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2019.12.08 15:00:58

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인연과보를 알면 조급해질 이유가 없다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한 해를 돌아본다.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은 그 원인이 작용하는 조건이고 원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과보(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로 지지면 즉시 뜨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는 6월이지만 기온이 가장 더운 때는 8월이다. 이렇게 모든 일에는 원인 있으면 결과가 있지만, 6월과 8월처럼 시차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편해하지 않아도 반드시 그 결과는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이다. 불완전하기에 완전을 추구하며 하루하루 흔들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를 놓고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긴장을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그에 걸맞은 결과를 얻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좋지 않을 경우는 적잖은 실망감을 느낀다. 어떤 때는 자괴감에 홀로 몸을 뒤척이며 어둠을 말리기도 한다. 이는 내가 인연과보를 간과했기 때문이리라. 꼭 원인과 결과가 눈에 보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리석은 중생이기 때문이리라. 인연과보의 시차를 알았더라면 좀 더 여유 있는 맘을 가질 수 있었까. 아득한 절망이 고요처럼 깔린 한 밤에 깨어 어깨를 들썩이는 일이 없었을까.

몇 년간 써온 원고를 정리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한편으로는 후련하면서 한편으로는 풍랑 속을 떠도는 돛단배가 된 기분이다. 오랜 시간 공들인 글자들이 내 손에서 멀어지고 난 후, 오히려 불안감이 몰려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는 시집보낸 딸이 잘 살길 바라는 부모 마음과 같을 것이다. 출판사의 기획 의도와 잘 맞을지, 디자인은 잘 나올지, 또 출판해 놓고 나서 반응은 어떨지, 모든 것이 걱정이다. 이왕이면 좋은 출판사에 깔끔한 디자인으로 출판하고 싶은 욕심, 이왕이면 좋은 평을 받았으면 하는 욕심들이 머릿속에 치어처럼 바글거린다.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욕망을 누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떠올려 본다. 일렁이는 내 마음속의 물결을 가만히 쳐다본다. 나는 얼마나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내려놓고 자유로워지자고 나를 다독인다. 그러나 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바로 서기를 반복하듯 마음속이 펄럭인다. 애써 살지 않기로 해 놓고도 난 그것을 또 잊어버렸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글들은 나의 손을 떠났다. 어디에서 출판이 되든 독자들의 반응이 어떻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 아닌가. 난 원인을 제공했고 출판사에서는 그 원인이 작용하는 조건에 맞추어 책을 만들어 줄 것이고 원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리니. 잘못된 문장을 고치면 되지만 쓰지 않은 문장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새기며 하루하루 나의 길을 가면 그만인 것을.

봄에 씨를 뿌려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열매가 익듯이 그렇게 삶도 익어 가리라. 어떤 열매가 오든 그것은 본인의 책임이리라. 어떤 여름을 보냈느냐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리라. 최선의 원인과 조건을 결합하게 했다면 그 결과는 언젠가는 나타나리니. 그 열매가 당장 익지 않더라도 원인 행위를 했다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결과에 자족하면 그뿐인 것을.

바람이 몇 개 남지 않는 나뭇잎을 세차게 후려치고 있다. 애써 가지를 붙들고 온몸을 떨던 나뭇잎이 스스로 손을 놓고 허공으로 난다. 가볍게 유영하는 나뭇잎이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행복 하고자 한다면 욕망의 양을 줄이라 했던가. 올겨울 자유롭게 날고 싶다. 한마터면 너무 애쓰며 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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