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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택견 정경화

공격 중심 '별걸이 택견' 복원… "대중화 잠재력 무궁무진"

  • 웹출고시간2009.09.30 16:44:00
  • 최종수정2014.07.20 13:28:55
우리의 고유 무예 가운데 택견이 있다.

굼실~굼실~, 능청~능청~

몸을 앞뒤 좌우로 흔들며 팔로는 이리저리 허공을 휘젖는다.

춤을 추는 것인지 무술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 택견인의 발바닥은 순간적으로 상대방 뺨을 때리기도 하고, 오금을 차서 넘어 뜨리기도 한다.

모든 동작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면서 부드러운 손동작과 재빠른 발기술이 부드러움 속에 강한 타격을 가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무술이다.

주로 발로써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택견에서 걷어찬 다음 후려차기로 얼굴 등을 공격하고 있다.

택견은 발을 움직이는 품밟기(보법)와 팔을 휘젓는 활갯짓, 그리고 손발기술로 이뤄진다.

품밟기는 삼각지점을 번갈아 오가는 것으로 3박자의 한국 고유의 리듬을 타고 있다.

바로자세에서 오른발을 어깨넓이로 자연스럽게 벌려 선 원품, 원품에서 왼발을 반 족장 앞으로 내딪고 몸의 중심을 뒷발에 2/3, 앞발에 1/3을 두는 좌품, 같은 형식으로 오른발을 내딛는 우품이 모든 공격과 방어의 출발점이다.

'활개짓'이란 사전을 보더라도 '걸음을 걸을 때 두 팔을 힘차게 내어 젓는 짓, 또는 새가 두 날개를 치는 짓'이라고 나와 있듯이 택견에서도 두팔을 휘저으며 발의 움직임을 돕는다.

또 품밟기와 함께 활갯짓하면서 상대방을 교란하고 중심을 흐트러뜨리기도 한다.

택견은 주로 발로 상대방을 공격하기 때문에 발 기술(발질)이 매우 중요하다.

발질은 상대방의 무릎, 정강이, 오금 등을 차거나 걸어서 넘어뜨리는 것을 말한다.

택견이 수많은 무술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정도로 전승·보급이 절실하다.

'활개 두 손 옆으로 흔들기'를 하다가 상대가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발바닥으로 상대의 무릎을 차거나 미는 '무릎걸이', 상대의 발목부위를 발등으로 밀어서 때리는 '밭장다리',손바닥이나 손등으로 상대의 목을 밀어냄과 동시에 발등으로 상대의 오음을 거는 '오금걸이' 등 수십 가지가 있다.

발질이 공격 위주의 수단이라면 손 기술(손질)은 방어와 발질의 보조수단으로 사용된다.

두 손 옆으로 흔들며 품밟기를 하다가 먼저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왼손 손아귀를 벌려 '칼잽이'로 상대 목을 밀어내는 '떼밀기', 상대의 목을 잡아 힘껏 끌어 채어 상대의 중심을 잃게 하는 '덜미잽이', 상대의 후려차기 공격을 옆으로 째면서 발을 잡아 낚아채는 '끼어잡기' 등 역시 수십 가지의 기술이 있다.

이런 택견은 4~5세기에 축조된 만주 집안현의 씨름무덤과 춤무덤 등과 같은 고분벽화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2천여 년 전 고구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재물보, 조선상고사, 해동죽지, 조선상식, 조선무사영웅전 등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다.

◇ 종로·왕십리·구리개 계보 이은 신한승 사사

특히 택견 실력이 고려시대에는 무인들의 승진 수단이 되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고, 조선 시대에는 병사를 뽑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으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는 "택견이 중국에 들어가 권법이 되었고, 일본에 건너가 유도의 기술이 되었다"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택견은 우리나라를 넘어 동양의 우수한 무술이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택견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택견이 무술 또는 단오나 백중 등 명절에 모여 행하는 세시풍속놀이로 전승되어 1920년대까지 성행하였으나 일제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철저히 견제되면서 그 원형이 흐려지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전해 온 전통 무예 택견은 고려·조선시대 무인의 승진·선발의 중요 기준이었지만 일제의 말살정책으로 한 때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그래도 구한말 서울에서 민족 고유 무예인 택견을 지키고 있던 유명한 사람으로 성내(城內)에는 종로택견의 임호(1880년 택견 시작·), 성외(城外)에는 왕십리택견의 박털백(1845년 "), 구리개택견의 박무경(1880년 ") 등 3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오늘날 택견의 제1대 명인들로 꼽힌다.

이들 가운데 임호는 송덕기(1893~1987)를, 박털백은 신재영을, 박무경은 김홍식을 각각 제자(제2대 명인)로 두었으며, 특히 송덕기는 다시 신한승을 제자(제3대 명인)로 두었다.

