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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 살아숨쉬는 오지의 문화 - 옥천 명티리, 영동 불당골

금광과 광산 번성했던 그곳엔 새 생명이 움텄다

  • 웹출고시간2011.11.20 19:04: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오지 어느 곳을 가나 산새와 짐승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옥천군 청산면 명티리처럼 도로 한가운데 꿩이 움츠리고 있는 모습을 보기는 흔치 않다. 산골마을인 명티리는 보은군 마로면과 인접해 있다.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의 불당골은 해달 약 700여m에서 자리한 마을로 영화 '집으로'의 배경이 된 곳으로 마을 앞과 뒤, 좌우를 둘러보아도 산과 하늘만 보일뿐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인정이 넘치고 주민들의 순박한 마음씨가 끌리게 한다. 표고버섯 최초의 재배지로도 알려져 있다.

옥천 명티리 마을은 조용하고 아늑하다.

◇꿩이 뛰노는 옥천 명티리

명티리는 팔음산을 등에 지고 보청천의 원류가 되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당초에는 청산현 북면 예곡리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군.면의 폐지 분합에 따라 청산현이 없어지고 옥천군에 소속되면서 북면이 청산면으로 되었으며 이때 예곡리에서 나눠져 명티리가 되었다.

명티리로 불리우게 된 것은 여러자연 마을을 합해 '월명동'의 '명'자와 '척티'의 '티'자를 한자씩 취해 명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 이곳에서 나는 흑연은 질이 매우 좋아 일제시대 '월명광산'이라고 불렀으며 많은 광부들이 모여 흑연을 채굴해 갔다고 전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명티리 광부들이 월급을 받는 발이면 청산장은 물론 옥천장까지 들썩였을 정도로 명티리 광산은 유명했다.

이 마을은 자티, 구르미, 솔중이, 달밝골, 광산 등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팔음산에 대한 향수는 다음과 같은 풍류가 전한다.

'팔음산 꼭대기에 뜬 달은 유난히 밝았고 그 달빛은 계곡물에 비춰줘 한층 더 마을을 밝게 했으리라.

비록 비싼 향나무 목재로 집을 짓고 흥청거렸던 옛 풍경처럼 풍부한 부는 누리지 못하지만 이웃간 서로 아끼고 배려하여 대대손손 화목하고 정으로 살아가는 마을이 되기를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아랫마을인 숫골, 복우실 등에는 꿩과 족제비 등이 도로까지 내려와 점령하고 있을 정도로 고요한 마을이다.

보은군 마로면에서 명티리로 넘어오면 가장 먼저 도로가에 꿩들이 놀라 도망가는 모습을 흔치않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흐른 물은 보청천으로 내려 간다. 보청천은 일곱 개의 수중보와 맑은 물이 갈대숲과 어우러져 피라미와 송사리 등 다량의 토종어류가 서식하며 철새들이 계절따라 찾아와 장관을 이르고 있다.

이곳 보청천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의 서식환경이 우수해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 100선'으로 지정된 곳이다.

보청천의 생태환경은 충북의 100선에 들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표고버섯 최초재배지인 영동 불당골

황간 IC를 나와 민주지산으로 방향을 돌러 가다보면 해발 800m의 도마령이 나온다. 도마령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산위를 상용정(上龍亭)이라는 정자를 볼 수 있다.

도마령은 영동군 상촌면(고자리)와 용화면(조동리)를 이어주는 도로로 각호산(1,178m)와 천만산(943m)사이에 있는 고개로 영화 '집으로'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영동군 상촌면에서 도마령으로 오르는 고갯길은 숨가쁘기만 하다.

도마령은 옛날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상용정이라는 정자는 목구조의 와가 팔각정으로 이익공법으로 시공해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고, 목재는 우리나라 소나무인 적송을 사용했다. 1.8m 높이의 화강암 장초석은 국악의 고장을 상징하는 대금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상용정이라는 이름은 상촌명의 '상'자와 용화면의 '용'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도마령은 매년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 가을 풍경 중 백미로 꼽을 정도로 인기가 높고, 2007년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지역자원 경연대회에서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민주지산 방면으로 내려다 보면 연기가 오르는 마을인 불당골을 볼 수 있다. 해발 700m에 위치한 불당골은 영동에서도 가장 오지중의 오지로 예전에는 차량으로 통행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하나 지금은 영동군이 추진한 산촌마을 개발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산골마을로 1860년부터 화전민이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마을은 불당골과 상말, 중말로 나뉘어 있는데 중말은 1970년대 이농현상과 함께 마을이 없어지고 지금은 집터만 남아있다.


불당골은 마을 뒤 암자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처음에는 대부분의 가구가 골짜기마다 흩어져 화전을 일구고 살았으나 정부에서 난민정착을 위해 주택을 집단이주토록 해 촌락을 이루었다.

상말은 계곡의 가장 윗마을이라하여 상촌 또는 상말이라고 했고 마을 뒤 계곡에 소가 있는데 그곳에 용이 살았다고 해 용소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산제당은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에 마을주민들이 모여 풍년 농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모시는 성스러운 곳이다.

상촌리 마을유래비가 있는 곳은 옛날에 호랑이를 잡기위해 함정을 파놓고 덫을 놓았던 곳으로 함덕골 또는 함도골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마을의 특산품은 호도와 표고버섯 고랭지 채소가 있으며 봄에는 심산계곡에는 고로쇠를 채취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1985년 마을 북동쪽의 도마령을 넘는 상촌과 용화간 도로가 개통되고 1996년 산촌종합 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마을이 발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불당골이 속한 조동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산림청 지정 산촌생태마을로 개발사업이 시작된 곳으로 제주도에서 처음 시도 되었던 표고버섯재배에 이어 육지에서는 처음으로 표고버섯의 재배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표고버섯 최초 재배지'로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생산된 표고버섯은 우수한 질과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마을은 예전에는 금광이 번성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 이 금광들로 마을이 무척 번성했으며 지금도 금광굴, 금광사무실, 금방앗간 터, 창고시설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지금도 이곳은 금자다리(금이나던 곳)라는 지명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예전에는 여섯가구가 이 골짜기에 살다가 지금은 이주해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10분 거리에 있다.

◇약수탕이 있는 원당마을

이곳에서 5분여 아래에는 원당리라는 마을이 있다.

약 550년전 진주강씨가 처음으로 주거하며 토대를 잡았으며 250년전에는 이씨라는 분이 살고 있으면서 과거 급제를 해 고을 원님이 된 이후로 자주 일산대를 들고 출토했다고 전한다. 이 원님이 마을 이름을 '원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앞 산 아래에는 약물탕이라는 샘이 솟아 났는데 그 약효가 영험해 나병까지 나을 정도로 효험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마을 앞 동산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한 도사가 한 집에 찾아와 시주를 부탁했으나 거절하자 마을 앞 동산을 자르면 마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해 그 말을 믿고 동산을 자르자 한 마리의 학이 피를 흘리며 날아갔다고 하며 그 후 한때 마을에는 빈곤한 생활이 이어져 폐허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500년되는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어 영동군에서 지난 1998년 8월 보호수로 지정했다.

/김병학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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