가 밝게 바뀐다. 비 오는 날 걷기가 주는 쾌감이 괜찮다. 아늑한 분위기에 편안함이 보태진다. 일렁이는 물소리가 코앞에서 들린다. 빗방울들이 수면 위에 파장을 만든다. 사람이 없어 인파에 휩쓸릴 일이 없다. 한줄기 비가 늦여름의 절정을 뒤로 물린다. 시원함을 넘어 한기마저 살짝 느껴진다. 비 온 뒤 안개 뒤덮인 눅눅한 오솔길이다. 잠깐 멈춰서 그림 감상하듯 풍경을 본다. 숲과 물이 어우러져 이상향을 그려낸다. 사람 손 덜 타서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다. 축축한 스펀지 같은 흙길에 몸을 맡긴다. 멀고 먼 원시 숲길 끝나고 문명이 보인다. 평온함이 평소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떨어진 나뭇잎이 파삭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여기저기 숲길 위로 파란 낙엽이 떨어진다. 아무 소리도 없이 길게 누워있다. 땅의 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있다. 촉촉한 채로 포개지고 포개져 땅이 되고 있다. 어떤 건 길 가장자리에서 관심을 끈다. 어떤 건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8월 늦은 비가 가을을 재촉한다. 싱싱한 자연에서 비롯된 상쾌함이다. 많은 비로 탁해진 수면마저 그윽하다. 산비탈을 돌아가는 길이 완만하다. 소나무가 고요한 숲을 이룬다. 간간히 참나무 등 활엽수가 나타난다. 중간 중간 쉬어갈 정자도 있다. 휴식을 하거나 간식을 먹기에 적당하다. 물길과 숲길이 부드러워 사랑스럽다. 곧은 소나무가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오랜만에 산비탈 호수가로 작은 폭포가 보인다. 금방 내린 비에 물소리가 시원하다. 아라월드에서 광암교까지 이어진 풍경이 살갑고 정겹다. 마침내 무학리는 대가천 상류다. 산길이 끝나는 산모퉁이 마을이다. 넉바우 마을로 계곡에 넓은 바위가 있다. 다른 이름으로 광암이라 부른다. 많은 둘레꾼들이 여기를 들머리로 삼는다. 다리 옆에는 캠핑을 하는 금수문화공원이 있다. 공원 상류에 멋진 배바위가 서 있다. 바위가 배처럼 생겨 배바위다. 그 옛날 검은 학이 맴돌다 갔다고 해서 무학(舞鶴)이다. 꼭대기에 앉은 정자가 무학정이다. 성주호가 기분 좋은 수묵화를 묵묵히 그려낸다. 저 멀리 출발했던 아라월드가 보인다. 도로를 따라 데크길이 조붓하게 이어진다. 가드레일 안쪽으로 길을 내 안전하다. 지나는 차량마저 드물어 호젓하다. 도로변 팔작지붕의 백운정이 정답다. 여기서 보는 호수와 산줄기가 아름답다. 평평한 수면과 덩어리를 이룬 숲이 전부다. 그 순수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압권이다. 누구든 순수한 세상으로 회귀시킨다.
[충북일보] 처서가 코앞에 있으니 더위가 한풀 꺾인다. 가끔은 소낙비가 무더위를 식혀주기도 한다. 그래도 푹푹 찌는 한낮 폭염은 여전히 강렬하다.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이 돼야 서늘하다. 더웠던 몸을 찬물 샤워로 식히고 길을 나선다. 오전 6시 뿌연 안개 젖히고 청주를 떠난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향한다. 수묵화 같던 새벽 풍경이 흐릿해진다. 두어 시간 넘게 달리니 해가 중천에 걸린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락에 닿는다. 죽파리 마을을 다 지나면 차를 세워야 한다. 자작나무 숲까지 3.2km를 걸어야 한다. 다행히 영양군청 공무원의 도움으로 시간을 줄인다. 이어지는 계곡 감상은 차안에서 즐긴다. 가뭄이 계속돼 계곡물은 그리 많지 않다. 사륜구동으로 긴 계곡을 따라 오른다. 마침내 순백의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장관을 만난다. 늘씬한 자작나무들이 하늘로 향한다. 여름 숲이 내는 청량함이 더 없이 좋다. 검마산 자락에 숨은 하얀 보석함이다. 자작나무숲이 워낙 깊어 들머리까지 한참이다. 숲은 기대 이상으로 청정하고 아름답다.·잠시의 피곤함이 일순간 사라진다. 순백의 숲길이 환상적이다. 바람 소리가 나무 사이로 불어온다. 새소리가 숲을 따라 흘러간다. 미완의 길을 자박자박 느리게 걷는다. 바람 소리가 고요를 뚫고 달려 나온다. 새소리가 나뭇잎 소리와 조화롭다. 오롯이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든다. 흐린 하늘 머리에 이고 열심히 달린다. 오지 감상에 빠질 무렵 하얀 숲을 만난다. 싱그러움과 우아함이 절로 넘쳐난다. 흰옷을 입은 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한다. 앞에서도 옆에서도 온통 쭉쭉 뻗는다. 저마다 가지를 버리고 키 높이를 잰다. 한 여름 성장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른다. 매미소리가 응원가로 울린다. 녹음 속이 불현듯 순백의 풍경이다. 뻗어 오른 수세가 후련하고 시원하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이 곱게 빛난다. 깊은 산속에서 백옥 수피를 자랑한다. 우거진 숲의 그늘이 햇살을 가려준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듯 몽환적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한 모금 깊게 마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다. 삶을 짓누르던 무게를 벗어던진다. 빼곡히 들어찬 순백의 세상에 취한다. 명상하듯 걸으니 보약이 따로 없다. 여름 숲에 들어 비로소 얻은 귀한 선물이다. 서두를 것도 없고, 급할 것도 하나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발길 가면 된다. 싱그러운 향기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된다. 자작나무 잎이 내는 소리가 천상의 화음이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서늘하다. 진득한 눅눅함이 어느새 사라진다. 자작나무의 흰 수피가 제법 이국적이다. 맑은 초록색 이파리는 북쪽 풍경을 만들어낸다.·금방이라도 숲의 정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똑같은 풍경에 카메라를 수없이 들이댄다. 그늘마저 초록빛으로 빛나는 시원한 숲길이다. 짙은 숲길에 일찌감치 가을이 당도한다. 숲의 공기가 점점 여름을 걷어내고 있다. 청량한 길섶에선 여름꽃과 가을꽃이 자리바꿈을 한다. 벌개미취가 마지막 울음으로 꽃을 피워 올린다. 작고 가냘픈 가을꽃들이 하나둘 피어난다. 끝없을 것만 같던 폭염이 누그러진다. 서늘한 바람이 자작나무숲을 지난다. 여름의 강을 건너 가을로 간다. 바람 끝이 서늘해 부르르 몸을 떤다. 하얀 나무들이 오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을 건너가는 건 늘 새삼스럽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운 지 20개월이다.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부드러운 수피에 수많은 상처가 만져진다. 곧게 자라기 위해 떨군 가지의 흔적이다. 자작나무 상처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그 상처로 인해 더욱 성장한다. 자작나무 숲에 여름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멧돼지가 뒹굴었던 흔적이 보인다. 산짐승들의 힘찬 근육이 떠오른다. 멧돼지의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기지개를 켜고 긴 숨을 들이마신다. 청량한 기운이 몸속 가득 스며든다. 흰색과 초록의 풍광이 길게 이어진다. 그야말로 백(白)과 벽(碧), '백벽의 향연'이다. 초록의 잎사귀색이 숲을 더 아름답게 빚는다. 흰옷을 두른 나무들이 파노라마처럼 끝도 없다. 앞에도 옆에도 온통 쭉쭉 뻗은 하얀 기둥뿐이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는 누구든 감상에 빠지게 한다. 곳곳에 난 생채기 흔적은 더 신경 쓰이게 한다. 어떤 건 눈 꼬리가 긴 사람의 눈매 같다. 아래쪽에 붙은 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려 생긴 상처다. '지흔'이라 불리는 상처 흔적이다.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가지가 떨어져나간 자리는 검게 변한다. 주변으로 자글자글한 가로줄이 까맣게 생긴다. 하얀 얼굴에 마치 커다란 눈처럼 보인다. 기분 탓이지만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자작나무숲의 백미(白眉)는 겨울이다. 하지만 여름도 겨울 못지않게 훌륭하다. 파란 이파리들이 가장 빛나는 건 여름 햇빛 아래서다. 청량한 여름 바람에 몸 터는 소리는 싱그럽다. 맨 먼저 드는 단풍에 가을도 더없이 좋다. 영양의 자작나무 숲이 날로 신비로워진다. 숲 사이로 오솔길이 두 갈래로 난다. 더 오라고 손짓하며 존재를 드러낸다. 길은 검마산 정상까지 길게 이어진다. 내뿜는 피톤치드가 청량감을 더한다. 어두운 원시림 속 말갛게 자란 숲이다. 나무와 바람, 풍경이 자꾸 말을 건다. 돌아서기 아쉬운 속 깊은 하얀 숲이다. 한 겨울 연인과 떠난 백석을 떠올린다. 응앙응앙 발걸음이 자꾸 더뎌진다.
