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가스통을 들고 출근하시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박근혜대통령 탄핵시 생겨난 새로운 세대단절 표상이다. 상대방을 헐뜯고 낮춰 부르는, 극단적 사회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문제는 공감적 시대를 일부 사람들끼리 공유하며 세대별 문화로 형성되고 다른 세대에 대한 공격적 방법으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이다. 자신의 세대가 어느 누군가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세대별 모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세대는 한평생을 뜻하는 世와 대신하여 잇는다는 代를 합쳐 부르는 합성어이다. 과거 전통 사회 특히 농경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가족 간 협업이 중시되었고 농토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기 때문에 가족 체계의 역할 중 선조부터 시작되는 가계 서열의 정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가족 간 연령 차이와 후손의 연령 차이에서 서열이 혼탁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그런 혼란 속에도 세대의 정리는 서열 배분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가계 구성에 있어서 수평적 구조가 존재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농토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재산의 분배에 대해 서열이 권한을 갖는 일종의 문화적 관습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척의 체계는 우리 고유문화를 구성하는 가족의 개념이었다. 사회 인간관계의 구성하는 기초단위의 가족이라는 개념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은 끈끈하다. 수많은 명칭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도 어려운 호칭은 내가 부르는 호칭, 남이 부르는 호칭, 남이 나에게 부르는 호칭 등 모두 다르다. 아버지, 어머니쪽의 호칭도 다르니 외국인이라도 된 듯 전혀 새로운 호칭도 많다. '형'을 남에게 말 할때는 '가형', '사백' 등으로 부르는데 남이 나에게 말 할 때는 '백씨장'이나 '백씨'로 불러야 된다. 이렇게 쉽게 사용되는 가까운 '형'의 단어도 새로운 언어마냥 새롭게 느껴질 만큼 호칭은 많고도 어렵다. 세대별 가족간 유대관계가 끈끈하므로 대외적인 안내를 위해 이렇게 어렵게 호칭이 정리된 것이다. 세대의 문화적 유대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며 생활했던 사회적 가치의 공감대로 형성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살던 사람, 6.25 전쟁에 살던 사람, 새마을 시대에 살았던 사람 간 각자의 생활을 통해 느꼈던 감정과 사고는 동시대의 환경을 통해 형성된다. 88올림픽 시대의 사고를 통해서 6.25시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대는 산업화로 변화되는 사회 현상과 함께 빠르게 바뀌기 시작한다. 보통 세대는 한 대를 남기는 것으로 생각되어 보편적 사회의 부모가 아이를 낳고 햇수의 차이로 보는데 미혼도 유행이고 노산이 횡횡한 사회에서 30년의 주기로 세대를 정리하기에는 어렵다. 과거의 부모 자식간의 시대 차이가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의 빠른 발달로 세대 간 주기가 더 급하게 빨라지고 있다. 20년 간격으로 연령층을 세대로 나누기까지 하는 것으로 봐서는 생물학적 주기로 나뉜다기보다 시대의 해석과 반응으로 나누는 것이 더 타당 할 것으로 보인다. 세대의 목적은 다음 세대를 낳고 양육하는 사회현상을 정리하려는 것에 있었겠지만 오늘의 빠른 변화시대에는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가치 공유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렵다. 세대 간 다른 가치관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이해를 하지 않는다면 남이 맞으면 내가 틀려야 하는 이상한 논리에 휩싸이게 된다. 반향실은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의 소리만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들리는 곳이다. 나와 동일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끼리 계속해서 이야기하게되면 메아리도 나와 같은 생각의 이야기만 나오게 되고 그 무리 간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사회현상을 반향실효과라고 한다.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내가 한곳에 매몰되는 우를 극복할 수 있다.
지구에 있는 물건으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방법이 가능할까? 이런 주제의 전시를 수 십년도 더 된 나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있다.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환경을 인간의 관점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분명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을 알았던 순간의 경의로움이 기억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환경의 대재앙이 곧 밀려올 것이라는 공포는 세계의 다양한 징조로 나타난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며 흐르는 강물의 양과 빙벽의 무너짐은 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결과물이라고 한다. 자주 보게 된 빙벽 붕괴는 이제 별다른 경각심을 주지도 못할 만큼 일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듯 위기의 감각은 쉽게 무뎌진다.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수많은 유조선들이 바다를 떠다니고 있고 떠다니는 유조선 만큼 지구에 빨대를 꼽고 석유를 뽑아내고 있다. 땅을 넘어서 바다에서까지 석유를 시추하는 모습이 오히려 에너지 강국의 이미지로 세탁되어 한 국가의 자랑스러운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이와 다르게 바다에 버려진 석유 찌꺼기로 인해 고통받는 갈매기와 바다 인근에 서식 동물의 모습으로 환경오염의 극한 상황을 보여준다. 동일한 물건의 사용방법에 따라 이렇듯 희망의 모습이나 절망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상징이다. 플라스틱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되었다. 원하는 대로 주물러서 만든다는 이 뜻은 석유로 만들어진 원료 알갱이 분자들을 서로 연결하여 고분자로 구성되면 분자의 종류와 결합방법을 통해 다양한 플라스틱으로 조직이 변화된다. 다양하고 편안한 방법의 이 플라스틱의 개발은 생각보다 어이없는 단순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 졌다. 1860년대 미국 상류층에서 당시 당구가 유행했다. 당구공의 주제료인 코끼리 상아는 가격도 비쌌지만 수요를 충당할 방법이 힘들어지자 새로운 당구공의 소재개발에 힘썼다. 당시 1만달러(현재 2억원)라는 상금을 걸고 공모를 했는데 당구공의 대체로 유리, 도자기 등 다양한 소재가 나왔지만 견고성이나 대량 상용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때 개발된 셀룰로이드는 플라스틱 초기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개발된 플라스틱은 다양한 물건 만드는 재료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견고함은 장점을 넘어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까지 진행되었다. 오래 살기로 유명한 거북이는 그냥 보고있어도 무언가 부러움을 주는 동물인데 바다 거북이의 코에 박혀있는 플라스틱 빨대의 모습을 보고 바다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맥주 꾸러미를 엮는 플라스틱 비닐 팩을 몸에 두른 물개의 모습도 자연 생태계와 어울리지 않고 미안스러운 감정을 갖게 하였다. 처음 질문처럼 지구를 오염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오염되었다는 것은 지구가 힘들어 졌다기 보다 지구를 사용하던 인류가 더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과도한 사용으로 별다른 목적 없이 옆에 있던 물고기, 조개, 다양한 생물들이 피해를 공유하는 상황이다. 플라스틱의 발달로 인류가 보다 윤택해진 것은 맞다. 덕분에 나무나 유리그릇이 아닌 쉽게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용기로 편리해졌지만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분해가 어렵다. 이전 플라스틱의 장점인 견고성이 오히려 수많은 쓰레기를 해결 못 하는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익숙했던 사회의 모습이 많이 바뀌고 있다. 값싸게 사 먹던 플라스틱 용기의 생수를 먹고 버리던 패트병 처리가 어렵다. 내용물만 생각했던 과거가 코로나19로 달라진 것이다. 내용물이 비워진 플라스틱은 다른 나라의 쓰레기로 수출되었던 것이고 국가 간 이동제약이 생기므로 쓰레기 처리에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지구를 오염시킬 수는 없을지 모르겠으나 오래 사용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은 코로나19가 인류에게 가르쳐준 또 하나의 상황이다.
