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과 절망 사이

2020.05.03 15:10:28

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오늘 아침, 너는 또 기습 폭설처럼 내 머릿속에 내린다.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뾰족하게 나를 후려친다.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그 허허벌판 낯선 곳에서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어떻게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모질 수가 있을까. 내 마음속 어디에 이런 야멸참이 숨어있었을까. 이 느닷없는 이별을 너는 잘 견디고 있을까. 너를 그 찬바람 속에 버려두고도 나는 여전히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하루를 산다. 너는 속절없이 나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긴 기다림이 미움으로 변했겠지. 이렇게 모진 나를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말아라. 난 너에게 죄인이다. 다음 생엔 멋지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그래서 나 같은 것은 무참히 버리고 짓밟거라. 나 기꺼이 너의 단죄를 달게 받으리라. 미안하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미안해서 입을 뗄 수가 없다.

눈송이 같은 하얀 꽃잎이 지붕 위로 분분히 떨어진다. 다시 나부끼는 꽃을 보고 있자니 걱정과 불안이 또 꽃잎을 타고 일렁인다. 그날 이후 너는 지는 꽃잎처럼 바람을 타고 수시로 내 머릿속에 나부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너의 얼굴이 떠오르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까지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너.

삼 년이었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삼 년 동안 너와 나는 한 침대를 쓰고 한 이불을 덮고 살았다. 내 팔을 베고 모로 누워서 그 까만 눈을 깜박이며 나를 보던 너. 너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앉아있으면 내 다리에 몸을 누이고 지그시 눈을 감던 너. 어느 날 느닷없이 내가 너를 버리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영문도 모르고 낯선 곳에 버려진 너는 맨붕 상태에서 속울음을 삼키고 있지 않을까.

작년 가을 어느 날 아래층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조심하겠노라 말을 했다. 매트를 사서 깔았다. 그런데 매트를 다 물어뜯어 놓고, 다시 뛰는 너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주말이면 시골에 데리고 가서 스트레스를 풀라고 마당에 내어 놓았다. 신나게 뛰어놀고 풀도 뜯어 먹고 햇살도 쪼이면서 즐거운 주말을 보내던 너. 그러나 주중이 문제였다. 출근해야 하는 나는 아파트에 너를 데리고 와서 더 이상 뛰지 못하도록 방안에 가두어 놓았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마당 있는 집에 너를 입양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수소문 끝에 음성에 있는 한 농가에서 너를 키워주겠다고 했다. 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래층에서는 수시로 쫓아오고 나는 머리를 수시로 조아렸고,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 날이 따듯할 때 너를 보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만우절, 거짓말처럼 너를 그곳에 두고 돌아왔다. 철망으로 된 우리에 너를 넣고 네가 쓰던 이불과 밥그릇 물그릇도 함께 들여보냈다. 철망을 사이에 두고 절망으로 번지는 가슴을 안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새로 깐 듯한 지푸라기를 코로 연신 들추며 땅을 파고 있었다. 뒤돌아 오는데 하염없는 눈물이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내 뇌리에 기습적으로 너는 찾아오곤 한다.

너를 보낸 날은 따듯했다. 그러나 그 후 날씨가 맵차게 변했다. 조석으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칼바람을 몸으로 맞으며, 너무 일찍 보냈다는 생각에 가슴을 드릴로 후비는 것 같았다. 옥조이는 죄책감에 핸드폰을 열었다. 수 없는 망설임 끝에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음성이 넘실거렸다. 너를 맡아준 농부였다. "꾸꾸 엄마인데요." 다행히 아저씨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보냈으면 나를 믿고 맡기셔야죠!"라고 내게 화를 낼까 봐 조심스러웠다. 잘 지낸단다. 다 적응하게 되어있다고 걱정하지 말라 한다. 아침에 나가보며 지푸라기 속에 푹 들어가서 자고 있다고 한다. 돼지는 돼지답게 살아야 한다고 나를 다독인다.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다음에 한 번 보러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다. 이제 꽃잎을 보고 가슴 저려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수시로 찾아드는 네 걱정에 나는 오늘도 미안하다 미안하다. 잘 살길. 내 사랑 꾸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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