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2024.09.09 16:23:57

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2학기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본 막심이 물었다. "나비, 김나비! 어디 갔다 왔어?" 러시아에서 온 막심은 한국말에 서투르다. 말은 서투르지만 마음은 한국 아이들 못지않게 따듯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경어를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형이나 누나에게도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낸다.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연수도 받고 공부도 하고 왔어요."라고 하자 내 팔에 뽀뽀하며 보고 싶었다고 이젠 가지 말라고 한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방학 동안 방과 후 과정을 신청했던 막심은 내가 보이지 않자, 방학 중 방과 후 교사에게 김나비 선생님 언제 오는지를 묻곤 했단다. 열 밤 자면 온다고 하자 매일 아침 손가락으로 꼽으며 열 밤이 지났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Привет(안녕)?" 이라고 인사를 하며 그들을 맞았다. 아이들도 "Привет?" 하고 대답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빅토리아, 아르만, 소피아, 리엔, 알렉산더, 알렉산드리아, 아르텸, 뽈리나… 모두 건강하게 방학을 보내고 등원했다. 아이들과 인사하는 사이 학급 단톡이 톡톡 울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가방에 약이 있다. 점심 먹고 한 컵 하자" 이 말은 가방에 약이 있으니 점심 식사 후 먹게 해달라는 것이다. "오늘 태권도 차로 아이를 배달해 주세요." 이것은 태권도 학원 차가 아이를 태우러 올 것이니 그 차에 보내면 된다는 내용이다. "내일 학교에 오지 않을 거에요. 우리 치과에 가자." 이 말은 내일은 치과에 가야 하므로 등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문자에 당황하였으나 2년 차 외국인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제 외국인 학부모들과도 눈치코치로 의사소통하고 있다.

아이들과 방학 동안 지낸 이야기를 손짓 발짓 심지어 몸짓까지 동원해서 나눈 후, 운동장을 산책하고 놀이터를 돌아보고 텃밭으로 향했다. 급식실 뒤쪽에 있는 텃밭은 점심을 먹기 전 늘 둘러보는 곳이다. 그곳엔 각자의 방울토마토가 있다. 그런데 시들시들 상태가 영 좋지 않다. 그것은 봄에 심었고 여름 방학 전까지 매일 관찰을 했었다. 줄기가 자라는 과정, 꽃이 피는 모습, 열매가 달리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웃고 환호하며 공감하고 즐거움을 나눠 가졌었다. 붉게 열매를 따서 모양과 색깔을 관찰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맛을 보고 또 단면을 잘라보고 이야기 나누기도 해 보았으며 그림도 그려보고 몇 개인지 세어보고 따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오기 전 마지막 수확을 해서 각자의 집으로 가져갔었다.

우리는 시든 토마토 대신 이번에는 무엇을 심을까 의논했다. 당근, 파, 무, 배추 등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다수결에 따라 무를 심기로 했다. 아마도 '커다란 무'라는 동화를 들었던 즐거운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 같았다. 며칠 후 모종삽과 무 모종을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모종삽을 든 아이들이 고랑에 쪼르르 앉았다. 난 모종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포트에서 뽑아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이랑에 구멍을 파고 어린싹을 넣고 흙을 토닥토닥 덮어 주었다. 그리고 다같이 입을 모았다. "쑥쑥 자라거라 무야!" 한 학기도 푸르게 건너길 기원하며 나도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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