독수리처럼 노려보다가 허점을 보이면 속사포같이 쏟아낸다.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과거 행동까지도 끄집어내 그때의 잘못을 따지며 평가를 한다. 나아지는 것이 없다며 끊임없는 가르침을 쏟아낸다. 보통 이렇게 시작되는 잔소리는 남이 듣건 말건 지루한 판소리 한 대목을 하는 듯 이전에도 들어 봄 직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다. 판소리 12마당보다도 긴 끝나지 않는 소리이다. 잔소리는 쓸데없는 일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말을 뜻하기도 하고 반복하며 과거의 일을 들추며 이야기하는 행위를 뜻한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상대방에 대한 충고의 의미도 있겠지만 귀담아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충고의 의미보다는 꾸짖음의 의미가 더 강하다. 들으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상황에서 충고는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분더러 상대방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잔소리를 하는 본인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경우로 보여진다. 그만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잔소리와 함께 삶을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잔소리 대마왕 크산티페와 살았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말이 많고 성미가 고약해서 사람들에게 악처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소크라테스에게 왜 같이 사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런 상황을 말에 비유했다. 말을 잘 타기 위해서는 난폭한 말을 타야 된다는 논리인데 자신이 이런 악처와 사는 것은 세상의 비난을 이겨내기 위한 수행의 과정으로 생각하며 넘겼다. 이를 극복하면 세상에서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목표로 아내를 이용하였다. 소크라테스도 부인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잔소리 극복의 성공담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물레방아 소리도 귀에 익으면 괴롭지 않다." 이 이야기를 짐작 하건데 그의 아내 크산티페의 잔소리도 늘 하던 이야기의 반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얇미운 소크라테스에게 그의 아내는 물을 확 끼얹었지만 이미 삶을 해탈한 소크라테스는 "천둥이 친 다음에는 비가 내리는 법이다."라고 반응하였다고 한다. 성인도 잔소리를 피하기보다 극복하는데 힘을 들였다는 것은 잔소리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이다. 잔소리하는 사람이 고치지 않으면 불가능한 해결책인데 과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넋두리를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 잔소리를 만드는 에너지로 생각된다. 이런 듣기 싫은 잔소리는 동양에서도 공자가 3가지 조심해야 되는 말로 설명하였다. 상황에 적당하지 못한 말을 하게 되는 '실언', 남을 속이기 위해 본 뜻을 감추고 다른 말로 현혹시키는 '교언', 지나치게 많은 군더더기를 더해 말을 하는 '췌언'이 이 3가지 조심해야 되는 말이다. 췌언이 바로 잔소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공자도 이런 류의 이야기는 분명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어는 상대방에게 긍정적 느낌을 전달하고자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적당한 상황에 적당한 단어로 늘여놓아야 훌륭한 언어가 된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며 서로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좋은 대화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안데르센의 동화 중 '썩은 사과와 부부'라는 글에는 바보와 같은 노부부가 나온다. 할아버지는 말을 우유가 나오는 소와 맞바꾸었고, 아내가 다루기 쉽도록 소를 양으로 바꾸고, 그 후에도 계란을 위해 양을 닭으로 바꾸고 썩은 사과라도 알뜰히 다루던 아내 생각에 닭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고 돌아온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하게 되었고 할머니는 본인을 생각하는 할아버지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하게 된다. 잔소리하는 목적에는 서로 간의 감성적 이해에 목적을 둔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예술인의 윤리 의식. 어떠한 좋은 정책도 사용하는 주체의 도덕성을 확보 하지 못하면 사회가 거부하게 된다. 문화와 예술은 오랜 시간동안 인류의 필요로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인류의 유산을 만들기 위해 사회는 문화,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를 주었다. 이것은 문화, 예술가에게도 종교인이나 교육인 처럼 엄격한 도덕적인 잣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문화예술인에게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사회통념 해체에는 관대 하다. 사회통념에 대한 해석과 해체는 작가 개개인에게 자유와 동시에 책임을 주는 행위이다. 작가적 양심에 의한 자체 정화능력이 있어야 행정, 기업과 대등한 관계에서 문화예술의 거래가 가능하다. 대등한 거래를 위한 지역문화예술인의 예술권리를 대변해주는 문화예술행정 부서, 정직한 예술단체가 필요하다. 정직하지 않는다면 예술가를 이용하는 행정과 기업에 의한 수직적 관계형성이 생기므로 장기적으로는 참여 가능한 예술가가 저조할 것이다. 예술 작품은 독창성에 기인한 예술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은 모방을 통한 재창조라고 불리 운다. 재창조의 문제의식을 작가 스스로 이해하고 준비하여 자정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제 3자에게 의미를 전달할 때는 더욱 그러하며 지역 예술계 자정 구조를 만들어야하며 그것은 작가 자체적 윤리의식이 있어야 한다. 예술단체의 윤리의식은 그간 오랜 시간동안 행정의 지원을 받아왔기에 행정에서 요구하는 영수증 처리만 되면 된다는 편의적 윤리 의식을 가졌다. 예산의 바른 집행을 위해 비 영리단체에게 자기분담금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였다. 이로 인해 예술단체 스스로 영수처리를 원하는 대로 하여 행정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행정 예산 시스템이 변화되면 충북예술계는 정직한 단체가 될 수 있다. 문화예술인의 예술인복지사업 참여 유도 방안 문화예술인은 정보에 어두운 사람이 많고 사회와의 소통에 둔감한 경우도 많다. 개인작품을 중심으로 사회관계가 꾸려짐으로 생기는 현상인데 비사회적 경향이 강한 문화예술인을 위해 문화예술인 간 관계망 사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2013년 충북예술인 실태 조사가 단편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문화예술인의 무관심과 행정 관심역시 이끌어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예술 단체를 중심으로만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를 모든 예술가에게 적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미술의 경우 젊은 작가는 단체에 가입안하는 실정이다.(전공에 따라 차이가 크다) 문화예술가 등록의 방법으로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과 같은 행정과 연계 필요가 있으며 이렇게 연결하여야 전수 조사가 가능해지며, 2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질 경우 소득에 의한 분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간 문화예술인 복지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건이 발생된 것은 문화예술인 스스로 서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경기도 문화예술가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수입은 없으나 97%가 넘는 의료보험 가입률을 보였다. 연계 시스템을 이용하여 복지 사각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문화예술인은 스스로를 태워 사회의식에 불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윤리의식을 갖추도록 노력해야하며 제도역시 문화예술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곳곳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 중 문화예술인의 어려움은 너무 쉽게 평가되고 묻혀 진다. 모든 사람이 어렵다고 느끼는 코로나19시대는 과거부터 어려웠던 문화예술인에게 생겨난 고난의 가중치가 된 상황이다. 가장 어려울 때 문화예술로 인류의 극복을 해석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예술가들이 먼저 사회의 윤리와 문화복지의 방법을 제시하면 어떨까?