설악산 주전골의 아우라가 굉장하다. 신선계로 든 인간이 갖는 경외감이다. 독특한 모습을 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현실감 없는 장관에 온 몸이 나른하다. 바위틈에 선 고사목마저 풍경이 된다. 잠깐 다른 세계로 이동한 기분이 든다. 굽이를 돌아 나온 물소리가 청아하다. 시원한 바람이 허파 속까지 들어간다. 푸른 여름 추억의 시간이 만들어진다. 선녀들이 은밀하게 노닐만한 곳에 닿는다. 물론 선녀는 없고 산객들만 웅성거린다. 하얗게 떨어지는 용소폭포가 시원하다. 강하고 묵직한 바람에 머리가 날린다. [충북일보] 산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큰 기쁨과 행복을 준다. 좋은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들기만 하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우정을 나누는 친구와 함께하면 더 좋다. 웃음을 더 나누니 더 기쁘고 더 행복해진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답사팀이 설악산 주전골을 찾는다. 푸른 여름날 몇 시간을 달려 백두대간을 넘는다. 한여름에 찾은 덕에 한산하다. 폭염 경보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요란하게 울린다. 개의치 않고 배낭을 꾸린다. 모든 게 쾌청하다. 무장애 탐방로 따라 천천히 걷는다. 주전골의 비경이 나타난다. 천혜의 자연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남설악의 대표 비경으로 손색없다. 하늘이 선물한 은혜처럼 아름답다. 기분 좋게 흐르는 물소리를 따른다. 웅장하고 수려한 기암들을 만난다. 녹음 속에서 바위의 참 멋이 드러난다. 거대암석 틈새로 초록이 찬란하다. 척박한 자연에 그림 같은 절경이 이어진다. 데크길을 지나니 녹음이 더 우거진다. 겹겹의 나무가 초록동굴을 만든다. 기암괴석이 조금씩 모습을 보인다. 사방팔방 거대한 바위의 향연이다. 바위 틈 사이에 소나무가 들어찬다. 한 폭 산수화가 여름 계곡을 채운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조화롭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고래바위교를 건넌다. 고래 모양의 큰 바위가 눈에 띈다. 계곡 물소리가 크지도 작지도 않다.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배경 음악이 된다. 차츰 주전골의 깊숙한 품으로 들어선다. 붉은 바위의 색과 형태가 화려하다. 계곡물이 그리는 풍경이 더 멋지다. 물소리가 점점 거칠고 거세진다. 우뚝 선 독주암의 모습이 장관이다. 주전골의 명물로 절경을 자랑한다. 폭포수가 옥빛으로 반짝인다. 현실감 없는 장관에 온 몸을 맡긴다. 물소리가 몸속 허파까지 들어간다. 자연에 맡긴 푸른 여름이 시원하다. 숲 그림자 짙어지니 공기가 한층 더 맑다. 한여름에 찾은 덕에 곳곳이 한산하다. 날카로운 연봉들이 길게 늘어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색석사(성국사) 안내판이 보인다. 오색석에서 분출하는 약수가 있음을 알려준다. 독주봉의 우람한 자태가 들어온다. 길은 사찰 경내를 통해 선녀탕으로 이어진다. 잠시 돌계단을 따라 오른다. 절집을 내려와 주전골의 진경산수를 만난다. 파노라마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설악산수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독주암의 여름 풍경이 여전히 아름답다. 절경을 한껏 뽐내고 있다. 주위의 비경은 신의 걸작품이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 심신이 모두 취한다. 옥빛 계곡수를 거대한 화강암반이 받쳐준다. 쪽빛 하늘에 하얀 구름이 장관이다. 진초록 숲이 더해 절묘한 풍광이다. 물소리마저 옥 구르듯 맑다. 인적 뜸하니 그 소리가 곧 노래다. 독주암은 주전골 최고의 비경이다. 정상부는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로 좁다. 파란 하늘과 수직 암벽 조화가 걸작이다. 치솟은 바위 하나가 시선을 끈다. 천 길 암벽위에 홀로 솟은 독주암이 단연 압권이다. 선녀들이 타고 오르내린 계단 같다. 독주암에서 내려오는 작은 물줄기가 계곡과 합류한다. 제2약수교를 건넌다. 걷는 이들의 소망을 담은 돌탑이 보인다. 돌을 올린 사람들의 소망이 쌓여 있다. 선녀탕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소(沼)에 담긴 건 그냥 물이 아니다. 선녀들의 수정 옥수(玉水)다. 현실감 없는 장관에 온 몸이 나른하다. 바위틈에 선 고사목마저 풍경이 된다. 잠깐 다른 세계로 이동한 기분이 든다. 강하고 묵직한 바람이 분다. 선녀탕과 선녀교를 뒤로 하고 길을 간다. 전망대교에 닿는다.·또 하나의 비경을 만난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암벽들이 장관이다. 구름이 시시각각 흘러가며 모습을 바꾼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굽이를 돌아 나온 물소리가 청아하다. 시원한 바람이 허파 속까지 들어간다. 푸른 추억의 시간이 만들어진다. 금강문을 지난다.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듯한 좁은 공간이다. 자세히 보면 큰 돌과 지지대 역할을 하는 작은 돌이 교차한다. 드디어 흘림골 삼거리다. 등선대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경고판이 위험을 알린다. 지난 2016년 7월 25일부터 통제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용소(龍沼)폭포 삼거리를 지난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드디어 주전골 최고의 풍경에 닿는다. 숨어 있던 용소폭포가 나타난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천년을 살아온 이무기 암수의 슬픈 전설을 듣는다. 자태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우렁찬 소리에 주변 산객이 움찔한다. 하얀 물줄기와 푸른 소(沼)가 조화롭다. 바위에 채색된 붉은 색깔이 정말 아름답다. 흩어진 물보라가 시원함을 전한다. 눈길 걸음 닿는 곳마다 비경 절경이다. 폭포에 떨어지는 흰 물줄기가 신비롭다. 흰 비늘의 이무기가 허공으로 오르는 것 같다. 폭포 아래 푸른 소는 정신을 얼떨떨하게 한다. 계곡바닥이 훤하게 보이는 에메랄드빛이다. 마음껏 쳐다보고 또 본다. 여전히 변치 않는 그림 같은 비경이다. 마침내 용소폭포를 떠난다. 흘림골로 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또 누른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려선다. 선녀탕과 독주암을 다시 들여다본다. 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성국사 경내에서 두 손을 모은다. 주전골이 아련하게 흘러간다. 옥빛 물이 너럭바위를 타고 흐른다. 물결이 바람타고 나풀대는 명주옷 닮는다. 주전골은 병풍처럼 이어진 여름 설악의 결정체다.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사진으로 남기고 마음속에 간직한다. 하늘에서 쏟아내는 물줄기가 장쾌하다. 그 물을 아담한 소(沼)가 넉넉히 받아낸다. 여름날의 주전골이 삶을 알려준다. 제멋대로 거친 바위가 젊은 날을 웅변한다. 푸르른 녹음이 삶의 중심을 알린다. 주전골을 내려오면서 새소리와 물소리를 다시 듣는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잠깐 쉼을 경고한다. '잠깐 멈춰 쉬어가라'고 권한다. '아직 남은 푸른 한때를 즐겨보라'고 말을 건넨다. 가사를 지은 송강의 마음을 헤아린다. 크고 작은 소와 담, 폭포가 이어진다. 주전골의 운치와 풍경이 마음을 즐겁게 한다. 푸른 물색 하나로도 충분히 화려하다. 올 가을 울긋불긋 물든 주전골 단풍을 다시 만나러 오리라. 송강의 장진주사를 한 번 읊어보리라.
[충북일보] 2021년 6월19일 전국에 비 예보가 뜬다. 이른 새벽 청주를 출발한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답사팀이 울산으로 향한다. 세 시간 쯤 달려 태화강 십리대숲에 닿는다. 비 맞을 각오였지만 하루 종일 비 구경을 하지 못한다. 일기예보가 완전히 틀린 날이다. 시원한 대숲 산책으로 울산 여행을 시작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을 걸었지만 피로를 느낄 수 없다. 십리대숲길 뽀얀 물안개가 대숲으로 밀려든다. 청록의 대나무 위에서 하얀 연무가 춤을 춘다. 흰옷 입은 남녀가 춤추는 그림 같다. 떨어질 듯 날아갈 듯 하늘거린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대나무가 마음까지 흔든다. 폭염에도 빽빽한 대숲 덕에 시원하다. 음이온 배출로 심신이 편안하다. 곳곳에 벤치와 죽림욕장이 마련돼 있다.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분다. 바람에 밀려 댓잎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소리를 낸다. 자연 속에 묻혀 있는 소리가 귀로 흘러든다. 바람 소리와 댓잎 소리에 귀 기울인다. 만회정을 지난다.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도대체 이곳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몇 그루나 될까. 쓸 데 없는 의문도 금방 잊어버린다. 바람이 묻고 대나무가 답하는 풍죽문답(風竹問答)이 한창이다. 바깥은 폭염의 기세가 등등하다. 대숲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하다. 대나무숲으로 햇볕이 잘 스며들지 못한다. 댓잎들이 꼭 필요한 만큼만 햇빛을 받아들인다. 어느 순간 바람이 부드럽게 스친다. 대나무에게 묻는 방법이다. 초록물결 넘실대는 숲이 이어진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녹색의 대나무 비단이 물결치듯 찰랑거린다. 비단 여울이 강을 따라 길게 흐른다. 경쾌해진 물소리가 귓속을 채운다. 우거진 숲길에 시원함이 가득하다. 흡족한 비에 대나무 숲이 싱그럽다. 땅의 양분들이 줄기 끝까지 오른다. 태화강 십리대숲의 기세가 웅장하다. 대숲이 강을 따라 정갈하게 펼쳐진다. 수직의 대나무가 시원하게 치솟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댓잎이 사각거린다. 걷다보니 초록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소리와 빛이 대나무 향과 어우러진다. 죽림욕으로 일상의 피곤함을 털어낸다. 도심공원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한다. 대나무와 사람이 정말 잘 어울린다. 70만 그루의 대나무가 한 몸으로 운집한다. 대숲의 길이는 제목대로 십리다. 가도 가도 대나무뿐이다. 오직 자연의 소리만 들린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인공의 소음을 대나무가 차단한다. 댓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린다. 황토길을 지나는 행인의 발소리는 효과음이다. 죽림의 녹색 풍광은 길 끝까지 이어진다. 숲에 드니 정말 전혀 다른 세상이다. 안구가 정화된다. 중간 중간 사진 촬영지로 유명한 포인트가 있다. 먼저 은하수길이다. 밤 산책 최고의 장소지만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주목받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죽림욕장도 있다. 음이온과 피톤치드가 쏟아지는 곳이다. 공기의 비타민을 원 없이 마셔도 된다. 유독 혼자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느새 길 끝에 다다른다. 물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대숲을 나와 태화강변을 따른다. 강물이 시간 따라 물색을 바꾼다. 하늘이 담길 땐 푸른 풍경이다. 오롯이 대나무만 담으면 진한 녹색이다. 발길 멈추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눈길 가는 곳마다 한 폭의 수채화 풍경이다. 여름 한 날이 여유롭다. 푸른 바람이 건강하게 불어온다. 수변 길을 따라 물 냄새가 올라온다. 피톤치드 향과 겹쳐 알싸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인공의 풍경이 아름답다. 태화강은 아름답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아름답다. 평범한 하천이 아니다. 이미 자연정원이다. 기적을 담아내는 스토리텔링의 공간이다. 죽음의 강에서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현장이다. 주위의 풍경이 그대로 경관 구성 재료다. 다시 태어난 기적을 읽을 수 있는 장소다. 사시사철 색다른 꽃밭이 아니다. 무작정 늘린 대숲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강변에 꽃 심고 나무 심는 건 누구나 한다. 어느 도시에서나 하고 있다. 태화강 대숲은 담양을 앞지르지 않는다. 그저 태화강의 기적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대나무는 여러 해가 지나도 변함이 없다. 크기는 물론 색깔도 같다. 자기 욕심을 멈출 줄 안다. 주변을 돌보는 덕을 갖고 있다. 옛 선비들은 늘 푸른 대나무를 사랑했다. 줄기가 곧아 굳은 절개에 비유했다. 집 가까이 심어두고 사랑했다. 십리에 걸친 죽의 향연을 마친다. 울산시민들의 대(竹) 사랑이 만든 기적을 생각한다. 대왕암 가는 길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대왕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지금까지 걸어 본 길은 모두 잊어라." 대왕암 둘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대왕암공원으로 향한다. 전설을 전설로 받아들인다. 구전의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한다. 바람이 일렁이고 구름이 길게 흐른다. 모두가 어우러진 여름 풍경의 극치다. 바람을 만난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바다의 하얀 파도가 하늘로 치솟는다. 사람을 품은 자연이 그림 속 풍경이다. 그림 속 노래이고 노래 속의 그림이다. 도심 속 소음에서 벗어난다. 도심을 지난 해변에 송림이 우거진다. 동해안 따라 해파랑길 사이로 송림이 우거진다. 대왕암공원 역시 무더위를 떨치는 데 최적의 장소다. 공원 입구에서 등대까지 산책로가 시원하다. 1만5천여 그루의 송림이 무더위를 앗아간다. 송림 가운데로 난 흙길에 보랏빛 수국이 활짝 웃는다. 향기로운 숲속 산책의 맛을 즐긴다. 오랜 시간들이 쌓여 절경을 빚는다. 길 끝에 당도한 바람이 땀을 식힌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감성을 깨운다.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대왕암 산책로엔 1만5천 그루의 소나무가 도열한다. 자신을 보호하던 피톤치드로 사람을 치유한다. 자신에겐 치료고 사람에겐 치유다. 숲을 빠져나오니 풍경이 확 달라진다. 대왕암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타난다. 푸른 바닷물에 공룡 화석이 엎드려 있는 듯하다. 붉은 빛이 도는 바위색은 아주 도드라진다. 여느 바닷가 바위에서 보는 색이 아니다. 승천을 하던 용이 떨어진 모양을 한다. 몸부림치던 용의 형상이 동해로 굽이친다. 출렁다리 조성공사 마지막 점검이 한창이다. '햇개비'와 '수루방'을 잇는 현수교다. 북측해안산책로의 돌출된 해안지형을 잇는다. 길이 303m, 폭 1.5m 규모다. 다리기둥이 없는 무주탑 형태다. 자연경관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구조다. 국내 해상에 세워진 무주탑 보도현수교 중 최장이다. 다음달 15일 개장 예정이다. 대왕암공원의 매력은 이름 그대로다. 수령 200~300년의 해송이 숲을 이룬다. 공원 한 복판을 가로질러 간다. 길이 다소 넓고 평평하다.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부담이 없는 길이다. 해무라도 끼는 날이면 신령스럽다. 여기를 지나면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합작한 기암괴석을 만난다. 역사에 얽힌 전설이 아름답고 애절하다. 길을 이어 대왕암으로 간다. 울창한 숲과 넓게 펼쳐진 바다를 동시에 즐긴다. 저 멀리 대왕암이 보인다.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가 따뜻해 보인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명품길이다. 짧은 시간 대자연에 위대함과 경이로움이 공존한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깊은 감명을 준다.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상큼하다. 대왕암은 통일신라 문무대왕의 존재 그 자체다. 호국의 용이 돼 누워 있는 영원한 지킴이다. 해송 숲은 용신이 된 왕비를 지킨다. 수도 없이 솟은 해송이 대왕암으로 안내한다. 물론 숲속 비포장 흙길도 있다. 울퉁불퉁 돌을 깔아 만든 길까지 세 갈래다. 어디서 봐도 수령 수백 년의 소나무 위용은 대단하다. 대왕교에 닿는다. 대왕암공원의 얼굴이다. 새파랗게 질린 쪽빛 바닷물 위를 걷는다. 기암괴석이 넋을 잃게 한다.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의 합작품이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탄성을 자아내는 신비의 세계다. 바위마다 '대왕'이라는 단어의 값을 한다. 천연의 황토색은 차라리 붉은 색이다.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살아 움직인다.마침내 대왕암 전망대에 선다. 대왕암이 더욱 도드라진다. 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시각과 청각, 후각 요소를 한꺼번에 만족시킨다. 추억을 위해 가슴을 연다. 생각은 내일을 위해 닫아둔다. 바다를 닮은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또 지나간다. 비경과 함께 천 년 전 전설과 낭만을 떠올린다. 스치듯 짧은 방문을 아쉬워한다. 대숲에서 노닐다 솔숲에 취한 하루다. 자연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본 여행이다. 수직 도열한 만오천 소나무가 아른거린다. 왕의 길로 안내한 보랏빛 여름 수국이 빛난다. 해안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대왕암 풍경에 다시 탄성이 나온다. 바위가 그려놓은 그림 마법이다. 대왕암공원 둘레길이 참 아름답다.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는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떨쳐낸다. 햇살 아래로 바위가 붉게 빛난다. 떠나기 전 꿈틀거리는 기암괴석의 용솟음을 마주한다. 기분이 묘해진다. 붉은 기운의 기묘한 바위들을 다시 쳐다본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외친다. 천 년 전 통일 대박을 소환한다.