신한승(1928~1987)은 1970년부터 성내(城內)의 송덕기로부터 종로택견을 배우고, 1974년에는 성외(城外) 박털백의 전수자 이경천으로부터 왕십리택견을, 박무경의 전수자 김홍식으로부터 구리개택견을 배워 성내와 성외의 양패를 계승했다.

그 후 신한승은 충주경찰서 수사과장으로 발령받은 부친을 따라 충주에 정착한 뒤 택견의 체계화, 원형보존에 힘써 수많은 무술 가운데 유일하게 택견이 1983년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제 제 76호 택견의 2대 예능보유자 정경화씨

또 이때 송덕기와 신한승은 택견의 초대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로 지정돼 국내 택견의 정통 후계자임을 인정받았다.

이런 신한승의 제자(제4대 명인)로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의 제2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정경화(55) 택견전수관 관장이 충북 충주에 있다.

충주시 교현동에서 태어난 정 관장은 중학교 시절 과도한 입시공부로 건강을 헤쳐 산사에서 요양을 한 뒤 18세 때 라디오에서 신한승 선생의 인터뷰를 듣고 찾아가 사제의 인연을 맺으며 택견을 시작했다.

정 관장이 택견을 택한 것은 평소 민족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건강을 위해 무예를 한 가지 정도는 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택견의 기초인 품밟기와 활갯짓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한 스승의 주마가편(走馬加鞭)을 받아 가며 택견을 익혀 나갔다.

당시는 택견이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고,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을 때라서 수련장이 없어 학교나 절의 마당을 빌려 눈을 쓸고 수련을 해야 했다.

직장이 울산 현대중공업일 때는 매월 몇 차례 씩 충주로 올라와 수련을 했고, 1980년 충주교육청으로 직장을 옮긴 이후로는 스승과 함께 본격적으로 택견의 보급 및 전승활동을 벌여 1995년 제2대 택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 손 중심의 공격적인 '별걸이' 복원

정 관장은 택견의 대중화를 확신하고 있다.

"씨름이 샅바를 잡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기술을 구사하지만 야구처럼 복잡한 규정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경기의 승패와 과정을 즐기듯이 택견도 발질과 손질로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대중 스포츠로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과격한 무술들과 견주어서는 "강한 무예들은 나이가 들수록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가지만 택견은 부드러운 동작과 장력 강화를 위해 복식호흡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오히려 근육과 관절이 부드러워져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제 제 76호 택견의 2대 예능보유자 정경화씨가 활갯짓을 하고 있다.

한편 정 관장은 고인이 된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최근 공격 중심의 '별걸이 택견'을 복원했다.

지금까지의 택견은 수비 중심이고,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서 이기는 활수(活水)에 집중되어 있어 무술계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대중화에도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발 중심, 수비 중심, 지(地) 중심이었던 종래의 '본때 뵈기 택견'(8마당)과 다른 손 중심, 공격 중심, 천(天) 중심의 '별걸이' 8마당을 복원했다.

종래 택견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데 비해 '별걸이'는 직선으로 움직이며 택견도 엄청나게 예리한 살수(殺手)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 관장은 "택견은 어디까지나 활수가 우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난 1983년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만 해도 외로웠던 정 관장은 이제 이수자와 전수생들만 해도 150여명에 달하고, 그들이 배출한 택견인만 전국에 50만명 정도는 된다.

또 전국 16개 시도에 지부가 있고, 미국 덴마크 우즈베키스탄 등 7개국에 해외 지부도 결성돼 있으며, 미국에서는 제1기 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국비로 세워져 국내외 택견의 성지로 자리잡은 충북 충주시 호암동 택견전수관 입구.

정 관장이 있는 충주에는 국비와 지방비 22억원을 들여 넓은 수련장을 갖춘 한옥 양식의 '택견전수관'(정 관장은 전 국내외 택견의 성지라는 의미로 '택견원'이라고 부름)이 1997년 건립돼 상설적인 택견 수련, 연수교육, 택견대회 등 관련 행사를 하는 것은 물론 전국 택견인들의 거점이 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이곳 관장에 위촉된 정 관장은 전수관 운영은 물론 서울대, 경희대 등 대학에서의 강좌 등으로 바쁘다.

또 지난해 충주시립 '택견시연단'을 만들어 벌써 각 지방 향토축제 등에서 100여 차례나 시연을 하도록 지도하는 등 택견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정 관장은 "택견은 국가 문화재이고, 문화재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국민들이 택견으로 정신과 육체를 수양하고, 그 원형이 변질되지 않도록 국가에서도 대학 등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택견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종천 프리랜서

주소 : 충북 충주시 호암동 586 택견전수관
문의전화 : (043) 844-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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