코로나19로,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움직임을 줄이고 있다. 지출비용을 쓰지 않으면 경제가 순환이 안 돼 경제의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돈을 주어서라도 경제를 억지로 순환되도록 하려 한다. 이렇게 꾸준히 쓸모없는 지출까지도 해오던 습관은 지구의 자원을 아낌없이 쓰게 만들었다. 집안 곳곳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하고 그런 물건을 수납하기 위해 더 큰집으로 계속해서 옮겨가며 살아온 것이다. 사계절이 영향을 끼치는 기후라 다양한 계절에 맞는 옷과 음식이 필요하겠지만 집집마다 가득한 문명의 첨단물건은 백화점 진열대처럼 다채롭다. 음식도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 양쪽 문이 열리는 냉장고의 크기도 못미더워 김치만을 넣거나 냉동만 가능한 냉장고를 별도로 둬 전쟁이 나도 한 달은 음식 걱정 없도록 집에 재어뒀다. 북한은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쏴대고 미국은 돈 더 내 놓으라고 흥정하는 한국의 상황이 불안해서라기 보다는 모아두는 것이 생활화가 돼서다. 코로나19는 현재도 지구 곳곳의 인류 활동을 위축시킨다. 그로인해 한 번 쓰고 구석으로 채워놓을 물건을 개미처럼 열심히 모으는 행동도 잘 못하게 됐다. 음식 수집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덜 하게 됐다.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음식물을 코로나19로 인해 소비 할 수 있게 됐다. 집안 곳곳의 물건과 음식의 활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코로나19가 준 긍정적인 면이다. 호주의 도심을 뛰어가는 캥거루의 사진, 인도 북부 히말리아산에서 150㎞ 떨어진 마을에서 30년 만에 맨 눈으로 바라본 히말리아 산맥, 돌고래와 해파리가 떠다니는 베니스 수로의 모습을 본다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지구를 괴롭혔고 오염 시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의 지침에따라 공장을 멈추게 했고 자동차 운행도 중단 시켰다고 한다. 뉴델리의 대기 오염은 44%가 줄었으며 인도 전역의 대기질도 80% 이상 좋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늘 봄에 찾아오는 황사나 미세먼지의 재난이 거의 없고 가을과 같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분명 원래 있었던 우리의 자연이었는데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 구입과 소비하느라 잊고 지내왔던 일이다. 지구의 생존을 위해 지구를 괴롭히는 인류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구를 어떻게 아껴가며 사용할까에 대한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 진화에 생존에 필요한 곳은 아직까지 지구가 유일하기 때문에 자원을 보다 아껴 사용하여 후대도 사용 가능한 지구를 남겨주어야 한다. 1970년 4월 22일 미국의 상원의원인 게이로 닐슨과 하버드 대학생 데니스 헤이즈에가 지구의 날을 선포했다. 1969년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서의 기름 유출사고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이 갖는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에 대해 경고를 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한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인류 개인의 생활문화 개선을 제안하는 이 행사는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매년 4월 22일 오후 8시부터 10분간 소등 행사를 통해 의식적인 동참을 이끌어 낸다. 실제 10분의 소등 행사를 통해 20만3천t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산다면 성공의 방법이 더 빠를 수 있겠지만 함께 하는 법을 찾기 어렵다. 이번 코로나19사태는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갖게 해줬고 남을 생각해보는 인류애를 느끼게 해준 재난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대규모 재난이 계속 생기겠지만 인류는 이렇게 함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며 진화한다.
4.15 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상적 작동을 하는 곳에서의 정치인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말해준다고 한다. 여전히 막말과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토론회에 등장하고 스스로 상대 후보 말을 못하게 만든 것을 잘했다고 느끼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는 국회의원 후보들을 본다. 정치인의 대중에 대한 인식 수준을 잘 보여준다. 리더는 깃발을 들고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자인데 저리도 매정하게 상대 후보를 대하는 사람이 리더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상대 후보에게 존중이 없는 모습은 나중에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이미 고착화된 혼탁해진 선거판은 남을 윽박지르고 잘못한 점을 부각시켜 자신의 인지도를 올라가게 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가고 있는듯하다. 스스로 무엇을 해결한 우수한 능력보다 상대방의 못난 점을 부각시키는 것에 열중하는 것은 나쁜 것을 더 기억하는 사람의 본성에 충실한 방법이다. 이것이 지속된다면, 잘하는 것 없고 약점 없는 사람들이 대표가 되기 쉽다. 아무 일 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을 일에 충실한 약점 없는 대표를 우리는 원하는 것일까? 정치인은 소속당의 정책에 따라 국민의 편 가르기로 보다 유리한 자신의 위치를 장악하려한다. 아직까지도 냉전시대 아픔이 있는 전쟁세대의 지원을 흡수하기위해 자신과 반대의견이 있는 상대를 종북이라 규정하려는 말도 안 되는 공격을 가한다. 이런 공격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지만 다양한 정보를 통해 자아를 만드는 분류가 아닌 사람들은 쉽게 동화되곤 한다. 이런 양분화 된 이념 논쟁은 오늘날 국제적 상황과 맞지 않으나 여전히 과거 경험을 토대로 상대를 인식하고 공격한다. 좌우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나누는 것은 우리사정에 맞지도 않는데 여전히 대중 방송을 통해 당연한 사실처럼 주장되곤 한다. 좌우의 진영논리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후 국민의회에서 혁명 관계자들은 좌측의자에 앉았고 왕정을 지지하는 쪽은 우측의자에 앉은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방법으로 정리하면 좌측은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 되고 우측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왕정이 사라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우파라면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의가 맞을 텐데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면 오히려 종북 좌파라 규정한다. 오히려 민족주의 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을 통해 정부를 공격하며 우파를 주장한다. 민족주의가 없는 우파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뿐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듯이 국가를 위한다는 우파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통해 한국 정부를 공격하는 일까지도 당연한 듯이 한다. 민족주의는 18세기 이전 일부 세력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을 때 두드러졌다. 국가라는 대상이 민족이라는 단어와 혼용이 되기 시작한 것은 거대 제국의 지배를 막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었다. 공자가 좋은 제국의 건설에 대해 물어볼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지역을 합병해 잘 다스려 달라고 한다고 한다. 그 나라 국민(백성)들은 인근 성인군자가 다스리는 나라에게 쳐들어와 우리를 다스려 주길 간청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쟁 없이도 자연스럽게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에 수없이 많은 작은 나라가 있었고 같은 언어와 생활권에 있었던 고대 국가이기에 가능할 것이지만 민족주의 없는 자칭 보수우파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게 국가를 제공하려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좌파건 우파건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이익을 얻고 대중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사회적 사건의 분노를 이용한다. 민주주의의 국민이라면 자신이 가진 고유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학습해야 한다. 감정에 호소하려는 정치인 농간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극복해야 한다.
