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걷는 계절

2024.01.09 15:42:26

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구급차가 왔다고 한다. 저혈당에 코로나까지 겹쳐 쓰러지셨단다. 간 김에 MRI도 찍고 CT 촬영도 하고 지금은 링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느닷없이 올케의 전화가 왔다. 응급실인데 어찌하면 좋겠냐고. 이번 생신에는 그냥 내려오지 말라고. 예약한 고기와 떡을 찾아서 저녁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당장 가겠다고 했다. 퇴원을 못 할 상황이라도 가봐야 하는 게 맞고, 퇴원할 상황이라도 가서 생신상을 차려 드리는 게 맞다고 입을 열었다. 아흔, 내일 당장 눈을 감으신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다음이란 없다. 가는 도중, 오빠에게 전화가 온다. 이제 안정이 되었고, 퇴원 수속을 하고 있다고. '엄마'라고 가만히 발음해 본다. 뭔가 더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입술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 번 더 발음해 본다.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마른 대추처럼 쪼그라든 엄마 모습이 떠오르며 명치가 아려온다. 최근에는 정신도 오락가락한 듯 요양보호사를 도둑으로 몰았단다. 집에 있는 옷이 자꾸 없어지고 담금주가 사라진다고 의심했다고 한다. 몇 명의 요양보호사가 바뀐 후 엄마는 아무도 오지 말라고 소리 질렀고, 요양보호사들 사이에도 소문이 돌아 친정집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그 후 오빠가 마다리로 와서 돌보고 있지만, 증상은 호전될 기미가 없다. 어둠을 뚫고 도착한 친정은 영혼이 털린 몸처럼 불이 꺼져 있다.

베란다에 던져놓은 양파에 싹이 났다

연초록 긴 빨대를 몸 위에 꽂고 누워

짓무른 시간 속에서 거친 숨을 삭힌다

살점을 벗길 때마다 젊은 날이 둥글게 진다

손끝에 비린 향은 노모의 아린 눈빛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거미줄처럼 진득하다

창가에 노을빛이 얼룩져 쿨럭이고

번져가는 지난날이 검붉게 멀어질 때

당신은 얇은 몸으로 두꺼운 겨울을 건넌다

─ 김나비, 「뒤로 걷는 계절-치매」전문 (시집 혼인 비행)

쌀을 씻고 미역국을 끓이고 당면을 물에 불린다. 밖이 소란하다. 엄마가 올케와 조카의 부축을 받으며 현관문으로 들어선다. 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김치를 가위로 잘게 조각내서 쟁반에 놓는다. 거실에 있는 환자용 침대에 엄마를 부축해서 앉히고 죽을 드린다. 달게 잡수신다. "방학했냐?" 묻는 것이 지금은 정신이 들어온 것 같다. 죽을 자시고 딸기를 입에 넣으며 또 물으신다. "언제 방학하냐?" 난 아까 했던 대답을 반복한다. 엄마는 경로당에 먹을 것을 갖다 주어야 한다는 말을 몇 번 되풀이한다. 노인들이 당신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나는 내일 아침에 음식을 장만해서 점심상을 차려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한참 동안 멍하니 티브이를 쳐다보다 애들은 왜 안 왔냐고 묻더니 어느새 코를 고는 엄마. 이불을 끌어다 목까지 덮어 준다. 이젠 아기가 되어버린 나의 엄마. 얼마나 더 당신을 볼 수 있을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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