[충북일보] 여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적절한 계절 맞추기가 어렵다. 배낭을 꾸릴라 치면 아직 이르곤 했다. 이때다 싶으면 다른 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몇 해를 내리 겨누기만 했다. 도대체 몇 번의 봄을 보낸 건지 모른다. 지난해 봄은 코로나19에 허리띠를 잡혔다. 2021년 5월 마침내 가고 싶은 곳을 찾게 됐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비대면 답사팀이 전북 완주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 편백나무숲을 찾았다. 쭉쭉 뻗은 편백이 수직의 풍경을 연출한다. 과연 명품 숲이다. 먹구름 잔뜩 낀 날 새벽 서둘러 길을 나선다. 동트기 무섭게 고속도로를 내달린다. 경부고속도로 거쳐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른 시간 편백나무숲 주차장에 닿는다. 피톤치드 향이 이미 숲을 따라 여기까지 내려온다. 만개한 금강초롱꽃이 반갑게 맞는다. 군락의 매발톱꽃도 화려하게 손님을 맞는다. 숲길 옆으로 뒤늦은 봄꽃들의 자랑질이 한창이다. 수직 군락의 나무 도열이 멋을 더한다. 연록과 초록의 반복은 절묘한 조화다. 산새들의 지저귐에 마음이 평화롭다. 산객도 점점 숲과 하나 돼 한 색이 된다. 답사팀이 공기마을 뒤편의 산책로를 따라간다. 곧 숲 안으로 들어선다.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을 만난다. 나무가 촘촘하게 들어서 어둑하다. 나무마다 한 치의 굴절도 없다. 수직으로 쭉쭉 뻗어 이채롭다. 숲은 벤치나 평상이 많아 쉬기 좋다.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느긋하게 쉬어가라는 배려다. 짙은·피톤치드 향이 한 가득이다. 몸과 마음이 봄의 활력으로 가득해진다. 경사진 숲에는 삼림욕장이 있다. 산객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머물면서 나무 향을 즐길 수 있다. 잠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이들도 있다. 책을 펴든 이도 있다. '걷는 숲'이라기보다 '머무르는 숲'으로 제 역할을 다 한다. 오솔길에 들면 처음 몇 분간은 좀 힘들다. 상당히 가팔라 숨이 차다. 하지만 10여분만 오르면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나무데크를 따라 숲을 오른다. 편백들이 서로 견주 듯 하늘로 쭉쭉 뻗는다. 욕심껏 숨을 들이쉰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편백림이라는 말이 느껴진다. 하늘을 덮는 나무의 녹음은 보기만 해도 서늘하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은 청량하다. 봄날의 맑은 기운을 제공한다. 누구든 삼림욕을 하며 고즈넉하게 보낼 수 있다. 숲의 나무가 봄꽃보다 예쁘다. 혼자서도 맘껏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저기에 나무 데크가 있다. 초입부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그저 편백나무 세상에 빠져들면 된다. 훤칠하게 솟은 편백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숲에 머물다 보면 저절로 가슴이 맑아진다.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된다. 울창한 청정림을 걷는 맛이 색다르다. 공기도 햇빛도 바람도 모든 게 다르다. 하늘을 이불 삼은 숲이 시원하다. 운무라도 들면 사위가 신비롭게 바뀐다. 길은 숲으로 미로처럼 나 있다. 아래위로 여러 갈래다. 때론 빼곡한 나무들이 길을 감추기도 한다. 울창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밤새 내뿜은 피톤치드가 몸과 마음을 맑게 헹군다. 한 번 호흡으로 도시오염이 중화된다. 온 종일 숲에 퍼지는 편백향이 짙고 그윽하다. 그지없이 맑고 상쾌해 마음이 편하다. 완만한 나무데크를 따라 숲을 오른다. 나무로 만든 작은 목교를 지나기도 한다. 거기서도 서로 경쟁하듯 울울창창 곧게 뻗는다. 가는 곳마다 숲 사이로 부는 바람에 안개가 퍼진다. 햇볕이 비껴든 아침 산책이 상서롭다. 나무 사이로 비껴든 볕뉘가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신비의 나라 숲에서 느끼는 감성이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즐긴다. 날씨에 조바심을 낼 까닭이 전혀 없다. 비가 오면 그대로 숲의 운치가 넘친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도 된다. 누구의 간섭 없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저 호젓한 시간을 즐기면 된다. 가슴 깊이 파고든 상쾌함을 느끼면 된다. 조금 무료하다 싶으면 산새들이 돕는다. 떼창으로 심심함을 달래준다. 길섶에는 각종 들꽃들이 눈 호강을 시켜 준다. 간간이 눈에 띄는 탐방객들의 등산복도 화사한 꽃이 된다. 걷는 사람들 모두가 꽃으로 피어나는 공간이다. 시간이 지나도 숲 향이 물결치듯 흘러간다. 그 안에서 그 에너지로 아름다운 생명들이 맥동한다. 눈에 담긴 모든 풍경들이 작품으로 빛난다. 도열한 편백 군락이 여전히 수직 풍경을 빚는다.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된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숲은 시원하다. 하늘을 덮은 청정림은 울창하다. 그 사이로 난 숲길은 색다르다. 공기도 다르고 햇빛도 다르다. 한참 거닐다 돌아보면 편편이 명품이다. 사철 푸른 나무가 눈 맞춤을 하며 반긴다. 숲이 점점 초록빛으로 날아오른다. 편백나무 사이로 분 바람이 청량하다. 한참 머물며 봄날의 나무 향에 취한다. 가야할 시간이다. 구름마저 천천히 흐르는 이른 한낮에 답사를 마친다.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이 그대로 힐러가 된다. 돌아오는 동안에도 편백향이 짙고 그득하다. 맑고 상쾌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편백향으로 물든 하루다. 몸과 마음, 기분까지 상쾌함으로 채운 날이다. 채움으로 아름다운 비움을 배운 하루다.
[충북일보] 코로나19 사태가 나고 벌써 두 번째 봄이다. 바이러스와 1년 넘게 사투 중이다. 해가 바뀌고 다시 꽃이 피고 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봄을 잃고 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길 여행 취재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어렵고 힘들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이 그 쉽지 않은 일을 하기로 했다. 1년여 만에 다시 길 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지친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다. 비대면으로 함께 호흡하는 걷기의 지혜를 알리기 위함이다. 4월 봄날 꽃구경의 소란을 뒤로 하고 떠난다. 순례자가 되어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끝나는 곳엔 언제나 또 길이 있다. 그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길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길이 된다. 저절로 사랑이 되어 순례자들을 맞는다. 꽃피어 화려한 때를 벗어나 경북 칠곡으로 간다. 거기서 순례자들의 자취를 따라 걷는다. 작은 터 위에 서 있는 가실성당 본당 풍경이 동화 같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제법 드러난다. 고전의 색채미가 더해져 고아하다. 붉은 벽돌이 맑은 하늘과 어울린다. 작은 성당이 아늑하고 고즈넉하다. 잘 가꿔진 정원이 편안함을 더한다. 하늘에서 내린 빛이 생명을 가꾼다. 소박한 고혹미에 한 번 더 반한다. 자연과 위대한 영적 유대를 갖는다. 성당을 둘러싼 벚꽃향이 코끝을 스친다. 잠시 멈춰서 꽃 향을 즐긴다. 정원의 성모마리아상을 둘러보고 여정을 시작한다. 성당 뒤편 후문 쪽으로 길을 잡는다. 길은 성당을 나서며 바로 마을길로 이어진다. 공장지대를 지나는 초기 구간은 다소 단조롭다. 낮은 언덕을 벗어나니 평지로 든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숲길로 이어진다. 제법 긴 소나무 길이 펼쳐진다. 가장 고운 자연의 액자가 눈앞으로 들어온다. 온 자연이 하나 돼 봄 색칠을 한다. 더해질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담백하다. 파란 하늘 아래 잿빛 바위마저 조화롭다. 전망쉼터와 바람쉼터가 여행자들의 땀을 씻어준다. 지금은 스러지고 만 숯 가마터와 옛 기도터를 지난다. 봄볕 아래 고요하게 걷는 맛이 좋다. 봄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는 계절의 맛을 즐긴다. 걷는 내내 모자람이 없다. 시원한 바람이 묘한 감동을 일으킨다. 청량한 울림이 숲 가운데로 조용히 흐른다. 더워진 봄의 기운이 한 겹 더 깊어진다. 산이 뿜어내는 생명의 숨이 좀 더 가빠진다. 그 열기로 때 묻지 않은 봄꽃들이 피고 진다. 격렬한 몸짓으로 빚어내는 4월의 봄 풍경이다. 숲길로 들어서니 편안하다. 산벚꽃과 개복숭아꽃이 솔숲에 점점이 숨는다. 수수하면서도 예쁜 색깔이다. 걷는 내내 새 소리가 길안내를 한다. 요란하지 시끄럽지도 않다. 낮은 소리로 지저귀는 기분 좋은 데시벨이다. 길옆엔 보랏빛 고깔제비꽃이 함초롬하다.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산지에 닿는다. 생소한 이름이 낯설다. 길옆으로 망자(亡者)의 무덤들이 널린다. 삶의 무상과 허무를 수없이 생각한다. 가끔은 명당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죽어서 스스로 명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사는 동안 복 짓고 업 짓는 일이 뭘까. 걷는 이유가 좀 더 깊게 다가온다.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도암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대 어디로 가는가'를 되뇐다. 도암지 소나무와 벚꽃이 황홀하다. 물에 담긴 반영이 찬란하게 빛난다. 수줍은 듯 숨은 모습이 더 아름답다. 벚꽃 잎 분분함이 봄날 맛을 더한다. 저수지 고운 풍경에 자꾸 빠져든다. 연못과 노송과 벚꽃의 조화가 일품이다. 순례자들의 쉼터로 그만이다. 그 멋스러움에 흠뻑 빠져 여유를 부린다. 봄의 정서를 온전하게 담아낸다. 자연의 화폭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잉어 한 마리가 텀벙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순례자 스탬프를 찍는다. 바람과 꽃들이 봄의 중심을 알린다. 만발한 벚꽃 잎들이 꽃비로 날린다. 저수지가 온통 벚꽃 잎 세상이다. 둑 위론 소나무가 압권이다. 하얀 벚꽃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사철 푸르른 빛으로 마을을 지킨다. 산길을 다시 걷는다. 숲이 깊어지며 봄 냄새가 짙어진다. 햇빛의 산란이 숲을 더 곱게 채색한다. 찰나의 볕뉘가 숲의 색을 이리저리 바꾼다. 조금 일찍 핀 벚꽃 잎이 분분이 날린다. 내 안의 다른 내가 가만히 꿈틀댄다. 봄날 찾은 한티 가는 길이 길어진다. 산모퉁이를 돌고 작은 재를 반복해 넘는다. 걷고 걸으며 조금씩 더 생각해 본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성찰한다. 신나무골 성지가 저 아래로 보인다. 순례길 5개 구간 중 제1 코스의 종착지다. 십자가 형상의 한옥 지붕이 보인다. 신나무골 성지에 다다른다. 기도하는 성모상이 눈에 띈다. 모두 뉘우치고 용서하고 사랑하란다. 삶이 새롭게 다가온다. 걷기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을 경험한다.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본다. 무엇 얻으려 어디로 하염없이 가는 가. 인생길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외길(One-way)이다. 누구에게는 삶의 전반을 돌아보는 성찰의 길이다. 누구에게는 믿음을 단련시키는 순례의 길일 게다. 코로나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국 좀 더 나은 방식의 삶으로 이끄는 과정일 게다. 한티 가는 길은 봄볕 맞으며 찾기 좋은 성지다. 언택트 힐링 여행에 최적공간이다. 고즈넉한 시간여행으로 잡아끈다. 한 번쯤 걷기를 소망하게 하는 길이다. 가는 길엔 굽이마다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모퉁이마다 박해의 현장이 널려 있다. 종교를 떠나 한 번 쯤 걸어볼만한 길이다. 나를 되돌아볼 기회다. 