현대는 기술과 사회 변화의 속도를 개인이나 집단도 따라가기 어렵다. 집단과 개인의 사회적응은 더욱 어려워지며 이를 통해 개개인간 편차로 집단의 유대관계도 더 어려워진다. 새로운 형태의 집단에 대한 유대 방식 변화가 요구된다. 집단의 유대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효과적 통제의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안정적 통치를 위해 유대의 정의에 대한 공유는 집단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충족 요인이다. 유대를 위한 노력은 산업 구조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 왔다. 농경사회의 필요요소인 집단노동력과 생활습성의 동질감이 산업 사회로 변화되며 큰 변화가 생겼다. 토지를 중심으로 생겨난 농경사회는 이동에 제한을 두고 동일 생활 방식을 통해 동질감을 형성 시켰다. 농경사회의 사회 유대구조는 1인이 만들어 내는 노동력으로는 농작물 생산이 어려운 것에 기인한다. 4개절이 있는 경우 1년 중 농작물 수확이 한차례밖에 이루어 질 수 없고 1년 동안 수확물을 이용하여 생존하려면 보다 많은 경작지가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소수인원이 경작하는 방법보다는 집단 경작하는 것이 보다 유리했다. 경작에 대한 집단 노동은 분배를 통해 정의가 이루어진다. 1년에 한 차례 있는 수확물의 고른 분배가 당시 집단 사회의 주요한 유대를 이루는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보다 산업의 구조가 복잡해지면 분배의 정의도 다시 복잡해진다. 자연에 의지하여 농작물을 재배하게 되면 경작지는 농작물의 생태 습성에 맞추어 일부지역에서만 경작이 가능하다. 보다 유리한 경작지에 대한 소유의 분쟁이 생길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농작물을 일군 땅의 소유가 생긴다면 지주와 소작이 존재하게 된다. 특히 분쟁이 생겼을 경우 어떠한 일도 하지 않고 누가 옳다고 편을 들어주는 판결의 직업도 생겨나게 된다. 일하지 않고 외부에서 경작물을 훔쳐가거나 강탈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런 강탈을 방지하기위한 새로운 용병들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농작물을 재배 생산한 사람들은 땅의 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에게 지주비용을 주어야 하고 분배의 문제가 발생되었을 경우 분배의 정의를 제공해주는 사람에게 비용을 주어야하며, 농작물의 강탈을 막기 위한 용병에게도 급료를 주어야한다. 산업사회의 사회 유대구조도 농경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장을 지은 공장주와 유통을 장악한 유통주는 이러한 것을 산업으로 발달시켰다. 거대한 자본가들과 함께 만들어진 다국적 기업들은 다수노동자들의 일거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기업 유지에 국가를 동원한 다수의 특권을 받는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자본과 국가의 도움은 특정 부류 사람의 지위를 견고하게 해주는 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기업의 출현을 막아내는 또 다른 장벽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미 국가 경제구조는 농경사회였던 산업 사회였던 소수에 의한 지배 구조였다. 미래 사회에서는 부가 부를 부르는 구조로 된다는 것은 이미 수없이 많은 예견들로 증명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인터넷 보급과 함께 거짓으로 판결되었다. 문화는 그 나라의 힘이라 이야기한다. 연속극으로 국민의 정의와 의견을 이해하고 경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학 학과의 통폐합을 이야기해서는 국가미래를 보다 좋은 곳으로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각성은 드라마나 경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서를 통해 자신을 깨닫고 사고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런 국민이 많을수록 미래 정부는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다. 즐겁게 살기위해서는 경제에 대한 이야기보다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살아가는 맛이 날것이다. 결정된 미래에 대한 정보보다는 불확실한 것에 대한 막연함이 더 희망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 간 접촉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더 나아가 나 외의 사람을 병균으로 보고 서로 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선거가 얼마안남아 대민접촉을 지속해 자신을 알려야 하는 정치인 신인들에게는 마땅히 자신을 알릴 기회도 더 어렵게 되었다. 대중매체에 노출되길 원하는 정치인들은 상황이 이러해도 대민접촉을 늘리겠다며 보다 안전한 스킨십을 위해 어색한 인사의 방법을 시도했다. 주먹인사법, 팔꿈치 인사와 같은 악수와 같은 의미지만 다른 형태의 스킨십의 인사방법이다. 미국의 슬램가 B급 인사들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노련한 정치인들은 그럼에도 곳곳이 한다. 정치인의 대다수는 이타적 사회 활동보다는 자신 성공을 위해 개인 노력을 충분히 한사람이다. 학력도 높으며 사법고시를 통과한 법조인이 가장 많은 직업을 차지한다. 남들이 놀 때 허벅지를 찔러가며 노력한 사람들이다. 자신 출세를 위한 개인 활동에 익숙한 사람이 노력 보다 사회를 한탄하는 대다수 일반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생명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것이지만 공인의 역할을 수행하며 공인 입장을 대신하는 것처럼 비추어 지는 사람에게도 개인이 우선시 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물론 다수의 푸념론자도 일반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는 걸 보면 인성은 원래 그런 것인가 하고 생각할일이겠다. 이런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는 고전에서도 다루어 왔다. 맹자도 이런 일에 대해 유자입정(孺子入井)이란 말로 인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젖먹이 아이가 우물에 빠졌다면 구하러 가겠냐는 뜻이다. 맹자의 이야기는 인성에 대한 논의를 풀고자 하는 주제였지만 2007년 영국맨체스터에서 아이가 실재로 연못에 빠졌다. 그리고 경찰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연못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연못에 빠진 사람의 구조법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은 관계로 구조를 거부했고 결국 아이는 익사했다. 이런 큰일이 있었고 누구는 경찰을 탓해야하고 누군 훈련과정에서의 변화가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죽은 아이의 억울함은 아이 호기심 때문이라 몰아붙이기엔 좀 안되었다. 공자도 이런 우물이야기를 했는데 공자와 그의 제자 제아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제아가 "어진 사람은 우물 안에 사람이 빠져있다면 따라 들어가야 하나요?"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는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는 하지만 무턱대고 뛰어들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단순한 동정심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맨체스터경찰이 들었다면 다소 마음의 안정이 갈 것과 같은 공자님의 말씀이다. 균형감이란 상황을 직시한 다음에 행동해야 한다. 흥분하거나 개인감정에 휩쓸리면 쉽게 해결할 일도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감정의 휩쓸림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화하려는 경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에게 까지도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여 자기화 하려 하기도 한다. 대상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행동도 스스로 결정하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젓가락은 상당히 불완전한 식기도구이다. 포크나 숟가락과 같은 동일한 형태가 있다면 그 용도에 맞도록 사용하면 좋지만 젓가락은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젓가락의 사용을 조절해야 한다. 묵과 같은 무른 용도에서는 집기보다는 뜨는 방법으로 사용의 방법도 바꾸어야 한다. 콩과 같은 둥근 재료를 집을 때에는 젓가락의 균형이 중요하다. 여기서 젓가락은 단단히 곧추 서서 움직이지 않고 균형만을 잡는다면 젓가락 두 짝으로 균형 유지가 어렵다. 처음 젓가락을 배울 때 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냐면 흐트러진 균형으로 균형을 맞추는 법을 몰라 더 어려웠던 것이다. 불완전한 균형을 통해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균형이 이루어진다.
