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박미선

용암중학교 교사

드물게 찾아오는 충만의 시간이 있다. 지난여름의 여행이 그러했다.

내게는 '오래 가까이 사귄 벗'이란 친구(親舊)의 의미에 그대로 부합되는 두 친구가 있다. 중학교 1학년 열세 살 시절에 만난 친구들과 그동안 가끔 만나왔지만, 이번처럼 다소 긴 여행을 함께 떠나보긴 처음이었다. 40년 전 경주에서의 수학여행 사진 속에서도 우리 셋은 늘 함께였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또래들보다 한 살 어렸던 탓인지 사진 속 우리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고 왜소했다. 오랫동안 앓아 한눈에도 작고 허약한 몸피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 두터운 안경에 수학여행사진 곳곳에서도 한 손에는 늘 수첩을 들고 지적 탐구심이 넘치던 친구, 그 가운데 햇살에 눈부셔 어리버리한 모습의 나…. 우리는 그야말로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고 열 시간을 넘게 날아가 낯설고 벅찬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열흘 넘게 숙식을 같이하다보니 우리는 다시 그 시절의 여중생들이 되어 있었다.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드러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친구들 또한 그때의 버릇, 유머, 감성은 사십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내가 그때 왜 이 친구와 친해졌는지 그 시절의 장면들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수십 년간 묵혀 두었던 익숙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낯선 공간에서 새롭게 발효되는 그 모든 순간들이 충만했다.

가족은 혈연의 숙명적 존재이지만, 친구는 나의 성향과 가치관으로 선택되었기에 그 친연성이 가족과는 또 다르다. 또한 같은 세대로서 동시대를 헤쳐나가는 삶의 동지애가 끈끈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같이 등교하기 위해 우리집 마당 한켠에서 늘 늦어 허둥대던 나를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던 친구, 밤새워 같이 시험공부하며 밥상을 펴놓고 내가 유난히 약했던 수학을 자상히 가르쳐주던 친구, 이제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자식들을 둔 지천명의 나이지만, 우리들만 있다보니 별것 아닌 일에도 그저 웃어대는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버스가 잠시 휴게소에서 쉬어 가는 동안 체코의 시골 들판에서 들꽃을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는 유치함에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모두가 잠든 깊은 한밤중 슬로베니아 시골 마을의 별을 보기 위해 단잠을 포기한 친구, 작은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다 스마트폰을 깨뜨린 친구, 그리하여 그 모든 순간들이 따뜻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침묵이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 여백을 채웠다.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에서 음악시간에 배웠던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함께 나지막이 불렀을 때, 헝가리의 시골 들판을 차창으로 스치며 '일 디보'의 음악과 함께 커피를 마실 때, 그 모든 장면은 생의 완벽함이라 불러도 좋았다.

한때는 사람보다 자연 그 자체가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자연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란 걸 다시 한번 알게 된 여행이었다. 여행의 일정 중 자연의 멋진 경관도 많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남긴 문화유산에 경탄한 적이 더 많았다. 또한 그곳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친절함도 따스한 기억으로 남았다. 보스니아 모스타르 다리 위에서 그 지방의 명물인 다이빙을 구경하려고 사람들 뒤편을 서성거리던 우리들 손을 잡아 끌어 다락같이 높이 자리잡은 자신의 까페로 안내하던 아주머니, 프라하의 작은 골목에서 스스럼없이 다가와 울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며 반갑게 먼저 인사하던 할아버지, 빵을 덤으로 더 주시던 체코 전통 빵 '뜨레드릭' 가게 아저씨, 모두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얼굴들이다.

우리는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친구의 손녀에게 줄 헝가리 전통 아기옷을 샀다. 아들을 일찍 결혼시켜 벌써 유주라 불리우는 세 살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된 터였다. 흰 면옷에 화사한 자수가 놓여 있어 깜찍하고 예뻤다.

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후 친구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가 선물한 헝가리 전통옷을 입고 공원에서 짧은 머리를 나풀거리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어쩐지 어린 소녀들이었던 우리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코끝이 찡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서 세대는 거듭되는 것이겠지.

유주야, 너도 되도록 어렸을 때, 오래 같이 나이 들어갈 친구를 만나면 좋겠구나. 너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의 자라남이 있어 우리의 늙어감이 그닥 섭섭지는 않으려니….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