소박한 아음다움으로 빛나는 가실성당으로 다시 간다.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 뒤로 성자가 웃는다. 어는 순간이든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충북일보] 겨울의 끝을 잡고 깊은 숲 여행을 떠난다. 청주를 떠난 지 3시간여 만에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입구에 닿는다. 하얀 눈을 기대했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오전 10시 숲길 안내소에 도착한다. 원대리와 남전리를 잇는 외고개다. 자작나무 숲길의 시작점이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갈래길 중 윗길을 따른다. 미끄러운 오른쪽 등산로를 포기하고 왼쪽의 임도를 타고 오른다. 임도는 경사가 완만하고 폭이 넉넉하다. 트레킹 삼아 걷기에 무리가 없다. 가다보면 듬성듬성 뿌리 내린 자작나무들을 만난다. 물론 무리를 이룬 집단군락지도 있다. 결코 지루하지 않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시야도 트인다. 강원도 인제의 겨울 하늘이 맑다. 가까이 보이는 준봉들의 자태가 시원하다. 마음을 살피며 걷는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수오의 시간이다. 완만하게 굽이진 임도를 걷는다. 채 녹지 않은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깨어나는 소리다. 경사진 임도를 20분 정도 오른다. 자작나무가 햇볕에 하얀 몸을 드러낸다. 아직 본격적인 자작나무 숲이 아닌데 마음이 급하다. 몸이 저절로 달려간다. 작은 전망대와 나무의자가 발걸음을 잡아당긴다. 행복한 이끌림이다. 눈이 쌓여 그대로 얼어붙은 길이 군데군데 있다. 40분을 더 지나니 발걸음이 헐거워진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린다. 자작나무숲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좌측으로 자작나무 숲 진입로가 보인다.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긴다. 비탈을 돌자 자작나무 숲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하얀 나무 벽을 만난 듯한 풍경이다. 자작나무가 숲을 빼곡하게 메운다. 며칠 전 내린 눈과 함께 온 천지가 순백의 세계다. 하얀 껍질이 나목 사이에서 빛난다. 드디어 자작나무 숲이다. 모두가 한 결 같이 숲으로 향한다. 빽빽한 은빛 세상에 들어선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순백의 하얀 나무들이 숨 막히게 빼곡하다. 줄 선 나무들이 사열하듯 반듯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늘을 향해 곧추 선다. 하늘에선 곧게 뻗은 가지들이 동그랗게 머리를 맞댄다. 파란 하늘 아래 모여 원을 그린 동무들 같다. 시샘하는 듯 바람이 분다. 나무바다가 하얗게 출렁거린다. 하늘로 뻗은 백화(白樺)의 자태가 경이롭다. 나무에 낀 까만 옹이마저 아름답다. 감탄의 연속이다. 영영 길을 잃고 싶은 풍경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무장해제 당하고 싶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세상만사 개의치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간다.·자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피워낸다. 스러지는 것마저 자연스럽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참 예쁘다. 천천히 음미하며 오래 머물 수 있다. 자작나무의 매끈한 수피도 만져볼 수 있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마음으로 스며든다. 멀리서 보는 것과 딴판이다. 일상에서 입은 상처가 시나브로 아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풍경이다.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들이 하얀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다. 금방이라도 숲의 요정이 나올 것 같다. 왜 자작나무숲이 백미(白眉)인지 알 수 있다. 자작나무가 왜 '당신을 기다립니다'를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한참을 바라본다. 특이한 모습을 하나 발견한다. 나무들마다 하얀 수피에 눈썹 모양과 팔(八)자 모양의 흔적을 하고 있다. 가지의 흔적이 독특한 그림으로 표현된다.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니 보이는 흔적들이다. 산수화 모양도 있다.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들락날락한다. 그마저 자작나무의 일부처럼 보인다. 숲과 어울려 하나가 된다. 하얀 잔설과 나무, 사람이 풍경으로 바뀐다. 오후 햇살을 받은 숲이 빛난다. 하늘과의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다. 겨울 풍경이 유난히 예쁜 숲이다. 하얀 수피가 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신비한 풍경을 만든다. 은밀하고 몽환적인 별천지가 된다. 하얀 나무껍질이 눈부심을 더한다. 자작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저마다의 향기와 빛을 낸다. 하얀 숲에서 사람도 하얗게 변한다.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반성한다. 내 안의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등 뒤에서 자작나무가 배웅을 한다. 눈 쌓인 숲에서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자작나무 숲에서 생명을 느낀다. 새 희망을 갖는다. 자작나무의 백화방창(白樺方暢)은 구원이었다. 나무 사이로 맑은 햇살이 나부낀다. 하얀 나무와 파란 하늘이 잘도 어울린다. 다시 분명해진다. 자연을 닮아야겠다.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가야겠다. 수오의 시간을 좀 더 갖는다. 2021년 새해를 반갑게 맞는다. 아픔의 시간이 지나 새로워진다. 내가 새로워야 모든 게 새롭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충북일보] 지리산 청학동이 가을과 늦가을의 경계에 선다. 가을이 점점 깊게 물들어간다. 주렁주렁 매달린 황금빛 감이 정겨운 계절이다. 남쪽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단풍물이 곱게 들어 산길을 수놓는다. 가을 산객의 눈길을 확 끌어당긴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지리산의 가을에 푹 빠져들게 한다. 높은 지형 특성으로 단풍색이 곱다. 청학동의 고즈넉함과 회남재 숲길이 어울린다. 늦가을 정취가 일품이다. 이른 아침 청주를 나선다. 희뿌연 새벽안개 피는 어두운 길을 달린다. 차안에서 동 트는 모습을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렬한 아침햇살이 쏟아진다. 차창 밖으로 황갈색 단풍 숲이 드러난다. 심신이 저절로 안정된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국도를 따라간다. 지리산 초입으로 들어선다.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또렷하다. 길옆으론 온통 황금빛 단감 밭이다. 지리산 가을 정취를 주렁주렁 풍긴다. 오색의 단풍과 주황색 감이 산청의 가을을 수놓는다. 차가 산허리를 돌 때마다 홍엽이 만산을 꽃밭으로 만든다. 골짜기에 숨은 애기단풍이 살포시 웃는다.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지리산 청학동에 닿는다. 아침 풍경이 놀랍도록 고요하다. 서두를 것 없이 산촌에서 조용한 산행을 시작한다.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청학동부터 둘러본다. 삼성궁 앞 다리가 산행의 들머리다. 회남재 숲길은 그 옛날 화개장터로 넘나들던 길이다. 흙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마사토 길이라 느껴지는 촉감이 부드럽다. 호젓한 길이 행복감을 준다. 파란 하늘이 노랗고 붉은 단풍과 대비를 이룬다. 풍경에 홀려 걷는 내내 소리를 지른다. 장갑을 벗어 떨어트리고도 모른 채 즐긴다. 편도 6km가 한 뼘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2시간도 안 돼 회남재에 닿는다. 단풍 절정의 회남재가 북적인다. 한낮 햇살이 길가 나뭇잎에 불을 붙인다. 빨간 선혈 한 방울이 온 산을 물들인다. 단풍나무가 부챗살처럼 가지를 편다. 고르게 색이 들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발 아래로 단풍바다가 길게 펼쳐진다. 아직 물들지 않은 초록조차 아름답다. 회남재는 청학동과 묵계, 악양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악양 들판이 저 멀리 내려다보인다. 시원하게 펼쳐져 파란 하늘과 어울린다. 굽이굽이 섬진강 풍경이 아름답다. 멀리서 조망하니 한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단풍 색채가 폭죽처럼 터진다. 적당한 햇볕이 코로나19로 위축된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 묵계마을 쪽으로도 단풍이 곱다. 길옆 숲의 아름다운 경치에 놀란다. 높은 산소량과 맑은 공기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남명 조식선생이 섰던 자리에 회남정이 들어섰다. 바람 소리 따라가니 회남정이다. 적당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정자에서 굽어보니 악양 벌이 부채처럼 펼쳐진다. 소설 '토지'의 배경이기도 한 평사리가 보인다. 다시 한 번 시원하다. 곡식 거둔 악양 들판이 허허롭게 다가온다. 평사리 들녘이 고개 양편의 높은 봉우리에 안긴다. 큰 항아리를 눕혀 반으로 잘라놓은 것처럼 깊고 부드럽다. 끝자락엔 섬진강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너머로 광양 백운산 능선이 또 푸근하게 감싼다. 시끄러운 세상사를 모두 감싼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온다. 제법 차가운 바람에 땀을 식힌다. 새소리가 깊어가는 가을을 알린다. 공연 준비로 내는 연주소리가 내려갈 시간임을 알린다.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다. 빨강 노랑 단풍이 눈물 나게 예쁘다. 소나무 푸른빛은 신비롭다. 산자락에 찾아온 단풍을 만끽한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렵다. 숲이 워낙 크고 깊다 보니 다 보기 어렵다. 길옆으로 단풍색이 치렁치렁 하다. 곱게 물든 산길을 한동안 따라 간다. 동료들과 함께 걷는 동반 답사길이라 더 좋다. 회남재 숲길은 지금 단풍이 한창이다. 회남정에서 간식을 먹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치솟는 미련을 뒤로하고 청학동 삼성궁으로 길을 재촉한다.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다. 두 시간 전 올라온 길이지만 내려가니 또 새롭다. 길은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진다. 걷다가 뒤돌아보면 파란 하늘 아래 단풍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산모퉁이에 막혀 왔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여름철이면 하늘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가 즐비하다. 길 아래엔 단풍나무가 꽃밭을 이룬다. 단풍물 흐르는 사이로 소나무가 듬성듬성 보인다. 바람 불 때마다 녹색으로 존재감을 알린다. 길바닥은 마사토 덕에 폭신폭신 하다. 여름엔 신발을 벗고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구석진 곳엔 바람에 밀려온 낙엽이 수북하다. 단풍색채와 파란 하늘 속을 떠돈 가을 한나절이다. 오후가 되니 소슬한 가을바람이 이마를 때린다. 벌개미취가 온 힘으로 꽃을 떨군다. 길가 나무에 붙은 명패를 꼼꼼히 살핀다. 모두 다른 개성으로 가을을 보낸다. 가을 색을 담은 수채화를 완성한다. 청학동에 돌아오니 회남재 걷기대회 준비가 한창이다. 하얀 부스 안에 사람들이 여럿이다. 김다현길 팻말도 군데군데 모여 있다. 방역소독 차량들도 여럿 눈에 띈다. 열체크 방역요원들도 있다. 코로나19를 비로소 실감한다. 청학동의 가을이 깊게 물들어 간다. 가을빛이 삼성궁을 휘감는다. 삼성궁을 눈으로 한 번 더 살핀 뒤 청주로 향한다.