현대 사회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으로도 하루 평균 200개의 선택과 결정을 한다. 이렇게 수많은 선택과 결정은 늘 눈만 뜨면 매일 생겨난다. 2004년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가 우리에게 '선택의 역설'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옵션 선택이 가능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시하는 실험을 하였다. 실험자들은 선택이 많아질수록 많은 고민이 발생하였고 실험자는 많은 고민 상황에 불만을 제시하였고 이를 정리한 것이 선택의 역설이다.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은 선택 사항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선택 피로(choice fatigue)'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런 선택에 대한 강요는 선택에 대한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피로하고 쇠약하게 한다. 산업사회가 다양해지고 수많은 산업품들이 발달된 정보통신을 통해 계속해서 광고가 되어가고 또 판매되고 있다. 필요로 의해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통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TV홈 쇼핑의 모습을 보면 확신에 차있는 눈빛과 몸짓으로 물건을 팔고 있다. 선택을 대신 도와주는 역할을 쇼핑호스트가 진행하며 관람자는 이 물건이 당신의 만족을 어떻게 높여 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선택이 다양해지면 좋은 선택으로 이어 질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만족을 떠나 피로에 이르게 된 것을 이용한 판매이다. 그러다 보면 이 물건이 나에게 이렇게 유용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변화되며 손쉽게 버튼을 눌러 물건이 배송된다.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되도록 심리적 조작을 가하는 물건 팔기의 기술이다. 몇몇 사람들은 시킨 물건들을 포장도 뜯지 못한체 집안 곳곳이 쌓여 있다고 한다. 물품구매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며 자신의 경제능력을 넘어서는 물품구매로 중독의 경우까지 가는 것이다. 미래사회에서는 보다 편안한 선택을 제공을 해준다. 나의 취향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AI기술로 선택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주게 되는 것이다. 쇼핑 호스트의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며 무조건 팔려는 모습이 아니라 나의 경제수준과 필요한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꼭 필요한 정도를 측정해주며 구매를 안내하는 것이다. 데이터 나열을 넘어서 자신의 감정과 직접 교류가 되도록 프로그램 되어진 AI기술은 선택과 결정에 대한 피로를 대신 해준다. 이런 기계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편안하고 괜한 에너지 소비를 줄일지는 몰라도 삶이 윤택해지는 것일지는 모를 일이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것이 있다. 선택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이의 선택에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지는 않는다. 성인은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 자신의 신분 위치에 따라 더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사회적으로, 많은 돈으로 그들의 일을 보상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자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의 선택으로 피해가 발생된다면 전문가에게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일은 현재도 어렵다. 의사와 같은 전문 영역의 특수성을 가진 집단의 결정을 일반인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주장하기도 어렵지만 단체끼리 전문가 결정을 방어한다면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미래에는 전문가의 결정도 AI로 쉽게 제공 받을 수 있다.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이 순위에 들어있다. 그들이 가진 전문적 지식을 쉽게 제공 받을 수 있는 세상이 곧 열릴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결정을 개개인에게 전달된다면 결정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는 절대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크로아티아 조선소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신동 모호로비치치(Mohorovicic Andrija)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언어를 구사 할 줄 알았다. 다양한 언어 구사능력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력이 높으며 문화를 다양하게 수용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학습에 대한 지적 호기심 없이는 생겨나기 힘든 기능이다. 모호로비치치는 수학 및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1887년 자그레브에 기상관측소를 설립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지진을 관측 하는데 성공했다. 1909년 모호로비치치는 발칸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을 연구했다. 연구하다보니 지하 30-60km되는 곳에서 지진파의 전파가 증가하는 구간을 발견하게 된다. 불연속면으로 불리우는 그 면은 지진에서 나오는 4개의 파중 P파로 불리는 압축파(종파)를 이용하여 새로운 중간 경계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모호로비치치경계면의 지진파 측정으로 진앙지를 추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진앙의 위치는 물론 지진파의 진행시간까지 계산해냈다. 우리가 두발로 딛고 있으며 500미터,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도 세워놓은 지구 지표면은 단단하고 절대 불변의 지표 같지만 지각의 두께는 생각보다 두껍지 않다. 계란의 껍질과 같이 얇다. 지각의 평균 두께는 35km, 바다의 경우는 5k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빙산이 바닷물에 떠있을 때처럼 위로 솟은 만큼 아래로도 내려가는데 산악지대는 상대적으로 더 두껍다. 그래도 겨우 50km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래는 맨틀이 있다. 모종삽으로 땅을 파다가 문득 지구가 뚫려서 마그마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을 한 적도 있을 만큼 지표는 얇지만 다행이 인간이 구멍을 뚫어 마그마가 솟아나올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어릴 적 과학책을 통해 본 맨틀의 모습은 늘 벌것게 달아올라 있어 뜨거운 액체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움직임이 가능한 고체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그마는 아직 발생 원인도 모를 만큼 지구내부 모습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모호로비치치가 발견한 경계면도 지진 연구에는 엄청난 업적이지만, 인간이 지진을 예측하거나 예방하기위한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 검퓨터 게임에서 최강의 무기로 자연 재해를 유도하는 무기가 있었는데 핵무기를 가진 상대방에게 그것에 준하는 대단한 위력을 가하는 무기였다. 