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버섯 키우는 의자

2024.06.04 14:29:41

김희숙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벨이 울리고 핸드폰 화면에 '엄마'라는 글자가 뜬다. 무심코 수화기를 든다, "엄마! 밥 먹었어?" 수화기 너머 엄마가 더듬거린다. "야! 미안하다." "왜? 뭐가?" 조심스럽게 엄마가 말을 잇는다. "내가 요즘 다리가 떨리고 힘이 없어서 약을 좀 지었어. 그런데 약값을 누가 훔쳐갔다." 혹시 엄마가 착각한 것은 아닌지 차근차근 말해보라 한다. 노치원에 가기 전에 바지 주머니에 분명 50만 원이 있었고, 바지를 갈아입으면서 미처 주머니에서 꺼내지 못하고 차가 오는 바람에 바지를 치우지도 못하고 나갔다 한다. 친정은 시골이라, 대문이며 현관문까지 잠그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외국인들이 농장에서 일을 돕기 때문에 수시로 드나든다. 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그러나 자주 엄마가 깜빡감빡하기 때문에, 온전히 믿지 못하고 엄마에게 한의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한다. 그리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한의원에 돈 보낼게."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오빠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오빠 왈, 바지까지 뒤져서 돈을 훔쳐 갈 사람도 없거니와 엄마가 혼자서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었을 리도 없단다. 혹시 일하는 중국인 소행이 아닐까라고 하자,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란다. 동네 사람들이 반찬을 해서 갖다주면, 사람들이 간 후에 물건이 없어졌다고 해서 사람도 오기를 꺼려한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한의원 전화번호를 불러주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한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받더니 늘 다니던 곳이라 통화를 통해 약을 지어서 택시로 배달하기로 했다고 한다. 엄마를 의심한 것과 어디가 아픈지 살피지 못한 죄책감이 비 온 뒤 쑥처럼 고개를 들었다. 문득 마당귀퉁이에 있는 낡은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다리 한 짝은 없어지고 세 다리로 벽에 기대어 있다. 몸통엔 버섯이 피어있다. 늘 그 자리에 있었기에 난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늘 곁에 있었던 엄마처럼.

월문리 감나무 아래 웅크린 낡은 의자

패이고 긁힌 다리는 거미에게 내주고

가슴엔 구름버섯을 층층이 들여놓았다

먹구름이고 의자에 앉아 먼 하늘 보던 어머니

한 손에 염주 알 쥐고 무엇을 기원했을까

감잎이 빈 의자 위에 독송讀誦처럼 떨어진다

자신을 다 내어주고 한 생을 사는 것은

가슴 속에 손톱달 하나 키우는 일이라서

저무는 서쪽 하늘에 당신을 불러내는데

자식 앞길에 맑은 햇살 기원하던 당신의 자리

의자가 소리 없이 구름 경전을 키우고

삐거덕, 바람 한 올이 살며시 내려앉는다

-김나비, 「구름버섯 키우는 의자」전문

한의원에 돈을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다음에는 나에게 아프면 전화해. 약을 진맥을 하고 지어야지. 전화로 해서 돼? 내가 엄마 모시고 가서 좋은 약으로 지어줄게."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한 건 나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어디가 아픈지, 뭐가 필요한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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