[충북일보] 태곳적 풍경이 신비로운 곳으로 간다. 한반도 동쪽 끝을 소망한다. 그 곳에서 여름이 무르익는다. 하지만 맘대로 갈 수가 없다. 하늘이 허락해야 닿을 수 있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답사팀이 2020년 광복 75주년을 맞아 울릉도와 독도를 밟는다. 첫 날(7월27일) 오전 6시20분 청주 문의IC를 떠난다. 4시간 뒤 경북 후포항에서 울릉도행 쾌속선에 오른다. 동해 먼 바다 위의 한 점 섬을 찾아간다. 동해 바다가 온통 해무로 흐릿하다. 안개의 끝을 잡고 울릉도를 찾아 나선다. 뱃길 따라 2시간 30분 거친 파도를 견딘다. 해무 속으로 울릉도 풍경이 드러난다. 에메랄드 빛 바다 신세계가 열린다. 파란 바다와 기암괴석이 원시적이다. 작은 섬이 손에 닿을 듯 점점 다가온다. 한반도 동쪽 끝의 태곳적 풍경이다. 낮 12시50분 사동항에 도착한다. 하늘의 허락을 받아 태고의 섬에 닿는다. 배에서 내린 여행객과 마중 나온 여행사 직원들로 북적거린다. 섬에 드니 비로소 역동적인 섬을 본다. 도동으로 빠르게 옮겨 가볍게 점심을 먹는다. 오후 2시 넘어 나리분지로 향한다. 버스가 힘겹게 급경사의 시멘트길을 오른다. 고도 340m의 된 고개다. 길가엔 핀 울릉국화와 나리꽃이 줄은 선다. 수많은 산나물과 들풀이 자란다. 얼마 가지 않아 너와집과 투막집이 보인다. 차에서 내려 사진 촬영을 하며 부산을 떤다. 궂은 날 씨껍데기 술 한 잔을 걸쭉하게 들이킨다. 오후 3시20분 나리분지에서 내려온다. 곧장 해안도로를 탄다. 차창 밖으로 죽도 풍경이 흐른다. 관음도가 해무 속에 아득하다. 오후 4시30분 성불사에 도착한다. 깃대봉 중턱이 해무천국이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올린다. 내일의 쾌청을 기도한다. 1시간 뒤 통구미 터널을 지난다.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형상의 거북바위를 만난다. 통구미는 한자어가 아니라 순 우리말이다. 해안도로에서 만나는 비경 중 으뜸이다. 양쪽으로 높이 솟은 산이 골짜기를 긴 홈통처럼 만든다. 멀리서 보면 거북바위가 하나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여섯 마리부터 아홉 마리까지란다. 남통과 남양 터널까지 지난다. 해안도로 굽이를 돌 때마다 기암괴석 덩어리가 나타난다.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투구봉을 만난다. 바다와 화산암이 어울려 환상적이다. 천길 절벽은 위압적 경관이다. 오후 6시30분 도동에서 다시 저동으로 간다. 독도새우를 만나 소주 한 잔으로 회포를 푼다. 오랫동안 짙은 바다 냄새를 만끽한다. 불을 밝힌 저동항 일대에 먹구름이 낮게 깔린다. 흐린 날 포구의 추억이 낭만적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행 둘째 날(7월28일) 오전 6시50분 아침식사와 함께 해장을 한다. 30분 뒤 도동항을 떠난다. 1시간 뒤 다시 관음도를 만난다. 전날 조망과 비슷하다. '해무찬란'이란 신조어가 적당하다. 흐릿한 섬 윤곽만 보일뿐 주변 경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관음도는 울릉도에서 독도와 죽도 다음으로 크다. 본섬과 100m 거리에 떨어져 있다. 1960년대까지 한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다. 2012년 8월 보행 연도교가 세워졌다. 입장료만 내면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전 8시30분 촛대바위 쪽으로 향한다. 곧바로 봉래폭포 트레킹을 시작한다. 봉래폭포는 저동천의 원천이다. 울릉군민들의 식수원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가면 풍혈(風穴)을 만난다. 사계절 자연냉장고로 시원하다. 아름드리 삼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는다. 심호흡으로 숲의 기를 받는다. 계곡 옆에 만들어진 작은 폭포들이 아름답다. 30분도 안 돼 봉래폭포를 만난다. 삼단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쾌하다. 고운 비단처럼 부서지는 포말이 예술이다. 봉래폭포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는다. 바위 절벽 위로 녹색의 숲이 이어진다. 나무 하나하나의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물보라를 타고 태고의 풍경이 흐른다. 거울 같은 물속에 숲이 하나 더 있다. 봉래폭포는 성인봉에서 흘러내린 신령수다. 한동안 넋을 잃고 풍경을 즐긴다. 섬 한 가운데서 압권의 풍경을 자랑한다. 다가설수록 물줄기의 위력이 힘차다. 사계절 내내 울릉도 지키는 에너지다. 그 기운을 받아 몸에 챙긴다. 봉래폭포 소리가 우렁차고 힘차다. 거기서 나온 상수(上水)가 계곡을 타고 유장하게 흐른다. 물줄기를 바라보며 다시 내려간다. 여운이 자꾸 남아 자꾸 뒤돌아본다. 기품 갖춘 3단 폭포가 영혼을 맑게 하는 보석으로 거듭난다. 내려오는 길에 주막에 들러 호박 막걸리를 마신다. 태고의 에너지를 그대로 뿜는 듯하다. 동해를 가로질러 세계로 뻗는다. 촛대바위에 도착한다. 왕복 한 시간 남짓이다. 폭우로 막힌 행남해안길 쪽으로 다가간다.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오전 10시30분 도동으로 돌아와 이른 점심을 한다. 메뉴는 울릉도 특산물 중 하나인 따개비칼국수다. 오전 11시20분 독도로 출발한다. 망망대해 파도가 잔잔하다. 잉크색 바다가 오묘하게 출렁인다. 그 색이 한층 더 매력적이다. 굵은 비가 온 뒤에 하늘이 맑게 갠다. 파랬던 바다가 하얀색으로 부서진다. 눈부시게 반짝이며 포말을 그려낸다. 급작스런 해밀이 너무 맑은 광경이다. 운무 품은 독도가 당당하게 다가온다. 구름 안개를 물리치고 서서히 드러난다. 찬란한 독도의 풍경이 귀하고 귀하다. 동쪽 끝 섬에 오를 기대감이 점점 더 커진다. 마침내 오후 1시 27분 독도 접안에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내 너울성 파도가 밀려온다. 독도경비대원들이 묶었던 밧줄을 다시 푼다. 염원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선상 선회관광으로 대체다. 선상에서 태극기와 함께 나라의 자존을 생각한다. 광복 75주년을 외치며 태극기를 든다. 경적소리가 출발을 알린다. 아쉬움으로 독도와 인사한다. 선상에서 독도 풍경을 길게 만끽한다. 오후 2시2분 울릉도로 회항을 서두른다. 2시간도 안 돼 사동항에 도착한다. 곧바로 도동항으로 돌아와 행남 해안산책로를 걷는다.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길이다. 산책로는 도동항과 저동항을 잇는다. 도동항 여객터미널 철계단을 오른다. 검고 거친 갯바위 따라 철제다리와 데크가 이어진다. 저동 촛대바위 쪽으로 이어간다. 행남등대 앞으로 동해가 압도적이다.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제다리의 경관이 독특하다. 해안의 연결선이 경이롭다. 바다색이 에머럴드로 빛난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청정 자연이 살아 숨을 쉬는 울릉도다. 흐린 날과 무관하다. 탁 트인 바다와 울창한 숲이 절묘하다. 새파란 바다 옆 해식동굴을 천천히 지난다. 해무 뒤로 숨은 해안 계단을 따라간다. 가슴을 뚫는 바다와 다시 마주한다. 해안선 아래 해안길 절경이 이어진다. 기암절벽과 천연동굴을 끼고 걷는다. 무지개다리가 바위와 바위를 잇는다. 아쿠아빛 색감이 그야말로 감탄이다. 장마의 계절에 울릉도 속살을 만진다. 깨끗하고 순수하다. 태고의 비경 앞에서 찰나를 즐긴다. 동행한 네팔 리, 이 사장이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파도에 부딪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연산 홍합탕에 소주 한잔을 청한다. 소라 안주로 또 한 잔을 한다. 마음속 근심이 사라진다. 여행 셋째 날(7월29일) 울릉도를 떠나는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도동항에 장맛비가 추적거린다. 오후 2시 쾌속선에 몸을 싣고 사동항을 떠난다. 섬이 멀어지며 청량한 스펙트럼을 낸다.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바다 위 수직절벽이 절경이다. 초록으로 빛나는 여름이 무르익는다. 녹색 보석의 기이한 산들이 첩첩하다. 섬을 둘러싼 절벽이 철옹성을 만든다. 일정한 패턴의 암석 덩어리가 도열한다. 절벽굴곡이 화산섬의 비밀을 알린다. 유구한 세월 흔적을 고스란히 품는다. 울릉도가 푸른 동해 한 가운데로 다시 솟아난다. 깎아지른 절벽이 섬을 에워싼다. 다양한 바다색과 기이한 바위가 경이롭다. 기이한 산들과 보석 같은 물빛의 바다가 있다. 지리적 풍경과 인문적 경관이 합쳐진다. 독특하다. 걱정스러운 게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아직은 괜찮은 듯하다. 하지만 이대로 더 놔둔다면 걱정스럽다. 자칫 섬을 망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늘어나는 차와 몰려드는 여행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울릉도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울릉도를 떠난다. 외로운 섬 하나가 저 멀리 희미해진다. 바다의 고독을 느끼는 순간 전율한다. 그 옛날 화산섬의 절대고독을 받아들인다. 낯선 외로움이 깊게 스민다. 고독과 자유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2020년 여름, 울릉도와 독도를 기필코 기억하리라. 광복 75주년, 영원한 우리 땅을 잊지 않으리라. /글·사진=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강렬한 태양열에 온 몸이 익어간다. 빛을 머금은 녹색 숲이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새소리를 따라 홀린 듯 걸어간다. 자꾸 덥고 습하고 뜨겁다. 여름이 절정으로 간다. 산과 계곡, 바다가 그리운 계절이다. 코로나19가 여행마저 제한한다. 사람들이 청량한 숲과 깊은 계곡을 찾는다. 우거진 숲은 따가운 여름 볕을 가려준다. 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상상만으로도 좋다. 전북 순창의 칠월 숲으로 초대에 응한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이 7월의 강천산을 찾는다. 너무 끈적끈적한 무더위가 오기 전에 찾는다. 북적이는 곳을 피해 호젓하게 가본다. 여름 강천산은 행복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길은 초록 그늘 위로 파랗게 빛난다. 산란한 빛 내림은 황홀한 숲길을 만든다. 원시 냄새가 그대로 풍긴다. 이름 모를 풀과 꽃이 길을 잇는다. 새 울음이 순식간 허공으로 사라진다. 주차장을 들머리로 한다. 초입부터 이어진 폭신한 흙길이 그대로 풍경화다. 몇 걸음 걸으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얗게 반긴다. 아찔한 벼랑 끝에서 옥수가 떨어진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시원하다. 하얀 병풍폭포가 주는 첫 선물이다. 병풍폭포를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계곡을 끼고 이어진 길이 온통 녹색이다. 데크 옆으로 귀여운 잎의 애기단풍나무들이 도열한다. 숲이 내는 소리에 몸이 반응한다. 이즈음에 산에 들면 녹색의 선경을 선물로 받는다. 녹색의 산란을 알게 된다. 여름제국이 점점 절정으로 달려간다. 계곡에서 데크로 만들어진 왼쪽 숲길을 걸어 오른다. 원시림의 진한 냄새가 오감을 자극한다. 녹색의 유혹이 빨간 단풍만큼이나 강렬하다. 삼거리까지 두 번의 된 비알을 만난다. 계단이 없으면 아주 험한 길이다. 거침없이 오른쪽 길로 바로 간다. 신선봉 위 삼선대로 가는 길이다. 안부를 지나 한동안 순하게 펼쳐진다. 숲 구경을 하며 산새 소리를 듣는다. 녹음이 우거지니 산풍경이 꿈결 같다. 단풍 없는 강천산이 충분히 아름답다. 부슬비가 운치를 더한다.삼선대가 있는 신선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급한 경사가 길게 이어진다. 전망대에 오른다. 황우제골 사거리까지 내리막이다. 정상까지 내쳐 간다. 노송 한 그루가 반긴다. 숨을 헐떡이며 삼선대에 오른다. 계곡에서 멀어지니 절경이 다가온다. 삼선대에서 바라본 산 무리가 예쁘다. 유려한 녹색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울울창창한 푸른 숲이 빛난다. 마침내 신성산에서 강천산의 왕자봉을 마주한다. 그 아래 협곡에 자리한 주황색 현수교가 확연하다. 녹음 속 주황색이 압권이다. 현수교로 내려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른다. 현수교가 찌릿한 공중부양의 아찔함을 선물한다. 위태로운 공간에 비장하게 자리한다. 멋스러운 산세와 맑은 계곡에 반한다. 한 옆으로 짙푸른 강천지가 자리 잡는다. 풍경 한 쪽으로 비구니 도량 강천사가 고즈넉하다. 한 때 1천 명의 승려가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암자만 열두 개에 달하던 아주 큰 절집이었다.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은 역사를 말해준다. 1316년에 세워졌으니 유구하다. 강천산의 매력을 다시 알린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현수교를 거쳐 구장군 폭포까지 내쳐간다. 내려오는 길도 경사가 급하다. 계단 옆으로 자잘한 바위도 삐죽삐죽 솟아 있다. 전망대에서 현수교까지는 500m 정도다. 마침내 계단을 내려와 현수교에 다다른다. 초록빛 숲 속에서 주황색 구름다리가 유난하다. 주황의 강렬함이 녹음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높이 50m의 허공에 매달린 출렁다리가 흔들린다. 그 길이가 76m에 이르는 현수교다. 다리 가운데로 걸어 갈수록 출렁거린다. 한참동안 이곳에서 논다. 협곡으로 내려선다. 완만하게 다져진 계곡 길을 따라간다. 험준한 산 아래 구장군폭포가 웅장하다. 두 눈이 깜짝 놀란다. 깎아지른 절벽 두 곳에서 옥수가 쏟아진다. 아홉 장군의 포효처럼 들린다. 비 온 뒤라 물줄기가 역동적으로 길게 쏟아진다. 넓은 소(沼)가 잔잔해진 물줄기를 넉넉히 품는다. 승전보를 울린 9명의 장군이 지나간다. 계곡수가 감로수처럼 청정하다. 폭포물이 계곡을 따라 청류로 흐른다. 탁한 마음을 씻어낸다. 숲속의 빛과 소리마저 초록에 젖는다. 구장군이 계곡 깊숙이 숨는다. 새 한 마리 날더니 하늘이 맑아진다. 뒤를 봐도 앞을 봐도 푸른 녹색길이다. 가을단풍 오솔길이 여름 녹음숲길이 된다. 구장군폭포에서 매표소까지는 약 2.5㎞다. 걷기 딱 좋게 편편한 황톳길이다.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이어진다.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걷는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청량한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더위를 식혀준다. 나뭇잎에 가려 있던 강천사가 드러난다. 천년 품은 절집이 길 풍경을 완성한다. 두 손 모아 절을 올린다. 경내에 들어서니 깔끔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마음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여름의 짙은 녹음이 가을 단풍의 감동을 넘어선다. 절집 문에 들고서야 깨닫는다. 새 잎이 나고 자라 푸르름 이룬 고귀함에 감사한다. 새삼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강천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녹음과 대조를 이루는 강천문을 지난다. 푸른 단풍나무 베이스캠프가 고즈넉하다. 단풍나무의 푸른 자랑이 이어진다. 계곡물이 콸콸 소리를 낸다. 때론 소리 없이 조용하다. 고요와 소란이 교차한다. 계곡을 끼고 메타세쿼이아가 우람하다. 쭉쭉 뻗은 몸매를 자랑한다. 담양의 가로수길 못 지 않다. 단풍나무 밑 풀포기들도 멋진 풍경으로 거듭난다. 우람한 녹색길은 20여분 정도 계속된다. 길 옆 곳곳이 자연미와 인공미로 어울린다. 단풍나무들의 합창 소리가 계곡을 타고 흐른다. 어린 나무들도 옹기종기 모여 어른나무들을 흉내 낸다. 호남의 작은 금강으로 부족함이 없는 풍경이다. 녹색계절, 강천산의 열띤 생명력이 아름답다. 단풍의 화려함이 전혀 부럽지 않다. 물에 반영된 녹색이 채도를 높인다. 계곡물이 금세 옥빛으로 변한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신록으로 변한다. 녹음이 빚어놓은 경치가 가히 선경이다. 맨발로 건강을 다지는 강천산 계곡 길이다. 비에 촉촉이 젖은 길엔 주름 하나 없다. 사위가 붓으로 그린 그림처럼 아름답다. 조물주의 신비로운 솜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라만상이 야단스럽게 풍요롭다. 울창한 숲 사이로 산세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음이온으로 가득 찬 심장의 고동이 빨라진다. 모처럼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산책하는 이들이 보인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어느새 몸이 가볍고 마음이 맑아진다. 시간이 안개 사이로 지난다. 녹음터널로 바뀐 단풍터널을 지난다. 다시 병풍폭포 앞에 선다. 내 안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바람이 기억을 흔들어댄다. 맑은 햇살이 얼굴을 때린다. 강천산 녹음숲길이 한바탕 꿈과 같다. 숲속 생명의 노래 소리로 마음이 평화롭다. 아름다운 길이다.