그만큼 자연재해 중 지진이 가진 위력은 짧은 시간이지만 큰 피해를 준다. 큰 피해 중 많은 부분이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 큰 공포를 주는 것이다.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큰 사건이 있었다. 세계최강이라는 미국에게 이란이 미사일을 수 십 발 쏘았다. 2020년 현 세계에서 미국에게 시비를 걸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이란은 과감히 미국에게 미사일을 쏘았다. 인접국가 이라크에 있는 미국 군사기지에 미사일을 쏘았으며 도발할 경우 미 본토까지도 공격하겠다고 위협 하였다. 미국 역시도 최초 전쟁의 발발을 유도했다. 1988년부터 쿠드스군의 사령관이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게임처럼 무인기를 이용하여 미사일로 제거하였다. 정상적 국가의 사령관을 어떠한 양해나 이해를 구하지 않고 멋대로 제거해버렸다. 미국은 미국대로 이란은 이란대로 각자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두 나라의 행동은 주변 나라와 멀리 떨어진 한국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날 때 두려움은 배가 된다. 모호로비치치는 지각과 맨틀이 붙어있다는 일반 생각에서도 두 면의 사이 층을 발견해냈다. 그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통해 대립되는 곳에서 새로운 면을 찾은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대치되는 각자의 정당성에서도 분명 모호면이 있을 것이다. 늘 그렇듯, 어느 누구만이 모든 참을 가질 수는 없다.
"일찍 일어난 벌레는 일찍 먹이가 된다." 일상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어떠한 노력을 해도 본인 자체가 벌레라면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될 뿐이다. 처한 현실극복을 위한 노력도 보다 큰 사회 구조 안에서는 극복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화려하게 치장된 자본 구조에 자본 약자는 나약 할 수밖에 없는 먹이 감이 된다. 그럼에도 사회는 언제나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이 혹시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통제적으로 우리에게 세뇌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스스로 느끼고 분별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의지 없이 표류하는 해파리와 같이 사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 것이었다. 국가라는 것 또한 선택이 아닌 의무를 수반한 무조건적 충성이 있어야 했다. 국가라는 단일 생명체를 위해 많은 부속 중 하나가 되어버린 자아는, 하나하나 아름다운 개체의 모습을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는 일반인을 세뇌 시키는가? 사회에서는 개인의 존재가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믿게 만들고 이로 인하여 서로 간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한다. 서로가 서로를 견고하게 밀착시켜 새로운 사고를 갖거나 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나와 다른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비판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간 다른 것은 = 틀린 것이라는 공식으로 사회를 세뇌시켜왔다.) 이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통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통치를 움직이게 하는 자본과 관계가 있다. 그로인해 보통사람은 보통생각과 보통의 삶을 살며 이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언론과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세뇌시킨다. 결국 지배층은 피지배층간에 서로를 견제 시키며 도덕이라는 족쇄를 서로에게 채워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지배층간 세뇌를 통해 "우린서로 행복해요!"를 외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과연 행복할까?' 종교, 교육, 언론을 통해 누누이 우린 행복에 대해 세뇌되어 왔다. 사회적 평등은 내가 수행 가능한 위치에 머무는 것이 평등한 것이라고 세뇌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적 평등의 원리를 위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행복이라고 정의된다면 분명 안정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안정은 지배층을 위한 안정이고 피 지배층은 행복하다는 세뇌를 당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 개념은 나에서 찾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것에서 찾는다. 참 세련된 행복 법이다. '행복은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누려야 행복하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국가는 이러한 행복을 많은 사람에게 주기위해서 통제한다(?). 다수의 행복을 실현시킨다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의무를 강요하며 보이지 않는 소수 지배층의 완벽한 행복을 실현 시킨다. 더 많은 행복추구를 위해 국가 간 약소국을 식민 국가로 만들어 냈으며 이것을 통한 행복은 지배 국가가 가져갔다. 이것을 우리 삶과 연결시키면 우리가 지금 어떠한 식민적인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누가 행복할까를 생각하면 쉽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할 것이다. 식민 지배를 받는 국민들도 스스로가 행복하다 느낀다. 그들에게 종교, 교육, 언론을 통하여 더 처절한, 더 힘든 약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이로 인하여 '난 행복하구나!'를 세뇌시킨다. 더 비참한 현실을 보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느껴야 하는 행복한 국민이다. 초식 동물들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이 나름 생존의 원리라면 그 생존을 거부하고 무리에서 어떻게 벗어 날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무리에서 이탈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올바르게 볼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무엇인지 극복하는 것에 있다. 극복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국가 간 상대방을 복속시키고 장악을 하기위해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 전쟁이다. 다수의 이념이 포함되어 있는 한 국가 내에서도 이념 강요의 방법으로 무력을 쓰기도 하는데 내전과 같은 양상으로 전쟁이 생기기도 한다. 국가 간이건 국가 내부의 정치적이건 간에 무력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전쟁은 같은 행위이다. 이런 전쟁의 공통점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며 패자의 권리를 승자가 독식하게 되는 불공평한 미래를 영구히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승전한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얻겠지만 전쟁이 장시간 계속 되었다면 승자나 패자 구별 없이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여러 가지 이익을 위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 반복된 경우 전쟁에 이기더라도 어떠한 이익이 되었는지 알기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상대해야 하는 대상끼리도 다양하게 연결돼있어 어느 누구를 공격하고 복속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범위 확정시키기 쉽지 않다. 1943년 11월 카이로 제1차 회담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는 1914년 이래 일본이 점령했던 모든 영토를 빼앗고 한국의 독립보장 선언을 11월 27일 발표하였다. 