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속에서

2024.08.06 14:45:01

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이루마의 'indigo'를 들으며, 일인용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밖을 보며 먹을 수 있도록 식탁을 창 앞에 놓았다. 창밖엔 적막에 쌓인 맹렬한 여름이 녹음을 우려내고 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긴 손가락 뻗어 내 머리칼을 쓸어 준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맞는 혼자만의 시간인가. 6시간을 달려 섬에 당도한 뒤 맛보는 고독이 주는 황홀함이 좋다. 나는 늘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찬으로 삼아 밥을 먹었다. 특수아가 바닥에 뒹굴기라도 하면 그날 점심은 없다. 먹던 숟가락을 놓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교실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 오늘은 나 혼자 먹는 점심이다. 찬은 필요 없다. 고요가 찬이다. 혼자 밥을 먹으면 독해진다는 데, 혼자 먹는 밥이 좋으니 난 독한 사람인가 보다. 오늘은 나만 돌보면 된다는 사실에 깃털이 된다.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것, 누군가를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지만 동시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함께하는 일임을 새삼 느낀다. 그동안의 일들이 아득하게 밀려온다.

며칠 전까지 나는 빽빽한 아이들 틈에 있었다. 아이들이 거는 은근한 최면에 걸려 히죽거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9명의 외국인 아이들과 3명의 다문화 아이들을 대면했다. 그들은 햇살처럼 웃으며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예뻐요!"를 연발했다. 내가 예쁠 나이가 아님을 알지만,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자유선택활동 시간에 아이들은 꽃을 그려서 투명 테이프로 붙인 후 내 앞가슴에 주렁주렁 달아줬다. 그리고 수시로 손 하트를 만들며 "사랑해요!"라고 했다. 바깥놀이 시간에는 그네나 미끄럼을 타다가도 수시로 달려와 내 팔에 뽀뽀를 하고 갔다. 마치 마법에서 깨어나면 안 된다는 듯 아이들은 돌아가며 내게 강화를 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늘 아이들과 강당으로 향했다. 얼마 전 강당 입구에는 제비가 집을 지었다.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면 제비가 놀라니까 조용히 인사를 하라고 주의를 줬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비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낮은 음성으로 "제비 안녕?" 이라고 인사를 하곤 했다. 강당에서 신나게 놀다가 나온 후 운동장에서 또 달리기를 했다. 그리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나면 화단에 있는 제라늄에 물을 줄 시간이 다 되었다. 내가 수도꼭지를 열고 호스를 들면 12명의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듯 파란 호수에 줄줄이 달라붙었다. 아이들에게는 화분에 물주는 일조차도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혼자 호수를 쭉 뽑아서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으나,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함께 물을 주곤 했다. 물을 준 후 텃밭으로 갔다. 봄에 심어둔 토마토가 어느덧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따서 교실로 가져와 함께 먹고 했다.

오늘, 혼자 연수를 듣는 것이 호젓하면서도 왠지 불안하다. 연수를 듣는 기간만은 아이들을 잊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내 뇌를 노크한다. 잘 지내고 있으리라. 아이들과 있을 때 아이들에게 충실하고 나 혼자 있을 땐 나 자신에게 충실하리라. 얘들아, 기다려! 우리 2학기 때는 더 재미있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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