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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2.28 14:53:20
  • 최종수정2024.02.28 14:53:20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그림을 그릴 때 최소단위가 점(點)이다. 점들이 모이면 선(線)이 되고, 선들이 모이면 면(面)이 된다. 이처럼 그림은 점-선-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화가의 이름이 김점선(1946-2009)이다. 이름부터 그림을 위해 태어난 듯한 김점선의 그림을 보면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다. 세련되지 않고 어린아이가 담벼락에 낙서한 듯한 평면적인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전시회를 열면 완판되는 비평과 찬사를 한몸에 받는 인기작가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픈 심리가 잠재돼 있고, 그런 세계를 그린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파블로 피카소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린아이는 규칙이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그리고 한계가 없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에는 그 규칙을 깨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12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다고 자신했던 피카소였지만, 천진난만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평생이 걸렸다고 말한 것이다.

필자가 아는 원로작가 한 분은 어린 손자들이 집에 오면 스케치북에 그리고 싶은대로 그림을 맘껏 그리라고 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차용해 어린아이의 자유분방함과 순수함을 작품에 표현한다. 그런 것을 봤을 때 때 묻지 않은 동심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미술과 관련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미술대회 심사 기회가 종종 있다. 그때 그림들을 펼쳐놓고 심사하다 보면 어른들이 상상상하지 못하는 어린이들만의 세계가 표현된 자유롭고 순수한 그림들에 많이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김점선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대학에 들어가려면 고등학교 내내 학원에 다니며 기계적인 실기 공부를 반복해야 미술대학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점선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학에서는 교육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 가서 이론 중심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이와 같이 김점선은 라파엘로같은 규칙(기법)을 익히지 않은 덕분에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림이라는 어떤 형식을 철저히 무시하고, 그 무시를 뛰어넘는 재능과 기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열광하는 것 같다. 김점선의 화풍을 두고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무법(無法)의 필법(筆法)"이라 했고 "난 그의 그림을 보면 거의 무조건 신이 나고 걱정이 없어진다. 일단 그림이 너무도 쉽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처럼 지나치게 철학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아 전혀 골치가 아프지 않기 때문"이라며 '김점선의 광팬'을 자처하고 있다.

이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무법(無法)의 그림을 그린 작가로는 김점선 외에 장욱진, 황창배, 오태학 등이 생각난다. 황창배는 밀가루로는 수제비만 끓이는 것이 아니라 국수도 해 먹고 빵도 해먹는다는 '수제비론'으로 닫혀있던 한국화의 세계를 넘어서기도 했다. 대개 사람들은 어릴 때는 창의력이 뛰어난 훌륭한 미술가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못 그린다. 그것은 나이 들면서 세속의 때가 묻고 그럴듯하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남들이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사는 경우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한 것이다.

김점선은 남의 눈치를 무시하고 그것을 뛰어넘은 천재 작가였다. 그러니 그림이 자유분방한 것으로 꽉 채워져 있고 거침이 없었다. 현대미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아는 척 안 하고, 맛깔스럽게 글 쓰는 능력과 거침없고 귀여운 말솜씨로 배꼽을 잡게 하는 재주가 있던 그는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써 놓은 몇 줄의 글을 읽어보면,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그를 자주 만난듯한 내적 친밀감이 든다. 친구들은 김점선을 과연 어떻게 봤을까?

장영희 서강대 교수는 "김점선은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모습은 터프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고 여리다. 겉은 대범하지만 속은 섬세하고 여리다. 한마디로 그는 그려내는 그림처럼 내 눈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상"이라고 했다. 김용택 시인은 "지루하고 타성에 젖은 우리들의 삶을 파괴해 색이 다른 그림을, 색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신나는 일이다. 김점선의 거침없는 색다른 표현이 나의 일상을 현란하게 수놓아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표현했다.

"꽉 짜여진 틀 속에 법대로만 사는 수녀와 틀을 배반하며 멋대로 사는 자유인 화가는 도무지 안 어울릴 것 같아도 만나면 즐거운 게 신기할 정도지요?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는 것인지…. 돌아서면 이내 보고픈 그리움의 여운으로 자주 못 만나도 우리는 좋은 친구입니다"라고 이해인 수녀는 그를 회고하고 있다.

김점선 화가는 생전에 강남의 한 전시회장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인사들이 어깨에 힘주며 거드름을 피우자 "눈깔이 있으면 보면 되지 뭘 그림을 설명해 달라느냐고,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고르는 것처럼 그냥 마음에 들면 사면 되는 것이지, 기분이 나쁘다"며 부스스한 옷차림으로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 버려 주최측과 사회자를 황당하게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돈만 알고 거만 떨던 양반들을 혐오했던 '호생관 최북(1712-1787)'이 김점선으로 환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2월 말로 33년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내딛는 필자는 김점선과 같은 실력을 구비하고, 남들 눈치 안보고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 자신을 닮은 말을 많이 그리던 김점선은 지난 2009년 63살 되는 해에 많은 팬들을 남겨놓고 야속하게 이 세상 소풍을 끝마친다. 아마 그는 지금 저세상 어디선가에서 야생마를 타고 푸른 초원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말 갈기 같은 뻣뻣한 머리를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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