한국에 대한 내용으로는 일본의 점령지 반환에 대한 지시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얻은 태평양제도의 박탈, 만주·타이완 등의 중국에 대한 반환, 일체의 점령지역으로부터 일본의 반환을 지시한 것이다. 또한 한국에 대한 특별조항을 넣어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것을 결의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남들 보기에도 일본노예상태였던 것으로 보였는데 일본이 근대화를 시켜주었다는 평가를 스스로 하는 학자들은 어느 관점에서 역사를 읽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카이로 회담을 근거로 1945년 포츠담 선언이 작성되고 한국민은 독립을 열망하였다. 그러나 약한 국력의 한국은 지정학적 좋은 위치로 미군과 소련군의 좋은 먹이 감이었다. 1945년 4월 오키나와 본토에 미군이 상륙하게 되고 일본의 전투력 상실로 한국의 국토는 깃발만 꼽으면 되는 손쉬운 국가의 영토였다. 일본은 패전 임박에도 자국이익을 유지하기위해 중국과 화해를 취했지만 실패했고 소련에도 손을 벌렸으나 오히려 소련이 포츠담에서 미, 영국에 폭로하여 뒤로 몰래하던 일본의 공작을 알렸다. 그 후 8월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은 그 와중에도 천황 지위보전을 유지하며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일본을 점령한 것은 미국이었기에 일본에 대한 통치는 미국이 단독으로 지배를 하였고 그러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엉뚱한 한국이 남북으로 나뉘어 분할 점령 되었다. 남은 미국의 통치, 북은 소련을 중심으로 공산 세력의 분할통치가 된 것이다. 남북한은 나뉘어 각각 독립적 활동을 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소련의 반대로 북한은 동조하지 않는 남한 단독으로 1948년 5월10일 총 선거가 실시되고 8월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다. (민족성 없는 자칭 우파의 주장이 이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정부수립일로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일본 하나만 신경 쓰는 것도 벅찬데 가난한 한국을 돌보기에 부담을 느껴 1950년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한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소련은 북한의 김일성에게 막대한 군사적 원조를 통해 전쟁을 실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6월25일 전쟁을 일으킨다. 한국전쟁은 3년이 넘게 지속되다가 1953년 7월27일 종전이 아닌 휴전을 하게 되었다. 미국과 소련, 중공의 이익 분배 요청에 의해 임시로 정지된 것이다. 전쟁은 내가 원하기보다는 이익을 가지려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인해 발생되고 유지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면에는 자신 이익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인간 본질욕구이다. 거대한 전쟁의 목적이나 정의에도 세밀히 살펴보면 개인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지역 문화발전을 일시적 유행이나 현안에 치중하여 진행하다 보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기도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진행되는 일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문화를 다루는 일은 늘 먼 곳을 응시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빠른 시대라서 급하게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따르게 되면, 목표에서 누락 된 일은 필요 없는 일이 되어 지역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화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문화적 목표는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일이므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수정과 보완을 주기적으로 거쳐야 한다. 이런 다양성에 대한 노력은 이미 국제적으로 해야 하는 일로써 만들고 진행되고 있다. 2001년 파리에서 열린 제31차 유네스코 정기 총회에서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을 하게 된다. 국제사회 힘의 균형이 강대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문화 역시도 약소국의 문화는 강한 경제력과 군사적 우위에 있는 강대국의 문화로 흡수되거나 변형되어가는 것을 막기위한 방법이었다. 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에 대한 배려로써 사회보장제도를 사용하는 것처럼 문화에 대해서도 소수의 특수성을 지켜내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문서화 한 것이었다. 사회적 기회의 균등을 통해 스스로 삶의 개척이 가능토록 사회보장제도를 사용하는 것처럼 지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지역문화에 대한 일정한 문화보장제도가 필요하다. 이런 것이 문화다양성 조례로써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지켜보려는 시도이다. 다양한 구성원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정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고 이것이 계속되면 다른 지역과 다른 그 지역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 정해진다. 다양한 방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일지역 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고 이렇게 생겨난 것이 지역성이다. 그러나 이렇게 존중을 하자고 하는 지역의 문화다양성 시도도 지역 내에 문화 불균형으로 결국 대도시와 군소 도시 간 수직적 상하구조로써 나타난다. 이러한 계속 발생될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 해결 방안은 없는것인가? 문화다양성에서 차별 금지에 대한 논의가 심화 되고 있다. 문화다양성조례가 각 지자체별로 시도는 되고 있으나 반대 역시 많이 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문화다양성에 대한 국민분열의 조례라고 한다. 종교적 신념으로 조직적 반대하는 경우는 성별이 남성, 여성으로 나뉘어져야 하는 것을 중성을 존중해주고 나아가서는 중성을 조장하는 조례라고 보고 종교적 신념으로 반대했다. 자신과 다른 종교로써 이슬람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주장한 보수기독교단체가 결국 청주시의 조례를 부결시켰다. 이미 입법이 예정된 조례안 '청주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안'을 청주시의회 상임위에서 부결시킨 것이다. 본인 생각과 다르며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압력을 행세하는 것은 문화다양성의 도시에 걸맞지 않은 것이다. 이와같은 일련의 사례를 순순히 지역에서 받아드려 조례를 없애버리는 것은 문화의 후퇴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역의 논의를 보다 진화시켜 문화다양성을 지켜내야되는 일이다. 종교는 그들이 속한 종교시설에서 표현되어야하는 것이지 종교단체를 넘어서사회로 확장시키려면 사회적 동의를 먼저 얻어야 되는 것이다. 종교가 거대한 구성원들의 숫자로 압력을 행사하고 그 압력에 행정, 정치가 굴복할 경우 억지스러운 일까지도 압력을 가하게될 것이다. 첨예한 주장과 반대의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미래를 만들어 내는 지가 지역문화의 중심 사고축이 되어야한다.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며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이해하는 것은 시민모두가 스스로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단체의 압력에 의해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아닌 깨어있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문화도시 충북, 청주가 가능하다.
