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이는 저녁

2019.09.15 14:49:56

김나비

시인, 주성초병설유치원교사

 "자신과 교감하는 법은 사막을 홀로 헤맨다고 깨닫게 되는 게 아냐!" 영화의 대사를 듣는 순간 가슴을 예리한 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았다. 내성적이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혼자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밥도 잘 먹는다. 그런다고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허리케인처럼 나를 강타한다. 그럴 것이다. 홀로 내가 찾아진다면 나는 골백번도 나를 찾아 교감을 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있는 시간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교감하며 나를 찾아가는 법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리라.

 북클럽이라는 영화를 봤다. 60대 소녀(?)들이 새로 쓰는 인생이야기다. 60대라고 하면 누구나 인생을 정리할 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새로운 삶에 두근거리고 있다. 그녀들은 40년 동안 우정을 쌓아온 독서 모임 친구다. 그녀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았을 때 성공한 삶은 아니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잊고 살았던 내면의 욕구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사회적인 바람이 아니라, 개인적인 바람을 갖고 삶을 바라본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두근거리는 삶을 시작하려 노력한다. 어떤 것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나이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설렘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호기심 많고 겁도 많은 소녀 감성인 다이앤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산다. 호텔을 운영하며 성공한 삶을 사는 비비안은 연애만 하는 미혼이다. 연방법원 판사인 섀론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남편과 이혼하고 고양이와 산다. 캐롤은 레스토랑 운영과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 두 가지 목표 모두 이뤘지만, 남편과 부부생활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속사정이 있다. 이런 60대 소녀 4인방이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의 전반적으로 흐르는 메시지는 '누구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삶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라'이다. 육체가 늙었다고 마음도 늙는 것은 아니리라. 육체 나이가 몇 살이건 누구나 소녀로 살 수 있다. 누구나 마음속엔 초록이 무성할 테니까.

 내 인생을 가만히 뒤돌아본다. 과연 나는 내 마음의 물결이 흐르는 대로 살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가끔은 아니다"이다. 사회적인 대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았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홀로 사막을 헤맨 것은 아닐까. 나만의 사막에 고립되어 산 것은 아닐까. 자신과 교감하는 법은 사막을 홀로 헤맨다고 깨닫게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사막을 헤매도 누군가와 함께 헤맨다면 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까. 인생의 황혼에서 과연 내 곁에 남아줄 친구는 누구일까.

 나도 그녀들처럼 독서 토론 모임을 몇 개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단지 내 지식을 확장하는 조력자로 생각했지 친구로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그들에게 진심을 담은 눈빛을 보낸 기억이 없다. 한 달에 한 번 만나 생각을 열어 보이며 토론하고 내 생각의 주름을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로만 여겨왔다. 그 시간을 돌아보니 후회가 저녁 그림자처럼 길어진다. 훗날 누가 내 곁에 남아줄까를 고민하지 말고 내가 누군가의 곁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는 생각이 아닐까. 이제 사막을 헤매도 누군가의 옷자락을 잡고 헤매리라. 고비에서 만났던 까끌까끌한 모래가 서걱이며 명치에 쌓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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