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나라

2019.01.20 20:02:11

김나비

시인, 원봉초등학교병설유교사

18년 동안 세상과 차단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 속으로 나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상황이 내게 벌어졌다고 가정을 해 본다. 머릿속이 바글거리는 개미떼처럼 복잡해진다. 나는 오년 전 일 년 동안 학습 연구년을 하면서 출근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일 년이 지나고 직장에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전자문서 시스템도, 동료들도, 업무처리 방식도. 변한 것들이 일 년 만에 돌아온 나를 뒤뚱거리게 했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느라 6개월은 헤맸던 것 같다. 그런데 18년이라니. 그것도 사회와 완전 격리된 상태에서. 그런 날 들이 내게 닥친다면 난 사회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 영화를 봤다. 중증 발달장애(자폐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혜정이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항상 붙어서 도움을 줘야 하는 혜정은 가족이 있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경제활동을 하고 학업을 이어가야하는 등 사정이 있기 때문에 적당한 돌봄을 받을 수 없었다. 13살에 어쩔 수 없이 가족에 의해 사회에서 격리된 채 18년간 산 속 시설에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이 된 언니가 혜정이의 탈 시설을 지원한다. 언니와 함께 살게 된 혜정이의 좌충우돌 사회 적응기이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대 감금 시설이 건립되기도 했었다. 사회의 일탈 주변부 계층에 소속된 사람들을 가두어 수용하는 대 감금 시설은 경제적인 고려 외에, 부르주아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와 윤리를 효과적으로 확대 재생산 하기 위해 국가가 정책적으로 만들고 강금했다. 21세기인 지금은 무력으로 누군가를 가두지는 않는다. 그러나 돌볼 여건이 안 되는 사회는 그 시대의 감금시설과 다를 것이 없다. 여건이 안 되는 가족들 스스로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보낸다. 시설은 어찌 보면 장애를 가진 가족들에게 필수불가결의 요소일지 모른다. 그러나 격리된 사람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다. 장애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장애로 인한 돌봄의 책임을 가정으로만 미루어서는 안될 일이다. 스웨덴은 정부주도로 장애인 시설을 폐쇄해서, 20년 째 시설이 없이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포용하고 돌볼 시스템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을 불편한 대상이 아닌 함께 가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을 돌보면서 가족이 자기의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나 국가에서 시스템을 갖춰서 서로 돌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돌봄 서비스를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그래서 가족들에게 그들이 짐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기 전 까지 나는 장애인들의 삶이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거의 없다. 혜정이는 모든 것을 통제받으며 생활을 해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어떤 일을 해도 제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안돼'라는 말을 듣고 살았던 혜정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른, 어른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자란 사람'이다. 그러나 몸집만 자랐다고 어른은 아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과연 어른인가. 우리 사회에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런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불편하지만 함께 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 그것을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어른이 된 사회일 것이다. 어른의 나라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어른으로 불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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