가상현실은 언제나 무궁무진하게 즐겁다. 특히 즐거운 것은 잘못되더라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으며 현실로 왔을 때 아무런 피해 없이 되돌아 올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라면 자신의 시간이 좀 사라진 것 말고는 특별히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를 끼치지 아니다. 스마트 폰을 누구든 들고 다니는 요즘, 스마트 폰을 이용한 게임이나 컴퓨터를 통한 게임은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은 어느 곳, 어느 시간이라도 게임접속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녀노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겸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쪼아리며 스마트폰 게임하는 장면을 보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다. 전투 게임 속 장비 개발은 일반과학의 발전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된다. 일반과학의 발전이 전쟁물품과 같은 것보다 느린 것은 전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레인보우6라는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고물 컴퓨터로는 구동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PC방과 같은 곳을 돌며 게임을 하곤 했는데 나중에 컴퓨터 사양이 좋아져 집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로 게임은 일과를 마치고 밤에 하게 된다. 2차원 적인 평면 게임에 익숙하던 나에게는 3차원 화면의 게임은 몰입감을 극대화 시켰으며 음향 볼륨을 높이게 되면 더욱 몰입되어 게임에 임할 수 있었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적을 갑자기 마주하게 되면 진짜 적을 마주한 듯 깜짝 놀라 공격도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이 게임은 상대방과 대전도 가능했기 때문에 규칙적 컴퓨터 프로그램의 적과 달리 불규칙적인 움직임과 전술이 가능했다. 게임 대상이 프로그램화되어있지 않고 만날 때 마다 달라지는 것은 흥미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불규칙적 프로그램 수행은 늘 같은 일이 아닌 늘 새로움을 주기 때문에 동일한 게임을 하더라도 늘 새롭고 다시 생각나게 하여 그 게임을 접속하게 된다. 이런 게임을 넘어서 현실에서도 다양한 국가 간 불규칙한 게임을 만들어 계속 준비한다. 예전 군인들은 총 한 자루 쥐고 전쟁에 임했는지 모르겠으나 요즘은 최첨단 장비로 더 강한 군대를 만들고 있다. 게임에 나오는 야간투시경을 비롯한 적군의 위치를 레이다로 파악하는 장비도 있다. 방탄 복장에 서로신호와 명령을 바로 글로 전달해주는 화면이 달린 고글, 레이저로 표적을 조준하고 맞추는 능력이 일반 총에 비해 3배나 향상된 수퍼 저격총까지 게임에서나 볼법한 전투 기술이 현실화가 되었다. 이런 전쟁관련 장비의 계발은 아직까지도 힘의 우위를 통해 국가 간 분쟁에 해결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구를 파괴하고도 남을 무기가 이미 있음에도 계속하여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혹 모를 외계인 침공을 대비하여 준비하는 것이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막연한 다른 나라 이야기거나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없다. 기껏해야 느껴지는 게임 속 전쟁정도로 죽으면 리스폰이 될 것과 같은 착각 도 든다. 우리가 미국의 주식이 어떻고 영국의 브랙시트로 유럽연합의 어려움이 가속 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전쟁의 직접적인 위기감처럼 먼 곳의 이야기다. 하지만 다 연결되어진 세계의 구조는 과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던 적들처럼 나의 움직임과 행동은 세계의 구조 속에서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가상현실 게임에 들어가 답답하게 움직이던 프로그램처럼 나 또한 답답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은 늘 이익을 극대화 하기위해 시작된다. 가상현실 프로그램도 모의 훈련을 통해 집중적이고 보다 쉬운 방법으로 인간병기를 만들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남이 농사지은 것을 빼앗는 것은 농사짓는 일보다 수월하다. 원시시대부터 늘 남의 것을 빼앗아왔다면 이젠 안 뺏을 만큼 성숙해야할 것이다. 빼앗고 싶다면 그냥 가상현실에서 욕구를 채우기면 보다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충북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 돌 장승처럼 보이는 돌미륵이 있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돌 장승은 각각 암 미륵, 숫 미륵으로 불리는 미륵불이라고 하였다.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4호인 양덕리 동리 미륵불은 장승형 미륵불로 할머니, 할아버지 미륵불로 기록되어 있다. 두 미륵은 3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할아버지 미륵의 모습은 검은 때가 가득 끼어 사나운 인상으로 평지에 있으며 반대편 언덕에 조금 작은 크기의 할머니 미륵은 하얀 화강암으로 보다 순한 인상으로 있다. 그럼에도 크기가 2m의 할아버지 미륵과 1.7m의 할머니 미륵의 모습은 스스로 겸손해 질만큼 위엄이 느껴진다. 미륵보살은 다음 세상에 나타날 미래의 부처를 뜻한다. 고타마 붓다(부처)가 모든 중생을 구원하지 못하였는데 그렇게 구원하지 못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미륵불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처는 자신과 같이 과거에도 진리에 접근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신 이전에 6불(六佛)을 포함하여 과거 7불(過去七佛)이라는 생각과 나아가 연등불(燃燈佛)이라는 최초의 부처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미래에도 자신과 같이 진리를 깨우친 존재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 미래의 부처가 바로 미륵(Maitreya)이다. 세상을 구원하러 나온다는 미륵은 현시대에서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대상이었다. 과거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을 때도 이런 미륵이라는 존재는 필요했다. 대중이 의심치 않고 따르게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을 넘어서 안전한 국가 건설이 가능하였다. 통일신라 후기에 후고구려를 세운 인물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였다. 코미디 프로에 눈을 하나 가리고 나와 자신에게 대들거나 말대꾸를 하는 상대방을 무조건 죽이는 궁예는 자칭 미륵불에 포악한 군주로 기록되었다. 투항한 상대 병사들을 모두 잡아 죽이는 행동 등을 통해 포용할 줄 모르는 독단적 성격이 강조되기도 했다. 궁예는 기록을 통해서도 외눈이다.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47대 헌안왕이나 48대 경문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궁예가 태어났는데 태어난 집 지붕에 무지개가 떴으며 태어났을 때부터 이가 나있는 특이한 아이였다. 이를 이상히 여겨 국가에 해가 될 것이라며 왕에게 그 아이를 죽일 것을 간청했고 왕은 아이를 높은 곳에서 던져 죽이라 명하였다. 아이를 던질 때 유모가 아래에서 몰래 아이를 받다 잘못 받아 아이 눈을 찔러 한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유모 손에 자라던 궁예는 10세에 자신의 역사를 알게 되고 유모를 떠나 스스로 중이 되었다. 신라의 국정이 문란해지고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궁예도 다른 반란군들에 합류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우게 된다. 국가를 세우고 강력한 군사와 영토를 갖게 되자 궁예는 신라에서 유행하던 미륵신앙을 이용하여 자신이 바로 미륵불이라 하며 백성들을 포섭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보면 '선종(善宗, 궁예)이 미륵불을 자칭하며 머리에 금색 모자를 쓰고 몸에 방포를 입었으며 외출할 때에는 항상 백마를 타고 채색 비단으로 말갈기를 장식하고, 동남동녀(童男童女)로 일산과 향화(香花)를 받들게 해 앞에서 인도했으며, 비구(比丘) 200여 명으로 범패(梵唄)를 부르면서 뒤를 따르게 했다.'(삼국사기) 궁예가 금색 모자와 옷을 입고 미륵불처럼 보이게 치장해도 역사는 자신과 다르다고 철퇴로 때려죽이던 모습을 기억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을 갖고 국가가 위기라며, 민중의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며 속세를 버릴 듯이 줄을 서서 머리를 밀고 있는 행동이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하는 궁예의 모습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