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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용암중학교 교사

한여름밤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부채를 들고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으레 노래를 시켰다. "노래 한 자락 해봐라."

아이들은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동요를 부르기도 했지만, 넉살 좋은 아이들은 '바다가 육지라면'이나 '검은 상처의 블루스'를 천연덕스럽게 불러 열띤 환호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어른들의 타령조 노래들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그 시절 시골마을의 여름밤은 매일이다시피 노래의 향연이 펼쳐졌다. 느티나무 아래가 자연 그대로의 친환경적 노래방이었다.

노래에 '자락'이 있다는 것은 곧 삶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노래에는 생의 애환이 서려 있고, 시정(詩情)과 서사(敍事)가 녹아 있다. 또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에는 삶의 선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나쁜 일을 다짐하는 내용이 있을 리 없다.

젊은 날의 고모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곧잘 산책을 나갔다. 앞 시냇가에 발을 담그거나 둑방 풀밭에 앉아서 나즈막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녀의 감수성이 한창 피어오르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고모는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 고모에게서 처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배웠다. 황혼녘의 시냇가에서 고모가 정미조의 '개여울'을 불러 주었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그 노래를 들으며 어른들만이 가진 비의의 세계를 엿본 것만 같은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서양의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노래의 힘은 대단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선조들의 노래 사랑은 더 각별하지 않았나 싶다. 흔히 우리 민족의 대표적 정서라 할 수 있는 한과 흥을 표출하던 것이 바로 노래였다. 오늘날 텔레비전의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것도 한국인들의 풍부한 감수성을 잘 반영한다 할 수 있겠다.

아이돌 위주의 유행가 순위를 매기던 비교적 단조로운 음악 방송이 소위 '나가수' 이후 다채롭게 바뀐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음악 프로그램은 점차 더 다양한 포맷으로 확장되어 갔지만,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은 경쟁이 필수 요소라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필요 이상의 '가창'이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아주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와 매우 기다려지는 음악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비긴 어게인', 여행과 음악이 결합된 형태의 방송이다.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바쁘게 오가는 이방인들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한다. 그들이 선 자리는 점수와 순위가 매겨지는 경쟁의 무대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음악 하나로 소통하는 자리가 된다. 핏대 세워 고음을 지르지 않아도, 심지어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만 나지막이 읊조리듯 노래를 불러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이방인들이 있다. 시끌시끌하던 아일랜드의 작은 펍에서 이소라가 '문리버~ 넓은 강이여, 어느 날인가 나는 아름다운 그대를 건너가리' 첫 소절을 떼자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쉿 소리를 내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숨소리까지 멎은 듯 이소라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영국 체스터 성당 잔디밭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유희열, 결코 뛰어난 가창은 아니었지만, 일상의 삶을 무심히 영위하듯 담담히 부르는 노래는 편안하고 감미로웠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잔디밭에 그냥 누운 채로 부르던 윤도현의 노래도 서늘한 가을이 앞당겨진 듯 흠뻑 젖어 들게 했다. 물론 이들의 버스킹이 가는 곳마다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것만은 아니다. 차가운 비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몰아치는 이국의 항구에서, 사람들은 그저 바쁘고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쳐 가기도 했다. 단지 몇 사람만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대한민국의 대표격 가수들이 안쓰러워 일행인 노홍철이 눈물을 훔칠 정도로…….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저 함께 편안히 노래해서 좋았다고 한다.

왜 우리들은 노래를 부르고, 들을까. 노래에는 응축된 삶이 있고,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3분 내외의 짧은 드라마로 긴 시간을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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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