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2023.03.07 15:51:16

김나비

시인·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변화는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올해는 내 생에 많은 변화가 감지된다. 지역 만기가 되어 임지를 옮겨야 한다. 새 부임지는 집에서 거리가 제법 있다.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한다. 게다가 다문화 정책학교에 소규모 중심유치원에 특수교사가 없는 통합학급이라 특수교사 역할도 해야 한단다. 나도 모르게 두려움의 싹이 튼다. 꿈은 무의식의 표현이라 했던가. 요즘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자주 꿈을 꾼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고라니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천진하게 쳐다보고 있다. 까만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차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브레이크 페달을 있는 힘껏 밟는다. 뒷좌석의 물건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귓속으로 달려든다. 순간 나는 핸들에 머리를 묻고 눈을 꼭 감는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며 살며시 눈을 뜬다. 그때 고라니가 뛰기 시작한다. 차 앞으로 난 도로를 겅중겅중 달리고 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라니 뒷모습에 오래도록 시선을 던진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 멀어져 가는 고라니를 한동안 바라보다 벌떡 일어난다. 꿈이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잠을 청한다. 이번엔 온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나는 홀로 길을 잃고 눈발 속을 맨발로 걷고 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눈이 내리고 눈에 덮인 길은 길인지 들판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한참을 서성이고 있는데, 설산 속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하늘엔 어둠을 찢고 나온 반달이 희끄무레하게 떠 있고 별빛은 두근두근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놓여있는 물을 마신다. 더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꿈을 곱씹다 컴퓨터를 켠다. 내내 고라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종일 도로 위에서 서성이는 작은 고라니가 된다.

야음을 틈타 허기 지우려던 걸음이 / 눈발 날리는 도로에 널브러진다 // 부릅뜬 눈에 / 달빛이 소름처럼 내려앉는다 / 도로가 훅훅 / 고라니의 식어가는 숨을 삼키고 / 밤은 검은 손을 뻗어 글썽이는 살갗을 더듬는다 // 난생 처음 등을 깔고 누워 바라본 하늘 / 단단한 어둠을 찢고 나온 쪼개진 반달이 검은 눈에 박히고 / 자작나무 그늘 속에서 튀어 오른 부엉이 울음소리 / 할딱이는 몸을 휘감고 맴돈다 // 널린 몸통에서 / 새어 나오는 붉은 실타래를 / 솜털 쌓인 도로가 빨갛게 받아먹는다 // 밤새 눈발이 중얼중얼 잠꼬대처럼 내리고 / 허기진 도로는 뜨거운 피를 삼킬 때 / 여린 숨은 하얗게 지워진 꿈을 꾼다

-김나비 「도로 위의 잠」전문

문득 그 어둠 속의 고라니가 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거친 시간을 건너며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아니, 지금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진정 나의 길인가? 그 밤의 어두운 도로에서 갈길 몰라 서성이던 고라니처럼 지금도 나는 내 인생의 길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길을 걸은 적이 있었는가? 이 길은 지금 맞는 길인가? 내가 가는 길이 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험난한 길일지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올 한해 절망을 희망으로 옮기는 따스한 날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 내 모든 두려움이 기우였다고 미소짓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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