[충북일보]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3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戰禍)는 참혹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모두 폐허로 만들었다. 지리산은 오늘도 슬픈 역사를 묻어두고 있다. 한 쪽 가슴엔 빨치산의 슬픔을 담고 있다.·다른 한 쪽 가슴엔 토벌대의 아픔을 품고 있다. 빨치산 루트는 지리산 남·북·동쪽 능선과 계곡 일대에 대략 12개다. 대부분 기존 등산로와 조금 떨어져 있다.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극의 역사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탐사는 벽송능선 루트와 칠선계곡 루트로 나눠 진행됐다. 현대사의 역사탐방에 의미를 부여했다. ◇벽송능선 루트 벽송능선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빨치산 루트다. 들머리는 서암정사다. 현대판 석굴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연암반에 무수한 불상들이 조각돼 있다. 사대천왕상이 압권이다. 오래 머물지 않고 벽송사로 걸음을 옮긴다. 벽송사가 조용히 반긴다. 비 그친 천년고찰이 고요하다. 절집 뒤로·도인송과 미인송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미인송이 생각보다 약해 보여 안타깝다. 탐사 당일에도 지지대에 기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황홀하게 매력적이다. 벽송사는 6·25전쟁 중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 퇴각하던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토벌대의 폭격이 있기 전까지 이어졌다. 절집 옆으로 변강쇠의 전설을 품은 목장승이 눈을 부릅뜬다. 경남도 민속자료 제2호다. 벽송사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길은 이제부터 옛 빨치산루트를 따라 이어진다. 울창한 숲속을 따라간다. 오르내림이 완만하게 계속된다. 소나무와 참나무 향이 숲을 가득 메운다. 길은 맨발로 걸어도 좋을 정도로 폭신하다. 벽송능선은 여러 개의 빨치산 루트 중 하나다. 지리산 빨치산의 은신처이자 주요 활동무대였다. 공비토벌의 역사적 흔적도 함께 배어 있는 공간이다. 능선 곳곳에 비트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나무와 잡목만 보일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가지 않아 산죽길이 이어진다. 하늘에선 보이지 않는 길이다. 빨치산들이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기서도 동굴비트나 산죽비트, 자연비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울울창창한 나무뿐이다. 녹색의 세상만 보인다. 어느새 장구목이(옛고개)다. 앞으로 계속 직진한다. 전나무가 울창한 봉우리를 넘는다. 송대 갈림길에 닿는다. 노송이 그늘을 만들어 쉬기에 좋다. 붉은 페인트로 그려진 방향표시를 따른다. 바위지대를 지난다. 삼거리를 거쳐 안락문을 빠져나간다. 안락문의 사연이 애잔하다. 함양독바위(노장대 1120m)에 오른다. 예전 있던 구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내려온다. 발길을 재촉한다. 어느새 모전교를 거쳐 용유교다. 엄천강이 빚어낸 용유계곡을 굽어본다. 계곡으로 내려선다. 용유담이 우아하다. 유월 녹음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암각 글귀를 눈여겨본다. 용유담 돌아 둔덕을 따라 오른다. 빨치산의 슬픈 노래가 이어진다. 돌격의 외침이 슬픔으로 남는다. 산골짜기마다 아픔의 흔적이다. 피로 물든 치열한 전투장면이다. 구천에 떠돌 영령의 애절함이다. 시대의 아픔을 씨줄 날줄로 짠다. 아름다운 용유담을 떠난다. 다시 용유교를 거쳐 마적대로 이동한다. 소나무 한 그루가 기골 차게 서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다. 바닥 암반엔 수십 명이 거뜬히 앉아·쉴 수 있다. 지나는 길손마다 부르는·천하의 명당자리다. 다시 거침없이 앞으로 간다. 계곡을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틀어 마적대에 오른다. 눈앞으로 용유계곡 물이 만든 엄천강이 도도히 흐른다. 술 한 잔으로 먼저 간 영혼을 달래본다. 아픔이 밀려온다. ◇칠선계곡 루트 백무동에서 칠선계곡 쪽으로 길을 잡는다. 어느 정도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다만 시작부터 10분 정도 경사가 급하다. 조금 더 가면 오르막이 잔잔히 이어진다. 그래도 경사가 급하지 않아 비교적 편하다. 약 20분 정도 오르니 인민군사령부 터를 만난다. 빨치산 교육과 훈련을 하던 주요 근거지다. 이곳을 중심으로 남부군으로 불리는 빨치산들이 터를 잡고 활동했다. 오르면서 비슷한 모양의 터를 몇 개 더 보게 된다. 집터에는 이끼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곧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대나무밭을 만난다. 상당히 넓은 죽전(竹田)이다. 아마도 생필품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가 필요했을 것 같다.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유월이지만 서늘한 분위기에서 걷는다. 잣나무숲길이 짧게 이어진다. 창암능선 고개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두지동까지 15분이다. 약간 경사가 급하다. 200m 정도 내려오니 산골마을 두지동이다. 민박집도 있고 커피 가게도 있다. 두지교를 지나 칠선계곡으로 향한다. 대나무 대문을 지난다. 아무 죄 없는 나무꾼 심정으로 칠선교를 넘어선다. 잠시 오르막길이다. 워낙 잘 정비돼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숲을 끼고 가는 예쁜 길이다. 선녀탕에 도착한다. 옥녀탕을 지나 비선담까지 내달린다. 이곳부터는 사전예약을 한 사람만 오를 수 있다. 물론 길이 거칠어 오르는데 힘이 든다. 그래도 빨치산 루트를 제대로 맛보려면 가야 한다. 힘든 만큼의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비선담을 지나니 풍경이 급한 여울로 흘러내린다. 여름의 초록 향기가 경관과 풍류를 빚는다. 신록과 녹음이 찬란한 물빛과 어우러진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산란한다. 녹음이 하루하루 짙어져 간다.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계속된다. 칠선계곡 마지막 폭포를 지난다. 마폭포다. 이곳에서 잠시 목을 축였을 빨치산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길은 여기서 다시 막힌다. 탐방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설 수 있다. 국립공원 직원이 문을 열며 줄을 걷어낸다. 통제 데크 문을 지난다. 가쁜 숨을 고르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한 시간 정도 지나 고갯마루에 선다.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다. 조릿대(산죽) 군락지가 곳곳에 있다. 큰 바위를 넘어서자 사뭇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천왕봉 가는 길이 갈수록 흐려진다. 몸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거칠고 투박한 산길이 계속된다. 때때로 산죽이 가로막는다. 쓰러진 고목도 거든다. 때론 아주 된 비알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쁜 숨에도 예서 멈출 순 없다. 저 멀리 계곡 끝이 손에 잡힐 듯하다. 비밀의 길 같은 느낌이다. 호젓함을 넘어 적요해진다. 길 위에는 습지와 신록의 나무가 무성하다. 초록의 풀들이 가득하다. 고난도 비탈구간을 지난다. 천상을 기대케 하는 난코스를 오른다. 지리산 색깔이 완연하게 바뀐다. 빨치산 루트가 점점 더 은밀하다. 은폐 엄폐에 안성맞춤 녹음이다. 녹색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바람이 에둘러서 소식을 전한다. 핏빛 물들기 전의 청춘예찬이다. 마지막 빨치산들의 슬픈 노래다. 70년 전 비극을 풀꽃이 싸맨다. 지나온 계곡 길의 윤곽을 되짚어 본다.·빨치산과 토벌대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역사의 교훈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충북일보] 충북일보클린마운틴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쇠둘레의 땅을 찾았다. 쇠둘레는 강원도 철원(鐵原)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철원은 1914년 경원선이 놓이면서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실제론 일제 수탈자원의 통로였다. 지금의 철원읍은 수복지구(收復地區)다. 지도상으론 '38선 북쪽 휴전선 남쪽'이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일제강점기 수탈흔적과 6·25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동당사에 박힌 총탄 자국이 당시의 참상을 웅변한 다. 월정리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 팻말은 깊은 통증이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2012년 열렸다. 원점회귀형으로, 4.8㎞의 짧은 숲길이다.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지뢰꽃길 산책로다. 철책을 따라 곳곳에 '지뢰밭'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속절없이 핀 수많은 풀꽃과 대비를 이룬다. 오전 10시30분, 저 멀리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는 초소가 보인다. 그 앞으로 골격만 드러낸 노동당사가 눈에 띈다. 탐방객 몇 명이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소이산 전망대 가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몇 번의 '알바' 끝에 알아챈다. 들머리는 노동당사 맞은편 큰길 건너다. 흙길이 이어진다. 찔레꽃과 함께 지뢰꽃길 명패가 반긴다. 가는 길 곳곳에 전쟁의 흔적들이 많다. 철조망에 걸린 지뢰밭 문구는 공포다. 곳곳의 참호(塹壕)와 진지(陣地)는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소이산은 아직도 곳곳이 지뢰지대다. 길 가까이 지뢰밭이 전방임을 알린다. 그래도 철조망 아래에 각종 풀꽃이 다양하게 핀다. 이즈음엔 하얀 찔레꽃과 복분자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지뢰의 땅을 감추고도 남는다. 철조망 아래의 남다른 풍경이다. 철책에 걸린 향토시인들의 시구가 애잔하다. 전쟁과 휴전의 역사와 고통을 조용히 알린다. 지뢰밭을 일궈 만든 마을 이야기도 있다. 지뢰밭 너머로 경원선 복원을 꿈꾸는 소망도 드러난다. 길을 따라 아픈 흔적이 우울하게 자리 잡는다. '내 고향 전차'란 시는 시인의 중학 시절 전차 통학하던 친구들을 떠올린다. 정원역에서 우뚝 서던 금강산 전차를 그리워한다. '철조망 환갑잔치'는 휴전이 주는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철조망의 눈물을 그려내고 있다. 향토시인들은 대부분 전쟁의 아픔을 알리고 통일을 소망한다. 앞서 소개한 것 외에도 '양지리 검문소1' '철마는 달리고 싶다' '막판농사' '사랑은 밥이다' '가을 들판' 등이 있다. 모두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중 '지뢰꽃'이 유난하다. 오전 11시20분, 제법 긴 오르막을 지난다. 조금 더 가니 삼거리다. 소이산 전망대 쪽으로 길을 잡는다. 옛 미군 부대 막사와 교통호, 견고하게 지은 진지(일명 토치카)를 만난다. 교통호와 탄약고 위쪽이 바로 소이산의 정상이다. 녹음의 임도를 따라간다. 한참을 헉헉거리니 평화마루공원이 보인다. 코로나19로 문이 굳게 닫혀 안을 볼 수가 없다. 미군과 국군이 번갈아 주둔했던 곳이다. 오른쪽 나무 데크를 오른다. 5분도 안 돼 산정에 다다른다. 송글송글 이마의 땀 위로 바람이 분다. 산정 데크 위를 오가며 북쪽 들녘을 바라본다. 철원평야 중간에 멈춰 선 월정역이 보인다. 백마고지 뒤로 북쪽 풍경이 고요하다. 뒤로 보이는 DMZ(비무장지대)이 풍경을 완성한다. 북쪽의 평강고원은 가슴을 뛰게 한다. 지평선이 남방한계선에서 완성된다. 하얀 구름 그림자가 평화롭게 지난다. 남쪽 철원이 북쪽의 산으로 이어진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모내기 물을 담아놓은 논들이 스테인드글라스 같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다. 소이산이 최고의 경관을 펼쳐 보여준다. 철원평야엔 모내기를 위한 물이 한 가득이다. 그대로 거대한 호수다. 마치 염전에 물을 담아놓은 것 같다. 평강고원이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진다. 전망대의 팔각정자로 오른다. 주변 지형을 알려주는 투명한 안내판이 있다. 백마고지와 김일성고지, 아이스크림고지가 손에 잡힐 듯하다. 노동당사도 가까이 보인다. 한참을 전망대 위에서 북쪽 하늘과 들녘을 바라본다.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을 다시 바라본다. 여전히 고요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변치 않은 분단과 비극의 소회를 웅변하고 있다. 분단과 대결의 긴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산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공간과 시간의 막막함이다. 뒤이어 찾아오는 건 신산함과 풍요로움의 대비다.철원에서 나고 자란 정춘근 시인의 시 '지뢰융단'을 찬찬히 살핀다. 마음이 묵직해진다. 6·25전쟁 당시 피아(彼我)의 격전이 아른거린다. 오후 1시40분, 전망대를 내려온다. 길섶의 나무와 풀이 오후 햇살에 빛난다. 노동당사 주차장까지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호국과 보훈의 의미를 되새긴다. 긴장과 평화 같은 정반대의 감회가 온 몸을 휩싼다. /글·사진=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충북일보클린마운틴이 지난 4일 지리산 칠선계곡을 찾았다. 예약 탐방제 추첨에서 운 좋게 기회를 얻었다. 전국에서 46명이 함께 특별한 산행을 했다. 코로나19 척결 소망 기도산행을 겸했다.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이 다시 열렸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동에서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4m)까지 9.7㎞ 구간이다. 오전 7시 마천면 추성주차장을 출발한다. 추성동을 지나 두지동 마을로 향한다. 들머리부터 노면이 날카롭게 선다. 도로가 끝나는 둔덕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다. 15분 정도 깔닥고개를 헐떡헐떡 넘으며 시험에 든다. 이내 계곡 길이다. 푸른빛을 띤 소(沼)와 마주한다. 자연스럽게 발길을 멈춘다. 숲은 온통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높은 고도에 발바닥이 찌릿찌릿 하다. 때론 간질간질할 정도로 아찔하다. 발아래로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그 옆으로 울창한 수풀이 어우러진다. 찾는 이가 적어 원시적이다. 봄날 여름 멋을 제법 내려한다. 우람한 폭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자태가 우람하고 시원하다. 울창한 수풀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깨끗한 물이 흘러 시원하다. 그늘진 계곡을 따라 암반이 즐비하다. 연초록 숲 사이로 물소리가 퍼져나간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합주를 한다. 칠선계곡은 확실히 다르다. "자연만큼 지루하지 않은 게 또 있을까." 되뇌어본다. 두지동 마을을 지나자 황홀한 칠선의 향연이 시작된다. 막강 5월의 초록기운이 숲을 감싼다. 기분 좋게 맑아진 공기가 한 가득이다. 원시림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 준다. 선녀탕과 옥녀탕이 녹음에 둘러싸인다. 물소리가 이어진다. 눈길이 닫는 곳마다 아름답다. 목욕하는 선녀의 수줍은 모습을 닮아 있다. 은밀하고 깨끗한 옥녀탕을 지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암반을 만난다. 조금 걷다 보니 쌍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물줄기가 두 갈래로 떨어진다. 폭포 가까이 가 기념사진도 찍는다. 옥녀탕을 지나 비선담까지 내쳐간다. 청옥빛의 비선담 아래로 가까이 간다. 비선담통제소에서 사진을 찍는다. 물속 깊이가 족히 2~3m는 넘어 보인다. 비선담의 매력에 푹 빠진다. 일곱 선녀들의 유혹인 듯 매혹적이다. 여기서부터 통제구역이다. 막힌 '출입금지 특별보호구역'으로 들어선다. 정비된 길이 없고 아주 험하다. 바위를 딛고 계곡을 가로질러 오른다. 칠선의 매력에 한없이 몰입한다. 감미로운 계곡이 야성적으로 바뀐다. 아직 이름이 없는 무명 소와 담이 널려 있다. 위로 갈수록 순수의 계곡이다. 이름 붙은 곳이 오히려 몇 안 된다. 대부분 아름다운 소폭에 이름이 없다. 칠선계곡이 눈부신 봄을 맞고 있다. 태고의 원시림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숲이 차츰 원시림으로 변한다. 신비감과 은밀함이 공존한다. 초록과 햇빛, 새소리에 안긴다. 초록의 색감이 큰 감동으로 온다. 풍경이 급한 여울로 흘러내린다. 초록 향기가 경관과 풍류를 빚는다. 신록과 녹음이 어우러진다. 연초록의 경치가 밀려든다. 햇빛에 산란해 눈이 부시다. 연두색 신록이 하루하루 짙어져 간다.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세상 잊은 서늘함이 길옆으로 흐른다. 전인미답의 협곡이 우렁차다. 크고 작은 폭포수와 깊은 웅덩이가 절묘하다. 기묘한 바위들이 하나 같이 절경을 이룬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맑은 날 수채화가 따로 없다. 여울을 넘어온 물이 숨을 고른다. 새 울음소리가 슬며시 끼어든다. 텅 빈 산에 사람이 없으니 새 울음이 더 아름답다. 물은 기운차게 흐르고 꽃은 곱게 핀다. 5월 처음 열린 칠선계곡의 봄 풍경이 귀하고 값지다. 계곡이 점점 깊어진다. 녹음은 점점 더 옅어진다. 고도가 높아지며 계절이 거꾸로 간다. 칠선폭포에서 잠시 쉰다. 온 몸에 흐른 땀이 식는다. 계곡을 건넌다. 작은 표지판을 따라 간다. 20~30분 정도 오르니 물줄기가 갈라진다. 대륙폭포다. 요란한 물소리에 몸이 빨려든다. 수량도 풍부하고 낙차도 크다. 웅장하고 경쾌하다. 계곡에서 숲 사이로 바라볼 때 한층 더 그림 같다. 삼층폭포도 빼놓을 수 없다. 수십 m에 이르는 바위 사이를 흘러 3층으로 떨어진다. 내 발걸음 하나가 역사로 새겨진다. 폭포의 앞까지 최대한 다가간다. 폭포가 떨어지며 내는 포말 음이 우렁차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절경이 계속된다. 삼층폭포와 대륙폭포에 오래 머문다. 위로 오를수록 협곡이 점점 좁아진다. 마폭포를 지난다. 마지막 폭포다. 길은 여기서 다시 막힌다. 탐방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설 수 있다. 국립공원 직원이 문을 열며 줄을 걷어낸다. 다시 통제 데크 문을 지난다. 가쁜 숨을 고르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한 시간 정도 지나 고갯마루다.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다. 조릿대(산죽) 군락지가 곳곳에 있다. 큰 바위를 넘어서자 올라오면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저 멀리 계곡 끝이 손에 잡힐 듯하다. 짙은 이끼와 양치류가 고목을 덮는다. 주목 한 그루가 위용을 뿜어낸다. 어른 3명이 팔을 벌려야 잡을 수 있다. 원시시대 숲처럼 녹색 세상이 이어진다. 극강의 된 비알이 턱 버티고 막아선다. 고된 오르막은 천왕봉까지 계속된다. 등산로엔 돌이끼가 뒤덮여 있다. 마치 원시인의 옷차림을 보는 듯하다. 계곡 전체가 가히 자연박물관이다. 오를수록 경사가 점점 더 급해진다.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얼음덩이도 보인다. 험준한 고통의 전주를 알린다. 몸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길이 갈수록 흐려진다. 거칠고 투박한 산길을 이어간다. 때때로 산죽 밭 좁은 길을 헤치며 걷는다. 때론 밧줄에 의지해 바위를 넘나든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쁜 숨에도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비밀의 길 같은 느낌이다. 호젓함을 넘어 적요해진다. 길 위에는 습지와 신록의 나무가 무성하다. 초록의 풀들이 가득하다. 경사도 60도가 넘는 고난도 구간을 지난다. 마침내 천상을 기대케 하는 '천국의 계단'을 오른다. 연신 가쁜 숨으로 헐떡댄다. 코가 땅에 닿을 듯 애써 몸을 낮춰 간다. 7시간 반 만에 천왕봉 꼭대기에 이른다. 평소 산행 때와 다른 만족감이 밀려온다. 정말 기쁘고 정말 힘든 산행이다. 첩첩산중 보며 황홀한 매력에 빠진다. 오후 3시 천왕봉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넘쳐나던 인파풍경을 봐온 탓에 낯설다. 칠선의 감동이 더욱 진하게 밀려온다. 한동안 고고한 평화로움을 만끽한다. 지나온 계곡 길의 윤곽을 되짚어 본다. 칠선계곡이 내는 우렁찬 소리를 즐긴다. 천왕봉에서 지리산군을 천천히 둘러본다. 산객의 땀방울이 하나씩 모여 산행을 완성한다. 인내가 쌓여 지혜를 만든다. 지혜(智慧)의 산에 들어 반야(般若)를 만난다. 온갖 시름이 말끔히 사라진다. 글·사진=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시간이 쉼 없이 흐른다.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눈발 날리는 12월이다. 문득 바다가 궁금해진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몸과 마음을 파도 소리로 토닥이고 싶다. 2018년 12월 21일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회원들이 경북 포항의 호미곶 해안둘레길을 찾는다. 바다를 벗 삼아 걷는 길이다. 파도와 시간이 빚어놓은 기암들이 멋지다. 해안 따라 병풍을 펼쳐놓은 아름답다. 클마 회원들이 바닷가 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얼마 가지 않아 일월대(바다쉼터)를 만난다. 영일만을 한눈에 조망한다. 겨울바다 풍경이 거침없다. 멀리 포항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바다가 마음을 빼앗아간다. 수많은 햇빛과 바람, 파도가 스쳐간다. 빛과 소리와 냄새가 한 데 섞인다. 해안 따라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절벽을 따라 해식애가 하얗게 이어진다. 구멍 뚫린 해식구가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람을 벗 삼아 치유와 명상의 길을 걷는다. 집집마다·과메기가·마당·빨랫줄에 널려 있다. 영락없이 남쪽 바다 어촌의 평화로운·풍경이다. 낯선 포구의 가정집 줄에 걸린 명태마저 풍경이 된다. 햇빛과 바람, 파도와 사람들이 스쳐간다. 클마 회원들도 바다 속의 한 점 섬이 된다. 마을 촌부들의 따사로운 눈길에 정을 나눈다. 어촌풍경에 괜스레 눈물짓고 돌아선다. 좋은 길을 걷다 보니 소소한 것까지 사랑하게 된다. 눈물지으며 감동하는 감수성도 더 커진다. 호미곶 해안둘레길의 변치 않는 풍경이다. 포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촌 풍경을 보며 바다를 잊는다. 초겨울 바람이 포구로 불어온다. 인적 하나 없이 바람만 가득하다. 포구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하늘이 바다고 바다가 하늘이다. 힘들지 않고 즐기는 해안길이다. 맑은 날 평화로운 하루를 즐긴다. 이방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 같고 동무 같고 형제 같다. 세차게 달려오는 파도 소리를 귀로 듣는다. 호미곶 바닷길 위에서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다. 그 위에서 세상사 시름을 포말에 실어 보낸다. 수평선 너머로 푸른빛이 흘러간다. 겨울 해안이 바다와 어울려 한없이 아름답다.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를 떠난 지 40분 만에 하선대 선바우길 100m 이정표가 반겨준다. 높이 6m가량의 바위가 절묘하게 우뚝 서 있다. 데크 옆으로 기이한 바위 행렬이 이어진다. 곳곳에서 자연이 빚은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선바우를 뒤로하고 다시 데크를 걷는다.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바위가 보인다. 흰디기로 불리는 암벽이 길게 이어진다. 모두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지형이다. 화산성분의 백토가 굳어져 흰 바위로 변했다. 아니 바위 언덕이 됐다. 흰디기를 지나자 용솟음치는 데크를 만난다. 인간의 솜씨도 자연에 못지않다는 생각을 한다. 해상 데크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까마득한 거리까지 뻗어있는 형상이 마치 용이 춤을 추는 듯하다. 오른 쪽 해안절벽의 바위들이 범상치 않다. 밀물에 드러나는 바닷가의 널찍한 바위섬은 기묘하다. 하선대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바위다. 하선대는 용왕과 선녀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한 옆으로 먹바우가 외롭게 서 있다. 하선대와 선바우를 오가는 거리는 약 1km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경은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바닷바람이 그리 싫지 않다. 두 눈이 수평선에 묶일 것 같아 가끔씩 눈을 돌린다. 마을과 해안가, 모래해변, 데크가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데크를 걸으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각종 명품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탁 트인 바다와 투명한 풍광이 시원하다. 흥환간이해수욕장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난다. 하얀 파도 속에 거센 소리를 감춘다. 파도의 움직이는 간격에 뒤바뀜이 없다. 과하지 않은 반복이 자연스럽다. 이곳에도 자연의 법칙이 고스란히 머문다. 아픔을 참은 파도가 바람에 하얗게 부서진다.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바다 냄새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호랑이 꼬리, 호미(虎尾)에 서서히 올라탄다. 호미곶 앞바다에 바람이 분다. 겨울 바다가 잔잔하게 웃는다. 여행의 끝에서 기운을 받아 채운다. 범의 꼬리에서 겨울을 마주 한다. 호미력(虎尾力)으로 다시 질주한다. 어떤 폭발적인 힘이 요동친다. 109차 충북일보클린마운틴-호미곶 해안둘레길 2코스(선바우길:6.5km) 글·사진=함우석 주필 겨울이라 더 매력적인 해안길 한 굽이 돌 때마다 색다른 맛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에서 홍환간이해수욕장까지 짙푸른 동해 바다와 함께하는 길 시간이 쉼 없이 흐른다.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눈발 날리는 12월이다. 문득 바다가 궁금해진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몸과 마음을 파도 소리로 토닥이고 싶다. 2018년 12월 21일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회원들이 경북 포항의 호미곶 해안둘레길을 찾는다. 바다를 벗 삼아 걷는 길이다. 파도와 시간이 빚어놓은 기암들이 멋지다. 해안 따라 병풍을 펼쳐놓은 아름답다. 클마 회원들이 바닷가 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얼마 가지 않아 일월대(바다쉼터)를 만난다. 영일만을 한눈에 조망한다. 겨울바다 풍경이 거침없다. 멀리 포항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바다가 마음을 빼앗아간다. 수많은 햇빛과 바람, 파도가 스쳐간다. 빛과 소리와 냄새가 한 데 섞인다. 해안 따라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절벽을 따라 해식애가 하얗게 이어진다. 구멍 뚫린 해식구가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람을 벗 삼아 치유와 명상의 길을 걷는다. 집집마다·과메기가·마당·빨랫줄에 널려 있다.·영락없이·남쪽·바다·어촌의 평화로운·풍경이다. 낯선 포구의 가정집 줄에 걸린 명태마저 풍경이 된다. 햇빛과 바람, 파도와 사람들이 스쳐간다. 클마 회원들도·바다·속의 한·점·섬이·된다.· 마을 촌부들의 따사로운 눈길에 정을 나눈다. 어촌풍경에 괜스레·눈물짓고 돌아선다.·좋은 길을 걷다 보니·소소한·것까지·사랑하게 된다.·눈물지으며·감동하는 감수성도 더 커진다. 호미곶 해안둘레길의 변치 않는 풍경이다. 포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촌 풍경을 보며 바다를 잊는다. 초겨울 바람이 포구로 불어온다. 인적 하나 없이 바람만 가득하다. 포구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하늘이 바다고 바다가 하늘이다. 힘들지 않고 즐기는 해안길이다. 맑은 날 평화로운 하루를 즐긴다. 이방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가족 같고 동무 같고 형제 같다. 세차게 달려오는 파도 소리를 귀로 듣는다. 호미곶 바닷길 위에서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다. 그 위에서 세상사 시름을 포말에 실어 보낸다. 수평선 너머로 푸른빛이 흘러간다. 겨울 해안이 바다와 어울려 한없이 아름답다.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를 떠난 지 40분 만에 하선대 선바우길 100m 이정표가 반겨준다. 높이 6m가량의 바위가 절묘하게 우뚝 서 있다. 데크 옆으로 기이한 바위 행렬이 이어진다. 곳곳에서 자연이 빚은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선바우를 뒤로하고 다시 데크를 걷는다.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바위가 보인다. 흰디기로 불리는 암벽이 길게 이어진다. 모두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지형이다. 화산성분의 백토가 굳어져 흰 바위로 변했다. 아니 바위 언덕이 됐다. 흰디기를 지나자 용솟음치는 데크를 만난다. 인간의 솜씨도 자연에 못지않다는 생각을 한다. 해상 데크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까마득한 거리까지 뻗어있는 형상이 마치 용이 춤을 추는 듯하다. 오른 쪽 해안절벽의 바위들이 범상치 않다. 밀물에 드러나는 바닷가의 널찍한 바위섬은 기묘하다. 하선대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바위다. 하선대는 용왕과 선녀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한 옆으로 먹바우가 외롭게 서 있다. 하선대와 선바우를 오가는 거리는 약 1km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경은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바닷바람이 그리 싫지 않다. 두 눈이 수평선에 묶일 것 같아 가끔씩 눈을 돌린다. 마을과 해안가, 모래해변, 데크가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데크를 걸으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각종 명품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탁 트인 바다와 투명한 풍광이 시원하다. 흥환간이해수욕장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난다. 하얀 파도 속에 거센 소리를 감춘다. 파도의 움직이는 간격에 뒤바뀜이 없다. 과하지 않은 반복이 자연스럽다. 이곳에도 자연의 법칙이 고스란히 머문다. 아픔을 참은 파도가 바람에 하얗게 부서진다.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바다 냄새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호랑이 꼬리, 호미(虎尾)에 서서히 올라탄다. 호미곶 앞바다에 바람이 분다. 겨울 바다가 잔잔하게 웃는다. 여행의 끝에서 기운을 받아 채운다. 범의 꼬리에서 겨울을 마주 한다. 호미력(虎尾力)으로 다시 질주한다. 어떤 폭발적인 힘이 요동친다. 호미곶 광장 호미곶에 초겨울 풍경이 내린다. 바람 안에 겨울이 실려와 내린다. 괭이갈매기가 파란 바다 위로 노닌다. 바람이 바다 너머에서 불어온다. 길 끝에서 해송이 의연히 지킨다. 하루 종일 바람과 시간을 보낸다. 푸른 바다 한 가운데 큰 손이 있다. 육지 광장에도 한 손이 마주한다. 바다엔 왼손, 육지엔 오른손이다. 서로 함께 살자는 상생의 손이다. 사람의 줄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셀카봉 인증샷 행렬도 계속된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추위는 없다. 자연이 내고 거둔 신비로움이다. 장군바위가 한 마을을 호위한다. 수직으로 선 바위가 산을 만든다. 산이 바다를 품어 모양이 바뀐다. 의연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공존의 관계를 분명하게 알린다. 파도가 만든 하얀 포말이 넘실댄다. 맑고 푸른 하늘이 작은 어촌을 감싼다. 초록 소나무와 팽나무 단풍이 바다에 투영돼 조화를 이룬다. 드디어 호미곶 해맞이 공원에 도착한다. '상생의 손'이 서로를 보듬으려 애쓴다. 파도를 따라 옛 추억이 흘러나온다. 맑은 하늘 위로 파란 미소가 지난다. 호미곶 광장에 볼거리가 다양하다. 호미곶등대와 등대박물관·포항바다화석박물관을 비롯, 새천년 불씨 보관함, 이육사 청포도 시비 등이 눈에 띈다. 불씨 보관함에는 3개의 불씨가 있다. 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일몰 불씨, 호미곶 일출 불씨,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섬의 불씨를 동시에 채화해 합쳤다. 2000년에 새천년을 맞으며 만든 불씨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에 적합하다.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라는 뜻이다. 한반도 남단의 동쪽 끝이다. 일출명소로 이미 유명하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움켜쥘 듯한 모양을 가진 조형물은 '상생의 손'이다. 바다 속에서 쑥 내밀고 있다. 물론 광장에도 하나 있다. 매일 아침 어스름해지면 붉은 빛의 해가 차가운 바다를 뚫고 나온다. 하늘도, 구름도 파도도 태양의 빛을 머금기 시작한다. 바다마저 태울 듯 이글거리며 솟는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만드는 시간이다. 때맞춰 갈매기들이 물결치는 파도를 장단 삼아 군무를 펼친다. 춤을 추다 잠시 쉬려고 상생의 손에 내려앉는다. 다섯 개 손가락 모두 갈매기들의 차지가 된다. 마침내 호미곶 일출은 절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일출과 손의 조화가 절묘하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서면 '호미곶해맞이광장'이다. 광장 중앙에 또 하나의 '상생의 손'이 있다. 온 인류가 화합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작품은 바다의 오른손과 땅의 왼손 한 쌍으로 돼 있다. 호미곶 상징은 일출이다. 시간이 지나도 명소 값이 바뀌지 않는다. 실제 호미곶에 서면 확 트인 동해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여기에 상생의 손이 방점을 찍는다. 흐르는 낭만과 꿈이 겨울 추위를 잊게 한다. 상생의 손 옆 바다 쪽으로 쭉 뻗은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 닿기까지 바다 위를 걷는 아슬아슬함을 느낄 수 있다. 찾는 이들을 위해 바닥을 투명유리로 했다. 수려한 바다 풍경을 맘껏 즐기도록 한 설계다. 바다 속 '상생의 손' 조각과 국립등대박물관 또한 풍경이다.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인근 바닷가를 걷는다. 그림엽서 코스에서 새로운 행복을 만난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푸르디푸른 길 위에 서 있다. 작은 포구와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 풍경이 추억으로 남는다. 어선들이 정박한 포구가 평화롭다. 그물 손질하는 어부가 아름답다. 멸치 말리는 아낙의 손길이 바쁘다. 12월 겨울 한낮 산수비경의 호랑이 꼬리 풍경이다. 시간이 지나도 명소의 가치는 변치 않는다. 여전히 여행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호미곶 광장에도 늘 찾는 이들이 많다. 기다란 셀카봉을 들어 사진을 찍는다.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줄지어 얼굴을 내민다. '상생의 손' 조형물 앞은 늘 만원이다. 단순한 바닷가 해안 절벽이 일출 명소 제1의 관광지가 됐다. 오늘도 호미곶 광장은 분주하다. 1,과메기 말리는 풍경 2,멸치 말리는 풍경 3,클린마운틴 단체사진 4,호미곶 전망대 문어조형물 5,명태 말리는 풍경 6,선바위 7,흥환해수욕장 8,흰디기 바위 9,선바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